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사학이라고 비판 받는 강단주류사학계, 한사군 재 북한설 요지부동...패수위치가 어디이든 상관없어...

최종수정: 서기2016.6.23. 17:25

" ‘패수’위치 토론은 중국이나 일본학자들과 해야 하는데,

국내학자끼리 한다는 것이 너무나 서글프다..."

 

조선(단군)의 서쪽 경계를 나타내는 ‘패수’는 어디일까?

민족 사학계와 식민사학이라고 비판 받는 강단 주류사학이 패수 위치를 놓고 격돌하였다. 동북공정지도를 그대로 베끼고, 독도를 고의로 제거한 동북아역사지도집을 제작했다가 발각되어 매국역적집단이라고 비난 받는 동북아역사재단이, ‘패수’위치 학술토론회를 21일 광화문 서울시청 옆 기자회관(프레스센타)에서 개최하였다. 이번 토론은 김종서(한국과 세계의 한국사교육을 바로잡는 사람들의 모임)박사와 심백강 민족문화연구원장이 민족사학계를 대표해서 나왔고, 식민사학이라 비판 받는 강단 주류사학에서는 박준형 연세대 동은의학박물관 학예사와 이후석 숭실대 고고학 전공 박사가 나왔다.

김종서 박사는 조선의 서쪽 경계를 뜻하는 패수는 <사기> ‘조선열전’을 토대로 한서의 군국지 등에 나오는 거리를 계산해서 고증해 본 결과 현재의 중국 하북성 ‘난하’가 확실 하다고 했다. 김박사는 특히 사서에 거리가 기록된 것은 당시 중국 지배자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중요시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문서를 수발할 때나 전쟁 시 병력이 이동할 때, 보급품 수송을 할 때 등 모두 거리를 모르면 많은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예를 들어서 거리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따라서 거리를 계산해서 지명을 비정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라고 했다. 이렇게 거리를 가지고 다방면으로 계산해 본 결과 현재 하북성 ‘난하’가 패수일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심백강 민족문화연구원장이 <사고전서>의 수많은 사료를 들어 조선의 서쪽 경계인 '패수'가 현재 중국 북경일대 였임을 역설하고 있다. 심원장은 패수위치 논쟁은 중국이나 일본학자들과 해야 하는데, 우리끼리 하고 있다는 것이 서글프다고 하여, 국내 식민사학의 폐해를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이에 대하여 박준형 학예사는 현재 요하 동쪽에 있는 ‘혼하’가 패수라고 주장했다. <사기>에 나오는 ‘다시 요동의 고새를 수리하고(復修遼東古塞), 패수에 이르러 경계로 삼았다(至浿水爲界)’는 구절과 후한 시대 순열이 쓴 <전한기>기의 ‘요수고새’(遼水古塞)의 기록을 근거로 들었다. 박학예사는 <전한기>의 ‘요수’가 ‘혼하’인데 이는 <사기>에 나오는 패수라고 하였다. 또한 ‘진-한 교체기에 고조선이 요동을 공격했다'며 이때 패수를 사이에 두고 한과 대적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박학예사는 조선의 중심지 이동설 입장을 취했다. 위만조선이 망할 때에는 북한 평양일대에 있었고 여기를 중심으로 한나라 식민기관 한사군이 모여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이미 날조된 것으로 증명된 ‘낙랑군초원4년현별호구부’를 내세워 한사군의 하나인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고 보았다.

김종서 박사의 반대 토론자로 나선 숭실대 이후석 박사는 중국측이 내놓은 고고학 자료를 제시하며 김박사의 주장을 반박했다. 현재 요서지역에서는 중국계 유물유적이 무수히 쏟아져 나옴으로 조선의 강역이 될 수 없다고 하였다. 따라서 요서 보다 중국에 더 가까운 ‘난하’가 조선의 서쪽 경계를 나타내는 패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무덤에서 출토 된 것으로 보이는 각종 그릇과 봉니 그리고 유물에 새겨진 명문을 근거로 들었다.

박준형 학예사의 반대 토론자로 나선 심백강 연구원장은 박 학예사의 주장을 7가지 근거를 들어 반박하였다. 심 연구원장은 반박에 앞서 패수에 대한 강단주류사학의 여러 가지 설의 바탕에는 한사군의 하나인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설이 있음을 상기시켰다. 따라서 패수는 한나라가 위만조선을 멸하고 설치한 낙랑군과 아주 가까운 지역일 수밖에 없으니 낙랑군이 어디에 있었는지 증명하면 자연스럽게 패수 위치 문제도 해결된다는 것이다. 심연구원장은 <산해경>과 <한서>등에서 말하는 지리적 조건은 한땅(한반도) 평양일대와는 맞지 않음을 밝혔다. 그러면서 패수는 현재 하북성 북경 근처의 보정시 일대 일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특히 패수와 위만조선과 연나라와는 서로 붙어 있었기 때문에 연나라 강역을 고증함으로써 패수의 위치를 밝힐 수 있다고 하였다. 연나라는 하북성 일부와 산서성 일대를 차지한 아주 작은 나라였다는 것을 사료를 증거로 제시했다.

