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규설의 저항...

구한말과 현재, 무엇이 다른가...

"제1조 일본국 정부는 동경 외무성을 거쳐 금후 한국에 대한 외교관계 및 사무를 전부 지휘 감독할 것이며, 일본의 외교 대표자 및 영사는 외국에 있는 한국인과 그 이익을 보호한다.

 제2조 일본국 정부는 한국과 타국 간에 현존하는 조약을 완전히 실행할 임무를 맡으며, 한국 정부는 금후 일본국 정부의 중개를 거치지 않고서는 국제적 성질을 가진 어떠한 조약 혹은 약속도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제3조 ...일본 정부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곳에 이사관을 둘 권리를 가진다. 이사관은...종래 한국 주재 일본 영사에 속하던 일체의 직권을 집행하고, ...필요한 일체의 사무를 관리한다.”

이 글은 무엇일까, 제1조, 제2조 하는 것을 보니 무슨 조약 같기도 하다. 장차 다가올 한일관계를 예견하는 글일까? 그런데 불행하게도 21세기 백주에 위 글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는 주장을 하는 인물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전 고려대 교수, 김현구다. 김현구는 서기2005년 교육방송에 출연하여 5회에 걸친 강의를 하면서 수시로 ‘일본은 한국과 함께 가고 싶어 한다. 한국은 일본과 함께 가는 것이 좋다’는 식으로 강조를 하였다. 김현구는 최근에 펴낸 책에서도 일본이 고대에 우리나라 남부를 식민 지배하였다는 ‘임나일본부설’을 '사실상' 주장한 바 있다. 김현구는 이를 질타한 한 민족사학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여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한편 이명박 정권은 북한의 위협에 대처한다는 명분으로 미국의 압력 하에 한일군사정보교류협정을 비밀리에 채결하려하였다. 당시 이 문제로 여론이 들끓었고 야당은 매국적 행위라고 비난하였다. 군사정보교류협정의 내용을 보면 우리의 가장 중요한 군사정보는 일본이 모두 볼 수 있게 되어있는 반면, 우리는 일본의 허락이 있어야 일본군사정보를 볼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당시 대부분의 생민들은 먹고 사는데 바빠, 이런 보도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116년 전에도 그랬다. 대부분의 생민은 한일관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이 없었다. 역시 먹고살기 바빴기 때문이다. 소중화 조선5백년의 학정으로 생민들은 하루 먹고살기에 바빴지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위 조약은 일본이 러일전쟁에 승리하자,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자신들이 행사하겠다는 조약문이다. 우리나라를 집어먹기 위한 공식적인 1단계 작업이었다. 이토오히로부미(이등박문)는 이 조약문을 일방적으로 작성하여 궁궐에 난입하여 당시 대한제국 대신들에게 서명할 것을 강요하였다. 이완용, 박제순, 권중현 등 내각의 대신들은 처음에는 반대하였다. 그러나 이토오의 집요한 공작과 일본군대를 앞세운 위협으로 굴복하고 서명 날인하였다. 일본은 “일본국 정부는 한국 황실과 존엄의 유지를 보장한다.” 라는 제5조를 신설하여 고종의 저항을 희석시켰다.

▲ 서기1930.1. 동아일보에는 구한말 참정대신 한규설의 을사늑약 당시의 상황을 기사로 싣고 있다. 한규설에 대하여는 여러가지 평가가 따른다. 그러나 백암 박은식의 '한국통사'는 한규설을 마지막까지 저항한 인물로 그리고 있다. 사진은 구한말 참정대신 한규설.

그런데 여기에 끝까지 저항한 사람이 있었다. 내각의 총리인 참정대신 한규설이다. 당시 처절한 역사의 현장을 가보자.

장면1

참정대신(한규설)은 사태가 긴박함을 알고 황제께 진언하여 군신이 함께 거절하려고 방 밖으로 나가 예식관 고희경을 시켜 알현을 청하고, 대청 뒤 작은 방으로 들어가 다시 이재현에게 알현을 요청했다. 이때 고희경이 와서 전하길 일본 공사관 통역 시오가와가 참정대신을 만나고 싶다 하여 세옥헌 앞뜰로 나가니, 시오가와가 달려들면서 참정대신의 왼팔을 잡고 일본 헌병 5명이 위협하며 휴게실 서쪽 작은 방으로 끌고 가 헌병대장 한명과 장교 한 명이 감시했다.

잠시 후 이토오가 찾아와 “이 일이 동아의 대국을 유지하려는 것인데 공은 왜 오해하는가?”

참정대신: “대사는 생각해 보라, 우리나가 자력으로 독립한 것이 아니요, 귀국이 주장한 것이다. 그 후 10년 동안(서기1895년 동학농민전쟁과 청일전쟁이후) 우리가 자수 자강하지 못하여 이런 변을 당하니 과실은 우리에게 있다. 하지만 귀국이 수년이래로 우리 껍질을 벗기고 고혈을 빨아 남은 게 거의 없고 단지 독립이라는 허울뿐이다. 이제는 이것마저 뺏고자 하니 어찌 견딜 수 있겠는가?”

