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사관의 뿌리, 기자조선은 만들어진 역사...

조선(단군)을 이어 중국인 기자의 조선이 1천년 지속되었다고 하나, 소중화 조선이 날조한 무덤과 유물 몇개와 문헌만 존재한다.

소중화 조선이 날조한 기자조선 1천년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중국 한나라 식민지 한사군에 앞서, 1천년간 중국인의 지배를 받은 것이 된다. 실제로 중국은 소중화 조선의 이 사관을 받아 들여 현재 북한 평양을 중심으로 기자조선을 그려놓고 있다. 동북공정의 뿌리가 여기에 있다.

 

(5) 삼국유사 ‘고조선’편으로 보는 기자조선 부존재 증명

고조선편을 보면 '위서魏書' 를 인용하여 그 위서를 쓰던 당시에서 볼 때, 조선이 2천년간 존재했는데, 그 나라는 단군이 열었고 이름을  조선이라고 했다고 한다(魏書云。乃往二千載有壇君王儉。立都阿斯達 開國號朝鮮。與高同時).

현존하는 중국의 <위서>라는 수많은 책들에는 위와 같은 단군의 조선개국에 관한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삼국유사 ‘고조선’편 이하에서 <배구전> 등 다른 중국 사서를 근거로 대면서 관련 역사를 기록한 것을 볼 때, 위 중국사서로 보이는 위서의 기록은 사실로 보인다. 다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중국 측에서 후대에 단군조선 기록부분을 없애 버렸다고 보아야 합리적이다. 따라서 위 기록만으로 보면, 단군조선의 역사는 최소한 2천년이 넘게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삼국유사 고조선편은 말미에 가서 “단군이라고 불렀고 당고가 즉위한 50년, 경인년에 평양에 도읍을 정하고 처음으로 조선이라고 칭하였다고 한다(號曰壇君王儉。以唐高卽位五十年庚寅 都平壤城 始稱朝鮮).

여기서 '경인년'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단군이 개국한 때는 이'경인년'보다 조금 앞선 '무진년戊辰年'으로써 서기전 2333년이라는 것이 현재 학계의 통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즉 단군조선은 서기전 2333년에 나라를 열었다는 것이다. 위 <위서>에서 주장하는 2천년설과 대동소이하다. 다음으로 고조선편은 조선의 수도를 백악산아사달로 옮겼다고 한다(又移都於白岳山阿斯達). 위 <위서>를 볼 때 처음 수도를 옮긴 곳은 ‘아사달’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나라를 세운지 1천5백년에 중국 주나라 무왕이 기묘년에 즉위하여 기자라는 사람을 조선에 봉하였다고 한다(周虎王卽位己卯 封箕子於朝鮮). 여기서 기묘년이 중요한데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서기전1222년경이라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다음 고조선편의 기록은 ‘단군이 이에 따라 장당경으로 이사갔다고 하고 나중에 다시 아사달로 돌아와 산신이 되었으며, 그 수는 1908세’라고 한다(壇君乃移於藏唐京。後還隱於阿斯達爲山神。壽一千九百八歲).

여기서 나이가 1908세라고 쓰고 있지만 이것은 단군조선의 존속기간을 말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자, 이제 기자조선이 과연 존재한 나라인가 위 각 연수들을 비교하여 살펴본다. 위 기록사실에서 알수있는 것은 단군이 개국한 조선은 최소한 서기전 2천 몇백년전에 개국하여 최소한 2천년 이상 존속하였다. 그런데 조선이 개국한지 1500년경에 중국주나라 무왕이 기묘년에 기자라는 사람을 (단군)조선에 봉했다고 한다. 기자조선 존재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때부터 단군조선은 사라지고 기자조선이 그 자리에 들어서 향후 약 1천년동안 이른바 기자조선을 이끌어 왔다고 하며 나중에 위만이 세운 위만조선에 망했다고 한다.

그러나 주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하여 기자조선을 세운 기묘년은 앞서 본 대로 서기전 1222년경이다. 그런데 그 앞 기록은 단군조선을 개국한지 1천5백년에 주무왕이 즉위하여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고 한다.

여기서 1천5백년을 단군조선이 개국한 서기전 2333년부터 따져보면 서기전 833년이다. 즉 이 기준에 따르면 주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한 시기는 서기전833년이다. 그런데 뒤에 나오는 기묘년에 기자를 조선에 봉한 년대는 서기전 1222년이다.

따라서 이는 둘 중 하나가 거짓임을 말한다. 그런데 앞선 기록이 그 뒤에 나오는 기록보다 먼저 생성된 것으로 보는 것이 상식인바, 앞선 1500년 기록을 신뢰하는 것이 타당이다. 따라서 서기전1222년에 봉했다는 기록은 여기서 논외로 해야 한다.

