당당한 역사의 주체

계간 <이제 여기 그너머> 기자인 민대홍님의 "함석헌과 함께 읽는 우리 역사"를 연재합니다. 민대홍님은 현재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박사과정이며, 함석헌의 눈으로 보는 역사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함석헌과 함께 읽는 우리 역사에서 함석헌 선생을 만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편집자주]

 

오늘날 한반도가 겪고 있는 주변국과의 영토 갈등은 기나긴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지금 발생하고 있는 영토 문제의 근원이 대부분 과거의 잘못된 역사적 결정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다. 동북아 3국인 한-중-일 사이에 국가 이익이 충돌하며 빚어진 문제 역시 특정한 역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한반도는, 동쪽으로는 독도를 사이에 두고 일본과, 북쪽으로는 간도와 백두산 등지를 둘러싸고 중국과 갈등중이다.

서로의 체면상 총칼을 들이밀지는 않지만, 고대 역사를 두고 ‘생각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형국이니 가히 ‘역사 전쟁’이라 할만하다. ‘동북공정’으로 고조선·고구려·발해의 역사를 흡수하려는 중국, 말도 안 되는 ‘임나일본부설’을 내세워 조선 병탄을 정당화 했지만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없는 일본, 그 틈바구니에서 당당함을 잃은 우리의 모습은 비단 지금의 모습일 뿐 아니라, 과거 역사 속에도 얼룩져있다.

가령, 현재 독도 문제의 뿌리는 1965년 체결된 한일조약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한일조약은 1963년 박정희의 대통령 취임 때부터 밑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소위 ‘김종필-오하라의 메모’라고 알려진 ‘한일기본조약’은, 한국이 일본에게 3억 달러를 청구하고, 추가로 3억 달러를 빌려오는 것으로서 역사문제를 없었던 것으로 덮어버린다는 내용이었다. “일본은 오직 한반도에서 대한민국 정부만을 공식 정부로 인정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이 조약은, ‘대한제국’이 아닌 ‘대한민국’에게는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정치적 협잡이었다. 이로서 한국의 명예는 실추되고 일본은 사과하지 않고 빠져나갈 길을 얻음으로, 한반도에서는 치욕만 남을 역사를 3억 달러 주고 사온 것이다.

역사 사상가인 함석헌은 1964년 1월 『동아일보』의 「새해의 말씀」에서 일본이 “성의 있는 사과”를 하지 않았다며 질책했다. 경제 문제는 공식적 외교와 무역을 통해 대등한 관계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고, 과거사 정리 문제는 우리 정부와 국민이 주체적으로 당당하게 해결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일본에게 사과를 요청해도 시원찮을 판에 도리어 박정희의 대통령 취임식에 일본 측 축하사절로 찾아온 대야(大野)라는 사람이 망언을 참아 넘겼다. 일국의 대통령을 자신의 ‘자식’(오야꼬)에 빗대며 비하발언을 한 일을 두고 당시 경향신문의 여적(餘滴)에서는 “이 일을 우야꼬”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국민들은 일본 측에 이 발언을 해명하라고 일어서는데, 정부는 외교 관계 운운하며 일을 덮기에 바빴다.

이에 함석헌은 “대일 저자세는 경제적 식민지”라는 한 마디로 한·일 관계를 정리했다. 피눈물 나는 과거를 돈을 받아 덮어두고 새로운 식민지가 되자고 자처했다는 일갈이었다. “그것들(일본)이 쫓겨 갈 때 이십년이면 도로 오겠다고 하는 것을 미친놈의 소리로만 알았는데, 이제 이쪽의 입(한국정부)에서 일본의 경제적 식민지가 되도 좋다는 소리를 한다”는 그의 말은 당시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일본 말 배워야 먹고 산다”는 말이 젊은이들 사이에 공공연하게 돌고 있었으니, 젊은이들의 태도는 독립 전쟁기에 그토록 꿈꾸던 참 해방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반증한다. 박정희 정권 때, 돈 때문에 역사를 판 경제 식민지 시기에 들어서고 만 것이다.

함석헌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고려 광종 때에 빗대어 설명했다. 신라의 통일을 실패한 것으로 본 그는 “본래 신라가 하려다가 못하고 실패한 삼국통일을 다시 할 책임을 고려가 졌다”며, 당나라에 기대어 몇 푼 땅을 더 차지해 보려한 신라는 당당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이후 왕건이 새 사명을 가지고 바통을 이어받았지만, “왕건 태조가 예로부터 내려오던 선비정신으로 새 힘을 얻으려 했는데, 20년이 채 못가 광종 때에 와서 유파의 세력에 못 이겨 운동이 약해지고 중국의 제도를 쓰기 시작했다”며 신라의 길을 다시 밟은 고려 역사를 안타까워했다. 요는 나라가 자기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당당해져야 하는데 과거의 역사에서 이에 번번이 실패했다는 것이다. 힘이 없음이 억울한 것이 아니라 큰 힘에 기대 굴종하는 것이 비통한 일이다.

함석헌(1901~1989)

독도문제도 경제적 외교관계를 먼저 논할 일이 아니라 일본의 태도 문제를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 1877년 일본의 태정관(지금의 총리실에 해당)이 “독도는 일본의 영토와 관계없다”는 공식 발표를 했던 것만 보아도 영토 문제는 이미 그때 끝난 일이니, 우리 정부는 ‘독도는 우리 것이다’라고 주장하면서 일본에 공식 사과를 요청해야 한다. 경제 식민지를 청산하지 못하고 여전히 끌려 다니는 외교 현실과, 독도 문제를 자국 정치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한 도구로만 사용하는 내부 정치 현실은, 우리를 여전히 식민지 시대에 머물게 한다.

 

민대홍(계간 <이제 여기 그 너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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