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종식민사학, 임나일본부설도 변종으로 부활시키다...

변종식민사학, '임나를 백제가 지배했다', '임나사신설' 등으로 임나일본부설 물타기...

III. 임나일본부설 비판

1. 임나와 일본부

한사군이 한반도 북부를 지배한 것이라면 임나일본부설이란 일본이 4~6세기에 2백 년간 한반도 남부인 임나를 지배했다는 허구의 논리이다. 이 임나는 『일본서기』에 나오는 나라 이름으로, 주변에 신라·백제·고구려가 등장하므로 이를 식민사학에서 한반도의 가야와 같은 나라라고 주장해 오고 있다. 그러나 임나는 결코 가야일 수가 없으니 그 이유는 이렇다. 첫째, 임나는 위치가 가야와 다르다. 『일본서기』에 “쓰쿠시국(규슈九州)에서 2천여 리, 북쪽이 바다로 막히고, 신라의 서남”에 있다고 했다. 바다로 막혔으며 신라의 서남이라고 했으므로 섬으로서 쓰시마(대마도對馬島)로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식민사학자 스에마쓰 야스카즈 이래 김현구(고려대 명예교수)·김태식(홍익대 교수) 등 매국사학자들은 신라의 서남쪽이라는 부분만 가지고 임나를 가야라고 단정한다.

둘째, 임나와 가야는 건국시기와 멸망시기, 왕들의 이름, 소속국들의 수와 이름, 주변 3국과의 관계 등에 있어 모든 면에서 다른 별 개의 나라이다. 단적인 예를 들면 임나와 백제는 개와 닭의 소리로 주인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마을 나라로 나오는데, 이는 쓰시마같은 섬에서 있을 수 있으나, 한반도의 가야와 백제 사이라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없다.

임나를 일본이 369년에 정벌하고 464년에 임나일본부의 존재가 처음 기록되었다. 이것이 만약 조선총독부같은 지배기구였다면 약 백 년 동안 이런 조직도 없이 임나(가야)를 다스렸다는 것이니 맞지 않으며, 임나 정벌 자체가 허구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또 일본부가 기록된 이후에도 그 실체를 인정할 만한 기록이 미약하여 근래 일본인들조차 그 존재기간을 10년 이하로 보는 시각이 있으며, 일본부가 지배조직이 아니라 외교나 통상을 위한 작은 기관이었다고 보고 있다.

2. 김현구, 백제의 임나지배설

일인들의 지배설이 퇴조함에도 불구하고 김현구는 임나(가야)를 일본이 아니라 백제가 지배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근본적으로 성립하기 어렵다. 만약 백제가 가야를 지배했다면 그런 내용이 당연히 『삼국사기』에 기록되어야 함에도 백제와 가야의 관계에 대해서 단 한 건의 기록도 없다. 『삼국사기』에는 오히려 신라와 가야의 관계는 지속적으로 기록되어 가야가 신라에 562년 망한 것으로 되어 있다. 사정이 이처럼 명확한데도 김현구는 『일본서기』의 기록에만 전적으로 매달려 백제의 가야지배설을 고수한다.

김현구의 주장은 『일본서기』를 근거로 하더라도 전혀 합리성이 없는 자기 혼자만의 억지인데, 그는 자기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일본서기』조차 제멋대로 해석하거나 내용을 조작·왜곡하는 것으로 일관하고 있어 전형적인 매국사학의 면모를 보인다. 즉 369년의 임나정벌시 총수 아라타와케·가가와케, 지원군 목라근자(백제 장군)·사사노궤의 4인 중 목라근자만 실제 인물이고 나머지 일인 3인은 가공 인물이기 때문에 이 정벌이 백제에 의한 것이라는 해괴한 논리다.

