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1907년 7월 헤이그 밀사의 외침, 서기2016.5.에 되살아나다...

1부 줄거리: 일제침략기, 일제는 우리나라를 집어 삼키면서 정당성을 주장하였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합방'하지 않으면 다른 서양열강이 차지하고 그렇게 되면 서양 제국주의가 아시아를 삼키게되어 전 아시아가 위험해지고, 우리나라는 수십년동안 근대화, 개화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퇴행적 원시시대를 방불케 하는 체제를 고수하여 힘의 균형이 깨져 일본이 자연스럽게 덮쳤다는 논리다. 국내에서는 이에 부화뇌동하며 매국을 한 인물들과 이를 거부하는 한규설과 같은 인물들이 대비된다(아래 2부에서 계속).

 

지금은 어떤가, 얼마 전에 일본 현재의 수상, 아베가 ‘주간문춘’이라는 잡지에서 한마디 했다.

“중국은 그런대로 상대할 수 있는데, 한국은 어리석다.” 이 말은 지금 일본이 우리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가장 정확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대로 먹고 살만하게 되었을지는 몰라도 본질적 상황은 일본이 구한말 외교권을 박탈 할 때 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기득권 지배세력은 사익우선으로 국가의 바탕까지 모두 갉아먹고 있고,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켜 경제 성장 동력을 모두 없애고 있다. 그 후폭풍으로 청년실업이 최고치를 달리고 있고, 재벌 등 대기업과 기득권 세력은 부가 넘쳐나서 주체를 못할 지경이다. 극소수가 부와 권력을 다 차지하고 절대다수 생민들은 빈곤 속에서 허덕이고 심지어 삶을 포기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있다. 116년 전 을사늑약이 체결 당시도 그랬다. 오죽하면 일본이 정권을 잡자 생민들이 처음에는 허리를 휘게 만드는 세금지옥에서 벗어났다고 일본 통치를 환영했을까,

을사늑약을 강제 체결시키는데 성공한 일제는 곧 이어 각종협정을 강요하여 군대를 해산하는 등 우리나라를 완전히 삼키는 절차를 착착 진행시켜 나간다. 이에 고종은 최후의 저항을 한다. 이것이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알려진 역사다.

서기1907년 7월 5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만국 평화회의가 열리는 각국 기자단의 국제협회장, 러시아 공사 이범진의 아들로서 유럽 각국어에 능통한 이위종이 각국 기자들에게 일제의 외교권 박탈과 강압 그리고 만행을 피눈물로 고발 연설하였다. 그리고 한학과 서양학문에 능통하여 의정부 참찬을 지내며 을사늑약을 극렬 반대하다가 해임된 이상설이 평화회의장에 나가 일제의 폭거를 고발하고 평화회의니 만큼 한국과 같은 약소국을 도와 한국의 사절단을 만국평화회의에 참석케 하여 한국의 요구를 들어달라고 눈물로 호소하였다. 그러나 각국의 회원국 위원들은 고충을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서로 눈치만 보았고 결국 영국의 반대로 기각되었다. 결국 헤이그 밀사가 헤이그에 나타나자 일본은 발 빠르게 저지공작에 나섰다. 헤이그 밀사가 가지고 온 고종의 서명이 찍혀있는 문서도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각국의 위원들을 속이고, 러일전쟁에서 패한 러시아 평화회의장을 압박하여 밀사의 회의참석 및 발언을 무산시켜 버렸다. 이런 배경에는 이미 일본은 영일동맹을, 미국과는 카스라-테프트 조약을 맺어, 우리나라를 일본이 먹는다는 합의가 있었다.

▲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특사를 보도하고 있는 당시 '만국회의보'. 왼쪽 부터 이준, 이위종, 이상설

이에 함께 호소한 이준은 분개하여 죽음으로 항거하였다. 그리고 이상설과 이위종은 미국으로 건너가서 투쟁을 이어갔다.

