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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2: 기자조선과 동북공정(8)일연의 삼성기(삼국유사/고조선)의 가치, 아는 만큼 보여...
오종홍 | 승인 2016.07.08 10:02

기사수정: 서기2016.7.8. 17:41

 

중국인 기자가 가지고 와서 우리를 문명개화 시켰다는 '8조범금',

그러나 우리는 이미 조선(단군)이 있기 수천 년전인 '신시'시대에

1년 365일을 일일이 규정하는 고도로 분화된 규범을 갖고 있었다.

지금으로 부터 약 5213년 전의 일이다.

 

(2) '8조범금’를 통해서 보는 기자조선 부존재 가능성

한서지리지에는 기자가 8조범금이라는 것을 가지고 와서 교화시켰다고 한다. 이 기자의 8조범금이라는 것은 대체적으로 형벌법규를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신시배달국 시대에 한웅천왕이 실시하였다. 삼국유사 고조선편에 한웅이 무리3천명을 이끌고 태백산정 신단수에 내려와 신시를 열어 풍백과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곡식, 수명, 질병, 형벌, 선악 등 360여 사를 하늘의 이치로 다스렸다고 나온다(雄率徒三千。降於太伯山頂神壇樹下。謂之神市。是謂桓雄天王也。將風伯雨師雲師。而主穀主命主病主刑主善惡。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在世理化).

이것을 한웅과 웅녀 사이에서 난 왕검단군이 조선을 개국하면서 통치 이념으로 이어 받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실제로 '단군세기檀君世紀' 에서도 이 신시한웅시대의 규범을 되살려 시행했다고 했다(檀君王儉復神市舊規). 따라서 기자가 이 신시배달국을 이어받은 단군조선에 와서 형벌8개조를 가지고 다스렸고 비로소 단군조선의 체제가 잡혀 문명화 되었다는 식의 한서지리지의 해당 기록은 후대에 와서 누군가 어떤 의도를 갖고 집어넣은 것이라는 의심을 떨칠 수가 없다.

즉, 형벌측면에서도 기자가 단군조선에 오기 전에 이미 우리가 수 천년전에 실시하고 있을 만큼 우리는 이미 문명개화된 나라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이렇게 반론을 제기 할 수 있다. “겨우 ‘주형主刑’ 이라는 말만 나오는데 어떻게 이 낱말 속에서 고도의 문명개화된 형벌제도를 시행 할 수 있다는 이론이 나올 수 있나, 너무 비약하는 것 아니냐,” 충분히 공감이 되는 의문이다.

그러나 신화라는 것은 수많은 역사의 내용을 압축시켜 전해 내려오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에게는 ‘안함로 삼성기, 원동중 삼성기, 삼신오제본기, 한국본기, 신시본기, 삼한관경본기, 소도경전본훈’ 이라는 문헌이 있고 이 문헌을 보면 ‘주형主刑’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자세히 나오며 우리의 철학과 사상 그리고 종교가 무엇인지, 현시대를 풍미하는 대규모 조직종교의 교리보다 더 고차원적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다만 이 문헌을 수용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각자의 세계관, 인생관에 맡길 수밖에 없다. 결국 이것을 통해서도 기자조선은 가공의 상상속의 나라임을 알 수 있다.

(3) 발해 북쪽 대릉하지역 등의 청동기에 새겨진 글자 문제

기자조선 긍정론자들이 기자조선의 존재를 결정적으로 증명하는 유물로 제시하는 것이 ‘발해 북안과 대릉하유역에서 발견된 은나라 말기, 주나라 초기의 청동기 유물 및 이런 청동방정에 새겨진 ’기箕‘라는 글자라고 한다.

▲요녕성 객좌현에서 발견된 문제의 '기자'의 '기'자로 잘못 판독한 방정청동기. 맨 오른쪽 까만그림의 위쪽의 문자로 보이는 것이 '기자'의 '기'로 잘못 판독한 것이다(김종서, ’기자조선. 위만조선 연구‘, 한국학연구원, 2004,18쪽).