그리고 목라근자의 아들 목만치가 후에 임나를 지배했다고 하면서 그를 『삼국사기』에 나오는 목협만치와 같은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일본서기』만 믿는 김현구가 자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큰 맘 먹고 『삼국사기』를 언급했으나 이것은 허위다. 왜냐하면 『삼국사기』의 목협만치가 김현구의 주장대로 후일 일본에 건너가 목만치로 활동하는 것으로 가정하면 목만치의 나이가 106세가 되어, 목협만치와 목만치를 같은 인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거짓으로 시작해서 거짓으로 끝나는 것이 김현구의 논리다.

▲ 황순종 역사연구가가 최근에 낸 책, '임나일본부는 없었다.' 저자는 책에서 임나일본부설의 근원인 '일본서기'의 해당 부분이 날조된 것임을 증명하고 있다. 또한 고려대학교 김현구 전 교수가 '일본서기'를 사실로 전제하고 임나를 한땅 남부에 설정한 후 임나를 백제가 지배했다는 주장을 통열하게 반박하고 있다.

3. 백제와 일본의 관계

김현구가 백제의 임나지배를 주장하는 이유는 백제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백제를 일본의 속국으로 만들어 위상을 낮추는데 있다. 백제가 일본의 속국이 되면 백제가 지배하는 임나는 저절로 일본의 속국이 되기 때문이다. 김현구가 허위의『일본서기』만을 가지고 백제가 일본의 속국임을 강조하는 대목들을 보자. 첫째, 그는 백제의 전지대왕·동성대왕·무령대왕이 왕자 시절 일본에 체류했으며 이때 일본왕실에서 정책적으로 일본왕녀와 혼인시켰다고 한다. 그러나『삼국사기』에 따르면 전지대왕이 태자 시절 일본에 간 적은 있으나 그가 일본여인과 결혼했다는 기록은 없다. 더구나 나머지 두 대왕이 일본에서 성장했다는 기록도 물론 없는데도 김현구는 자기의 추측만으로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편다.

둘째, 일왕이 백제 성대왕에게 4차례나 조서를 내려 임나 재건을 촉구하며 대왕을 ‘너’라고 질책한다는 『일본서기』의 내용만을 그대로 믿고 백제의 위상을 깎아내린다. 그러나 일본의 왕실이 백제에서 건너간 왕족들이며 일본이 사실상 백제의 속국이었다는 점은 여러 연구자들이 밝히고 있다. 이런 문제에 가장 탁월한 연구를 한 학자는 최재석(고려대 명예교수)이며, 안춘배(부산대 교수), 그리고 북한의 김석형·조희승 등이 있다.

셋째, 김현구는 백제에서 왕녀와 왕족을 일본에 보내 천황을 섬기는 관례가 있었다며 백제를 일본의 속국으로 취급했다. 그는 9명의 왕녀와 왕족이 천황을 섬기기 위해 파견된 예

를 들었으나 이 경우에는 『일본서기』의 내용조차 조작·왜곡하여 자기의 허위 주장을 뒷받침하려 했다. 위 9명 중 실제의 왕족은 3명에 불과하며 나머지 6명은 김현구가 신분을 조작해 왕족으로 만들었다. 한 예만 들면 궁녀를 왕녀로 속인 것인데 그녀는 백제에서 보낸 것이 아니라 일본에 살던 백제의 이주민이었다. 그녀는 음란한 짓을 하다 일왕으로부터 화형을 당했는데, 김현구는 이를 백제 왕녀라 하여 화형을 당해도 백제에서 찍소리도 못하고 계속 왕족을 보내는 나라로 만들었다. 그리고 위의 왕족 3명의 경우도 그 목적이 천황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업무 수행이나 외교사절 등으로 파견되었다고 『일본서기』에 나와 있다. 거짓과 속임수로 행세하는 명예교수 김현구는 한 민족사학자를 명예훼손이라는 죄명을 씌우고 법원에서 징역 6월의 선고를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진정한 재판은 국민들이 김현구와 이 땅의 매국사학자들에게 내릴 것이다(끝).

글: 황순종 역사연구가, '식민사학의 감추어진 맨얼굴', '임나일본부는 없었다' 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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