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비평』의 일본극우파 추종 논문 비판 Ⅰ

전 고려대 교수, 김현구씨가 고소한 명예훼손 1심재판에서 김현구씨가 승소하자, 일제식민사학을 추종하는 김현구씨와 한 부류인 강단식민사학계에서는 민족사학계에 대하여 대대적인 공세를 지난 3월부터 전방위적으로 펼치고 있다. 한성백제박물관에서 고대사 시민강좌라는 이름을 빌어 식민사학을 퍼뜨리고, 조선, 경향 신문들에 식민사학을 옹호하는 기사를 지속적으로 올리고 있다. 동시에 계간지 『역사비평』에 2회 연속 조선총독부사관을 추종하는 글들을 올리고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역사연구가 '황순종' 씨의 반박글을 연재한다(편집부).

 

기경량 씨의 비판에 대해서

『역사비평』2016년 봄 호는 「한국고대사와 사이비 역사학 비판」이란 기획 기사에서 세 명의 젊은(?) 사학자의 글을 싣고, 필자와 같은 고대사 연구자들을 ‘사이비’로 규정했다. 강단사학은 그간 학위가 없으면 학자 취급을 하지 않았는데, 학위가 없는 이들이 나서자 ‘젊은(?)’이라는 수식어로 포장해주고, 주요 일간지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이들의 주장을 편파적으로 보도하면서 재야 민족사학자들의 의견은 모른 척하는 기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앞으로 보겠지만 이들의 주장이란 것이 모두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추종하는 것에 불과한데, 이른바 진보라는 일간지들까지 이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기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진보라는 매체들이 일본 극우파 역사관에 동조하는 이런 현상은 전 세계에서 한국에서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필자는 그들의 글을 비판함으로써 과연 어느 쪽이 ‘사이비’인지 독자들의 판단에 도움이 되고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세 학자 중 기경량 씨는 「사이비 역사학과 역사 파시즘」에서 ‘다양한 해석 가능성이 존재하는 역사연구’임을 전제하면서도, 필자 같은 연구자들이 “이미 학문의 범주를 벗어났다.”고 사이비로 규정했다. 젊은 사람들은 도전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도전은 그릇된 권력을 잡고 있는 거대세력을 상대로 한 것이어야지 그 그릇된 권력의 앞잡이가 되어 잘못을 바로 잡고자 하는 소수를 공격하는 것이어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그러다보니 논리가 꼬이는 것은 당연하다. 기경량의 말대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설이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며 이것이 진정한 학문이 성립되어 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충분한 논리를 갖추고 있는 학설을 제대로 검증하지도 않고 “이미 학문의 범주를 벗어났다.”는 것은 ‘다양한 해석 가능성’ 자체를 부인하는 파시즘적 사고이고 매우 비논리적인 판단이다.

학문은 다양성이 생명인데도 강단사학계의 수많은 연구자들은 한 목소리로 낙랑군=평양설을 70년 동안 주장해 오고 있다. 역사학이 종교적 교리가 아닌 다음에야 지금 학계의 한 목소리 자체가 잘못이라는 반증이다. 학계의 하나 뿐인 설이 정설이고 사료에 입각한 정당한 것이라면 ‘학문의 범주를 벗어난’ 설들은 토론 과정에서 저절로 정리될 것이다. 그러나 강단사학계에서 다른 견해들을 봉쇄하고 일체의 토론의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근본적인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역사비평』에서 기획한 이번 경우도 민족사학자들을 배제하고 학계만의 일방적 홍보의 장으로 만든 자체가 그 폐쇄성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지금 진보를 표방하는『역사비평』의 행태나 이를 대서특필하는 이른바 진보언론의 행태는 일제강점기 때 진보에 대한 신념으로 조선총독부와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고문당하고 죽어갔던 수많은 진보인사들에 대한 모독에 불과하다.

▲ 조선총독부 직원들과 친일부역 조선인들이 야외로 나가서 기생과 일본기생, 게이샤를 끼고 북치고 장구치고 놀고 있다. 조선총독부는 조선사편수회를 만들어 우리역사를 날조, 왜곡하는데 광분하였다. 특히 북한 평양일대에 중국 한나라의 식민기관, 낙랑군이 있었음을 보여주기 위해, 봉니, 목간, 와당 등 수많은 유물을 날조하는 천인공로할 범죄를 저질렀다. 이병도, 신석호 등이 일제의 하수인 노릇을 하면서 우리역사 파괴에 광분하던 저 시기, 신채호, 정인보와 같은 조선의 애국자들은 일제의 역사파괴에 맞서 역사광복투쟁을 전개하였다(편집부).