그러나 그 새겨진 글자는 분석결과 기자를 뜻하는 ’箕‘자가 아니라 ’己‘자가 위로 가고 ’其‘자가 그 밑으로 가게 합쳐진 나라이름 ’기‘ 자를 나타내는 것으로 밝혀졌다. 더구나 위 ’己‘ 와 ’其‘이가 합쳐진 나라이름 ’기‘ 자가 새겨진 ’기후‘라는 명문銘文 등이 새겨진 ’기‘ 나라의 청동기들이 산동성에서 여러 개 발견되었다. 그리고 중국 학계에서도 이 ’기‘ 나라를 은나라 시대부터 동주시대로 접어든 춘추시대까지 산동성에 있던 국가라고 하여 중국의 ’역사지도집‘에 에도 그렇게 표기하고 있다(김종서, ’기자조선. 위만조선 연구‘, 한국학연구원, 2004, 184~185쪽).

▲ 문제의 '기자'의 '기'로 잘못판독한 문자원형( 김종서 위책 179쪽에서 발췌)
▲김종서, ’기자조선. 위만조선 연구‘, 한국학연구원, 2004,185쪽.

그렇다면 누가 이렇게 조작하여 발표한 것일까, 나라이름 ‘기’자 를 기자조선의 ‘기箕‘ 자로 조작 발표한 자들은 대릉하 지역에 기자조선이 실재하였다고 실증하려 했던 중국 측의 학자들이다. 국내 학자들도 이 견해를 그대로 비판 없이 받아 들여 기자조선의 존재를 당연시 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학자가 ’이형구‘라는 사람이다(김종서, ’기자조선. 위만조선 연구‘, 한국학연구원, 2004, 184~185쪽). 따라서 ’기자조선‘은 단군조선에 세워진 나라가 아니라 글자 오판독으로 인하여 생겨난 가공의 나라임을 알 수 있다.

(4) 발해 북안, 대릉하지역의 은말, 주초의 수많은 청동기문제

기자조선을 긍정하는 세력은 다음과 같이 또 반박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위 지역에서 발굴된 은나라 말, 주나라 초기의 수많은 청동기들은 그럼 뭐냐, 은나라말, 주나라초에 은나라 유민들이 이주해 오면서 가지고 온 것들이 아니냐, 물론 기자도 말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이 풀이된다. 이 들 청동기에는 수많은 글자가 각 각 새겨져 있는바, 다음과 같은 글자들이다.

’경庚, 단백亶伯, 록鹿, 무戊, 백구伯矩, 붕만倗万, 사史, 숙윤叔尹, 아亞, 어魚, 윤尹, 주舟, 차車,‘ 등이다.

▲ '백구'와 '어 '글자가 새겨진 대표적인 청동기들(위 김종서책,18쪽에서 발췌)

그리고 이와 같은 글자들은 대부분 국가이름이거나 씨족이나 부족의 ‘족휘族徽’ 즉, 어떤 씨족이나 부족을 표기하는 이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청동기들의 분포 간격을 보면 통상 10킬로미터 이내에 집중적으로 매장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것은 3.5미터를 사이에 두고 묻혀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작은 나라나 작은 부족이라고 하더라도 겨우10킬로미터 좁은 공간안에서 경계를 이루며 존재할 수 있을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이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3.5미터 간격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그렇다면 글자 위에 ‘己’자를, 그 아래에는 ‘其’ 자를 쓰는 나라이름 ‘기’를 쓰는 나라를 포함하여, 저들 나라의 청동기들이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그 좁은 지역에 모여 있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렇다면 왜 수많은 나라이름이나 부족표기명이 새겨진 청동기들이 저렇게 한데 묻혀 있는 것일까,

한나라의 왕이나 부족장이 이 청동기를 한 곳에서 소유하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더 추론을 해 보면 저 청동기에 쓰여진 나라나, 부족에게서 물물교역을 통해서 가져왔거나 조공을 받았거나, 또는 정복전쟁을 통해서 약탈해 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당시에 저 지역에 상당히 큰 나라가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그 나라는 누구의 나라인가, 은나라 말기, 주나라 초기기 당시에 동북쪽에 있는 나라는 단군의 조선밖에 없다. 따라서 단군조선의 존재와 영토를 증명하는 것이 저 청동기들이라고 본다(김종서, 기자.위만조선연구, 한국학연구원, 2004. 195~201쪽)(9부에서 이어짐).

글: 오종홍(삼태극 http://cafe.daum.net/mookto 대표)

오종홍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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