▲ 왼쪽부터 박준형박사, 김종서박사,공석구교수,심백강 연구원장, 이후석박사. 사회를 맡은 공석구 교수는 심백강연구원장에게 박준형박사의 반박에 재 반박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종합토론은 한밭대학교 공석구 교수가 이끌었다. 김종서 박사는 연나라 진개가 조선을 공격하여 2천리를 빼었다는 기록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했다. 이 기록은 중국 삼국시대 조조의 위나라가 망한 뒤에 나온 위략에 있는 것인데, 연나라 진개로부터 5백년 뒤에 쓰여 진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어떤 근거도 없이 그냥 주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믿을 수 없는 기록이라는 것이다. 숭실대 이후석 박사가 제시한 고고유물에 대하여도 한나라 유물이 발굴되었다고 해서 한나라 땅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발굴된 봉니에 새겨진 군명은 발굴된 지역으로부터 수 천리 떨어진 곳임을 밝혀 모두 교류의 산물임을 강조했다. 또한 거리로 계산해 봐도 발굴된 지역이 한나라 땅일 수 없음을 증명했다.

방청객에게도 서면질문을 받았다. <고조선으로 가는 길>의 저자인 김봉렬씨는 사기 조선열전에 보면 한나라 사람, ‘섭하’가 패수를 건너 ‘요새’로 들어갔다고 나오는데 ‘요새’는 패수와 거의 붙어 있었다고 했다. 이어 <사기정의>를 들어 ‘요새’는 평주의 ‘유림관’임을 밝힌 후, 고증해 본 결과 현재의 하북성 ‘난하’ 일대라고 했다. 따라서 패수=난하 일 수 밖에 없는데 '박준형 학예사는 평주 유림관을 어디로 보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하여 박학예사는 <사기정의>가 주석서라며 주석서를 가지고 절대적 기준으로 삼는 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평주 관련 사료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아 모른다고 답했다. 한편 박학예사는 고대의 요수와 현재의 요하가 다르다는 것을 증명한 심백강 연구원장을 겨냥하여, 고대의 요수와 현재의 요하가 다른 것이 아니라면서 이것은 역사학계의 상식이라고 하였다. 또한 심연구원장이 '혼하'의 발원지가 백두산 근처임을 사료적 근거를 제시하며 밝혔는데도 근거가 없다고 부정함으로써 심연구원장으로 하여금 다시 증거를 제시하게 만들었다.

한편 명도전을 근거로 패수를 요하와 압록강사이에 있다고 주장한 숭실대 이후석 박사에게 명도전이 중국 연나라 것이라고 당연시하는 증거를 3개 제시하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이에 대하여 첨수도 등이 하북성에서 나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에 하북성은 중국 문헌사료에도 조선의 강역으로 나오는데 그게 어떻게 연나라 것이 되느냐는 방청객의 재반박이 이어졌다.

▲ 종합토론 사회를 맡은 한밭대 공석구 교수는 '한사군'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말자고 했다. 이는 지난 3월 종합토론을 맡은 전 단국대 교수, 서영수씨가 한 말과 똑 같다. 대신 '한군현'이라는 말을 사용하자고 했다. 그러나 이는 매국식민사학이라고 비판 받는 강단주류사학의 비난을 회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 많다.

이번 토론회는 지난 3월의 토론회에 이어 사회자의 편파적 사회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공석구 한밭대 교수 자신이 박준형, 이후석 등 강단주류사학의 견해와 같은 주장을 한다는 것이다. 특히 한사군 재평양설을 신봉하고 있고,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내놓은 것으로 보이는 진-연장성 요하설 논문을 무비판적으로 그대로 받아 들여 진나라, 연나라 장성이 요하까지 왔다고 주장했다. 또한 중국측의 수리지리서인 <수경>과 <수경주>를 언급하며 자기의 주장과 배치되는 <수경>의 내용을 폄하함으로써 방청객을 설득시키고자 하였다. 이 사료에는 패수의 위치를 전혀 다르게 볼 수 있는 기록들이 상반되어 나온다. 공교수는 <수경>의 ‘임패현’을 언급하며 ‘임패현이 있느냐? 낙랑군 25개현에 임패현은 없다’고 하면서 <수경>은 믿을 것이 못되고 <수경주>가 정확하다는 식으로 몰고 가, 방청객을 자신의 주장에 동조하도록 유도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공교수가 고의로 의도한 것으로 보였다. <수경주> 해당 기사를 찾아보면 ‘패현에 임하였다(임패현 臨浿縣)’고 해석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하나의 행정기구 이름으로 만들어서 패수의 위치를 결정적으로 찾을 수 있는 <수경>을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몰아 간 것이다. 이에 대하여 방청석에서는 '사회자가 사회를 봐야지 왜 강의를 하느냐'는 고성이 터져 나왔다.

지난 2월 전 고려대교수 김현구씨가 고소한 명예훼손형사재판이 강단주류사학에게 유리하게 나오자, 고대사 시민강좌를 개최하며 민족사학계에 전쟁을 선포하였다. 언론전도 함께 펴며 적극적 공세에 나서고 있다. 이에 민족사학계도 학술회의 개최와 연합단체를 구성하여 학문적 대응 뿐만 아니라 반국익적 사학에 투입되는 세금 저지 운동 등 다방면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동북아역사재단이 이 양측에게 토론의 장을 올해 들어 두 번째로 마련 한 것이다. 문제는 중립적인 위치에 있어야 할 동북아역사재단이 매국식민사학임이 밝혀진 강단주류사학에 유리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번 3월에 전 단국대 교수 서영수씨를 사회자로 내세워 일방적으로 강단주류사학을 두둔하는 사회를 보게 해서 논란이 많았다. 그런데 이번 학술회의에 또 다시 강단주류사학의 주장과 같은 입장인 한밭대 공석구 교수를 사회자로 앉힌 것이다. 따라서 후반기 학술회의 토론 사회자는 중립적인 인사로 하라는 주문이 있었다. 이번 역사 전쟁은 향후 김현구씨의 명예훼손사건 재판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올 하반기에도 2차례에 걸쳐 상고사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저작권자 ©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