기경량은 ‘학문 영역에서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사료의 조작을 시도’한다고 민족사학자들을 비난했다. 『환단고기』가 위서이기 때문에 이를 토대로 고대사를 논하는 것이 조작이라는 것이다. 기경량이 『환단고기』를 얼마나 연구했는지, 그가 과연 『환단고기』를 읽을 능력은 되는지는 여기에서 논하지 않겠지만 『환단고기』를 위서로 단죄해 놓고 이를 토대로 고대사를 논하는 것은 조작이라고 단정하는 자체가 학문의 범주를 벗어난 것이라고 지적하고 싶다. 그러나 기경량은 물론 젊은(?) 그에게 총대를 메라고 권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선배나 지도교수들이 뼈아파 하는 부분은 민족사학자들이 『환단고기』가 아니라 『사기』, 『한서』, 『수경』같은 중국의 1차 사료를 기본으로 강단 식민사학계의 ‘낙랑군=평양설’이 일체의 사료적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밝혔다는 점일 것이다.

낙랑군=평양설을 부정한 일제강점기 때의 신채호·정인보 선생과 광복 후의 북한의 리지린, 그리고 생존해 있는 윤내현·복기대 교수와 이덕일 소장 같은 이들은『환단고기』를 근거로 제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강단사학계에서 몰랐는지, 아니면 일부러 모른 채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중국의 1차 사료들을 근거로 ‘낙랑군=평양설’을 부정했다. 그러면 기경량 같은 젊은 사학자들의 임무는 양측의 주장 중에 어느 주장이 사료적 근거가 있는지를 역사학적 방법론에 따라서 검증해서 자신의 결론을 내는 것이지 무조건 조선총독부 사관만이 옳으며 나머지는 ‘사이비’, ‘유사’라는 식으로 흥분할 일은 아니다. 역사학적 방법론에 따르면 ‘사이비’, ‘유사’라는 말은 기경량과 그의 선배들에게 돌리면 맞는 말이다. 그들의 주장은 일체의 사료적 근거가 없는 소설이자 조선총독부와 일본 극우파, 중국 동북공정의 정치선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민족사학자들의 주장이 강단사학계와 다르다고 하여 “학문적 범주를 벗어났다.”는 것이니 기경량 씨의 사고 방식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기경량이 말한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사료의 조작’과 ‘학문의 범주를 벗어난’ 단적인 예를 강단사학에서 국사학의 태두로 숭배하는 이병도 씨의 글에서 제시하겠다. 이병도는 조선이 열양의 ‘동쪽’에 있다〔朝鮮在列陽東〕는『산해경』의 기사를 ‘정확하게는 남쪽’이라고 했고(「패수고」, 1933), 원 사료는 동쪽이라고 하고 있는데, 이병도는 자기 마음대로 남쪽이라고 사료를 조작했다. 또한 이병도 씨는 ‘열양 동쪽, 즉 열수 이남’(『한국고대사연구』, 2012)이라고 ‘거듭 사료를 조작’하면서 열수를 반도의 대동강이라 우겼다.

『후한서』 「군국지」 낙랑군 조는 낙랑군의 속현 중의 하나인 열구(列口)현에 대해서 “열은 강 이름이다. 열수는 요동에 있다〔列水名, 列水在遼東〕”라고 설명하고 있다. 언제부터 대동강이 요동에 있게 되었는가? 또 『사기』 「조선열전」에는 한나라 수군 대장이 위만조선을 치러 갈 때 ‘제(齊)나라를 따라 발해에 떠서’라고 설명했는데, 이병도는 이 바다에 대해서 ‘발해(황해)’라고 조작하여 설명했으며(「패수고」), 후에는 ‘발해’라는 말도 언급하지 않고 ‘바다’라고 말하며 황해를 건너온 것처럼 조작해서 설명했다(『한국고대사연구』) 기경량이 이 부분에 대한 원사료를 얼마나 봤고 연구했는지 알 수 없지만 젊은 학자라면 이처럼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사료의 조작’으로 일관한 이병도 씨가 ‘학문의 범주를 벗어난’ 사이비임을 먼저 밝혀야 했을 것이다(2부에서 계속).

글: 황순종(고대사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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