이러한 헤이그 밀사사건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 서기2016년 5월 19일 백주에 서울 한복판에서 되풀이 되었다.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 124 기자회관(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벌어졌다. 동북아역사재단은 동북아역사지도집 제작을 마무리하기 위하여 국제적인 기준을 도입한다는 명목으로 세계 각국의 학자들을 비싼 돈을 주고 초청하여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하였다. 동북아역사지도집 제작에 국내식민사학자들이 대거 참여하여 중국동북공정지도를 그대로 베끼고 독도를 우리역사지도에서 제거한 매국역사지도를 만든바 있다. 그러나 이것이 발각되자 이번 국제학술회의를 대대적으로 벌여 매국행위를 희석시키고자 한 것이다. 기존의 역사지도집에 독도만 집어넣고 나머지는 그대로 발간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깨어있는 생민들이 이 국제학술회의장에 달려가 한국 발표자들의 발표내용을 감시하였고 이 지도집 학술회의가 매국적 지도를 발간하기 위한 형식적 검증절차임을 간파하고 고성을 지르며 따졌다. 그러나 동북아역사재단과 매국적 역사지도제작에 참여한 식민사학자들은 이러한 문제제기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태연하게 자신들의 주제를 발표하였다. 필자는 역사언론지의 기자 자격으로 참석하여 이들의 만행을 여기에 온 외국 학자들에게 고발하고 진실 된 역사가 반영된 역사지도집 제작을 촉구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하여 토론회 사회를 맡은 한국교원대학교수, 류제헌에게 필자가 발언할 시간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필자가 발언할 내용이 무엇인지 알아차린 류제헌은 ‘이 자리는 역사지도 제작에 선진기술을 가진 외국인 학자들의 의견을 듣는 자리이니, 정치적 관련 내용의 발언은 허용할 수 없다’며 거절하였다. 이에 필자는 ‘그럼 좋다. 그런 발언은 하지 않겠다. 역사지도집에 관련된 내용만 발언 하겠다’고 했다. 그래도 류제헌은 거부의사를 보였다. 결국 류제헌은 방청객의 질문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어서야 1분 내에 끝내는 것을 조건으로 발언을 허락하였다.

▲ 사진 왼쪽에서 부터 8번째가 사회를 보는 한국교원대학교, 류제헌 교수. 류교수는 필자의 정당한 발언을 국내문제를 국제적으로 알려서 좋을 것이 없다며 거부하였다.

필자는 학술발표회가 진행되는 동안 영문으로 만든 발표문을 국제회의에 참석한 외국인학자들을 향하여 읽어 나갔다.

‘우리 대한민국의 모든 생민들은 이렇게 복잡한 학술회의에는 관심 없다. 오직 역사지도집에 중국 한나라 식민기관인, 한사군이 북한 평양에 그려져 있느냐, 아니냐, 이다. 지금 역사지도집을 만든 세력은 일제식민사학자들이다. 이들은 일본제국주의 시절에 일본이 심어준 식민사관에 따라 우리의 진실 된 역사를 제거하고 식민지 역사지도집을 만들었다. 우리는 불행하게도 프랑스가 독일에 부역한 자들을 처단한 것과는 달리, 일제에 부역한 매국역적들을 청소하지 못하였다. 그 결과 오늘 여러분이 다루는 역사지도집에 식민사관의 역사지도가 그려진 것이다. 동북아역사재단에 묻겠다. 한나라 식민기관, 한사군을 북한 평양에 그려놓은 고대사 역사지도를 제거하고 중국의 수많은 정사 사료 집에 나오는 명백한 증거에 의하여 본래대로 한사군을 중국 대륙의 하북성에 바르게 그릴 의지가 있는가, 또한 매국역적지도를 만든 식민사학자들에게 투입한 수십억 원을 환수할 계획은 있는가, 마지막으로 식민사학자들에게 묻겠다, 당신들은 어느 나라를 위하여 일하고 연구하는가, 중국? 일본? 한국? 당신들은 어느 나라 사람인가,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 대답하라, 우리의 진실 된 역사 앞에!’

대한민국이 일제로부터 독립된 국가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일제가 헤이그 밀사의 국제평화회의 참석과 발언을 저지 하였는데, 그 짓을 이번 국제학술회의에서는 국내 매국식민사학자들이 하고 있었다. 이 나라가 과연 독립된 나라였단 말인가, 이 매국식민사학은 지난 3월부터 한성백제박물관에서 고대사시민강좌라는 미명하에 매국의 식민역사를 시민을 대상으로 공개적으로 퍼뜨리고 있다. 일본의 공작금을 받아서 매국 역적 짓을 한다면 그나마 일말의 이해를 할 수 있지만 직간접적으로 투입된 우리의 세금으로 이 짓을 한다는 것이 더욱 기가 막힐 뿐이다. 116년 전에 벌어진 비극의 역사가 하나도 개선되지 않고 21세기 백주에 버젓이 되풀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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