▲ 중국은 동북공정으로 우리의 역사를 모두 강탈해 간 상태이다. 대한민국 사학을 대표하는 국내 주류강단 식민사학계가 반도식민사관에 매몰되어, 마땅히 동북공정에 대응하여 대책을 내놓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방치한 사이 벌어진 비극이다. 현재 중국에서는 위와 같은 역사지도가 역사적 사실로 통용되고 있다. 기자조선이 북한 평양을 중심으로 그려져 있다. 국내 강단주류 식민사학계는 저 기자조선이 망하고 저 자리에 중국인 위만의 위만조선이 세워졌고, 이어 한나라 식민기관, 한사군이 설치되었다고 가르치고 있다. 일제의 조선총독부가 가르쳐 준 것을 지금까지 친일파 식민사관을 퍼뜨리고 있는 것이다. 해방된 지 70년이 지났지만, 친일반민족행위가 역사학의 탈을 쓰고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서기전 833년에 기자조선이 생겼다고 볼 때 이 때를 기준으로 향후 1천년의 기자조선 존속기간을 적용해 보면 서기후 약167년까지 존속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위만조선편에서도 나오듯이 서기전 194년경에 기자조선은 위만조선에 의해 공식적으로 망한다. 결국 기자조선이 존재했다는 것은 거짓말임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삼국유사 마지막 기록에는 나중에 단군이 기자조선 때문에 떠났던 아사달로 다시 환도하여 산신이 되었다고 한다. 기자조선 존재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에 따르면 이미 단군조선은 기자 때문에 망하고 없어졌을 텐데 위 기록은 그때 까지 단군조선이 살아 있음을 말하고 있다.

더구나 앞서 밝혀졌듯이 단군조선은 2천년이상 존속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기자를 조선에 봉할 때 단군조선은 이미 1천5백년간 존속한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기자조선 존재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단군조선이 약1천년동안 존재했고 그 다음을 기자조선이 1천년을 이어받아 도합 2천여년의 이른바 ‘고조선’이 존재했다고 한다.

설사 ‘고조선’ 약 2천년 중 단군조선이 1천년 존재하다가 기자조선이 나머지 1천년을 이어 받았다고 하더라도, 삼국유사 고조선 편에 분명히 단군이 개국한 ‘단군조선’이 1천5백년간 존속했다는 기록이 나온다(御國一千五百年). 무려 5백년이라는 세월이 차이가 난다. 몇십년의 차이가 난다면 그럴 수 도 있겠다고 하겠지만 5백년이라는 세월은 분명히 한쪽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삼국유사에는 기자조선 존재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처럼 기자조선이 1천년 존재했다(御國一千年)는 기록은 안 나온다. 주나라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는 기록만 나올 뿐이다(周虎王卽位己卯封箕子於朝鮮).

또한 만약에 기자조선이 1천년 동안 존재했다면 그 역사의 줄거리가 앞선 단군조선 못지않게 있어야 한다. 단군이 개국한 조선이 처음에는 평양성에 서울을 정하고 나중에는 아사달로 이사했으며 그 다음에는 장당경으로 수도를 옮겼다고 나오는데 기자조선이 1천년동안 존속했다면 최소한 이 정도의 기록이 나와야 상식이다. 그러나 이런 기록은 전혀 없고 단군이 장당경으로 이사했다가 다시 아사달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고 바로 위만이 개국했다는 위만조선편으로 넘어간다. 이는 명백히 기자조선이 존재하지 않았음을 말해 준다.

한편 ‘기자조선’이 있기 최소한 3천년전의 한웅천왕 신시시대의 문화를 기준으로 볼 때도 기자조선은 존재할 수 가 없다. 삼국유사 고조선편에는 한웅이 한인한테 천부인 3개를 받아 3천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왔다고 한다. 그리고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주곡, 주명, 주병, 주형, 주선악 등 무릇 인간의 360여사를 주관했다고 한다. 여기서 인간 360여사라는 말은 인간생활에 관한 모든 일을 다루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고도로 발달된 문명사회를 말한다. 오늘날의 문명국이 인간의 일을 헤아릴 수조차 없이 분업화하여 이끌어 가듯이 이미 우리는 최소한 5천년전에 이와 같은 수준에 이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모양만 달랐을 뿐이다.

만약에 <삼신오제본기>, <한국본기>, <신시본기>, <삼한관경본기>,<소도경전본훈>, <규원사화> 등 우리의 주체사서를 인정한다면 얼마나 고도로 발달된 사상과 철학 그리고 종교를 가지고 다스렸는지 놀랄 것이다. 따라서 기자가 단군조선에 와서 겨우 8가지 형벌법규와 9가지 규범을 가지고 우리의 생민을 미개야만에서 문명개화시켰다는 기자조선 존재설은 상식적으로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러므로 이 <삼국유사>의 '고조선' 편을 볼 때도 기자조선은 허구이고 이 기자조선 존재를 기정사실화하여 역사라고 하는 주장은 거짓임을 알 수 있다(10부에서 이어짐).

글: 오종홍(삼태극 http://cafe.daum.net/mookto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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