이토오: “내가 야심이 있는 게 아니라 단지 귀국이 실력이 없어, 이렇게 하지 않으면 동양이 위태롭기 때문이다.”

참정대신: “대사가 전에 정한론을 반대하고 천진조약, 마관조약에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고심했다. 이러한 대사의 덕성과 신의로 볼 때 지금의 조치는 너무도 의외 아닌가?”

이토오: “공이 수반의 자리에 있으면서 이러함은 오해다. 칙령이 있는데도 받들지 않겠는가?”

참정대신: “나라는 제왕 혼자의 나라가 아니다. 우리 황제폐하가 나를 죽일 권리는 있지만 내 듯을 꺾을 권리는 없으니 비록 엄한 분부가 있을 지라도 나의 순국은 직분이니 어찌 황제의 명을 받들겠는가?”

이토오: “만일 기어이 그렇다면 공이 우선 화를 당할 것이다.”

참정대신: “지금 총칼 속에 둘러싸여 대사와 항쟁하니 내 생명은 결정된 것이다. 다시 무슨 화복이 있겠는가? 다만 이 조약은 도저히 따를 수 없으니 원컨대 대사는 신의를 존중하여 양국에 행복 되게 하라” 라고 하며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이토오: 참정대신의 손을 잡고 위로하며, “공의 처지는 이런 난국을 맞이하여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결코 딴 뜻은 없으니 우려할 일이 아니며, 신하의 도리로 말할지라도 나라가 중하고 군주는 다음이다. 다시 한 번 심사숙고하기 바란다.”

참정대신: “대사의 말이 당연하다. 나 역시 대강은 경중을 아는 까닭에 이렇게 하는 것이다.”

이토오: “공의 심경은 동정이 가나, 대세 대국을 고려하라.”

참정대신: “대사는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라, 사람의 도리 상 도저히 하지 못 할일을 강요하면 따르겠는가? 내 몸은 죽일 수 있지만 내 뜻은 꺾을 수 없으니 다시 생각해보기 바란다.”

장면2

결국 이토오는 참정대신 한규설의 의지를 꺾지 못하고 나머지 대신들을 설득 및 위협하여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조약에 서명케 한다. 앞서 언급한데로 고종의 이 씨 왕가는 지켜주겠다는 조항을 한 개 더 추가 시켜서 합법적인 조약임을 강조했다. 서명날인을 마치자 이토오는 군대를 철수 시켰고 참정대신 한규설의 감금도 풀어 주었다. 참정대신은 밖으로 나와 내정부로 가서 참찬 이상설과 손을 마주잡고 통곡했다. 다른 대신들이 모여 들자 큰 소리로 꾸짖으며 “시정배들이라도 공들처럼 말을 뒤집지는 않을 것이다. 나라는 망했다. 나라가 망하면 공들이 편할 것 같은가?” 하며 다시 박제순을 향하여 “어찌 앞뒤 반복이 이처럼 심한가?” 하며 질책했다.

결국 나라의 외교권을 일본에 팔아먹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온 생민들이 조약에 서명, 날인한 이완용, 권중현, 박제순, 이근택, 이지용 등 ‘을사오적’의 간장을 씹어 먹자며 들고 일어났다. 이에 이토오가 순경과 군대를 보내 이들의 사택을 보호하고 출입을 경호해 주었다.

이 뼈아프고 시린 사건은 불과 116년 전에 있었던 역사다. 과연 지금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당시 일본이 우리나라를 집어삼킬 명분이 위 이토오의 발언에서 적나라하게 나온다. ‘우리가 너희 나라를 먹고 싶어서 먹는 게 아니다. 우리도 어쩔 수 가 없다. 우리가 안 먹으면 다른 서양 열강이 너희 나라를 집어 삼킬 것이다. 그러면 대륙으로 진출하여 생존을 모색하여야 하는 우리는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고, 섬에서 계속 안주하며 살아야 할 운명이 된다. 또한 너희 나라는 근대화를 잘 추진하여 부국강병을 할 기회가 충분히 있었다.

그런데 그 세월을 다 허송하고 계속 내부분열만 일삼고 원시시대나 다름없는 퇴행적 체제를 고수하고 있으니 이를 그냥 둘 수가 없었다. 우리는 처음부터 너희 나라를 집어 삼킬 계획은 없었다. 너희 나라가 못나서 힘의 균형이 깨져 자연스럽게 우리의 힘이 너희나라를 덮쳤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대세는 이미 기울었으니 저항해도 소용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참정대신 한규설의 개인적인 애국충정은 높이 사고 있다(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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