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종식민사학의 실체, 중심지 이동설의 허구성...

대륙이 고조선의 중심지로 나오는 증거가 수없이 나타나자,

중심지 이동설을 들고 나오는 변종 식민사학...

 

4. 고조선의 위치

위만조선이 대륙에 있었음을 보았으므로 그 전에 고조선 또한 대륙에 있었음을 알게 되는데, 그 위치를 증거하는 대표적인 기록이 『산해경』에 두 번 나온다. 하나는 조선이 ‘동해의 안, 북해의 가’에 있다고 한 것이니 이는 지금 중국의 산둥성을 중심으로 한 해안 지역을 말한 것이다. 송호정의 말을 빌어 보자.

“조선이 크게 말해 동해의 범위 안 즉 동해에 면했고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 동해 북부의 한 쪽 가에 있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산해경』에 말한 내용을 잘 파악했다고 보겠다. 그러면 조선이 한반도가 아니라 중국의 동해와 북해(발해)에 있었다고 하면 된다. 그러나 송호정은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결국 『산해경』의 기사는 개략적인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뿐 고조선의 본래 위치를 논하는 자료로는 부적합하다.”

어떤 사료가 개략적인 상황을 전한다면 더 구체적인 상황은 다른 사료로 보완하는 것이 역사학자의 역할일 텐데도, 송호정은 이런 역할을 하는 대신 자신의 입장(반도사관)에 맞지 않는 사료를 ‘부적합’으로 판정하는 사이비 학자적 태도를 보인다.

『산해경』에 두 번째 고조선의 위치를 말한 기록은 ‘열양의 동쪽, 바다의 북쪽’이라 했다. 바다라고만 했으므로 발해나 황해로 볼 수 있으며 그 북쪽은 지금 랴오닝성 일대를 말한 것으로 보겠다. 그러나 송호정은 이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한다.

“위 기록은 특정 바다와 특정 지역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막연한 방향만을 제시하고 있어 고조선의 위치를 말해주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

‘바다의 북쪽’이 다소 막연하기는 하지만 조선이 대륙에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에 송호정이 이 기록을 믿고 싶지 않다는 것 뿐이다. 한편 이병도는 이 기사를 부정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왜곡하여 이렇게 비켜 간다.

“바다 북쪽은 즉 진번의 남해인 지금의 경기만(강화만)으로부터 이북의 땅 ····· ”

바다란 경기만을 의미하며 그 북쪽이 조선이라는 설명이니 참으로 기가 막힌다. 『산해경』의 저자가 경기만을 어찌 알고 ‘바다’라고만 했다는 말인가? 왜 하필 경기만이라야 하고, 중국인들이 잘 아는 발해나 황해는 아니라는 근거는 무엇인가?

위 기록에서 ‘바다의 북쪽’ 외에 ‘열양의 동쪽’이라 한 부분은 조선의 위치를 더 분명하게 나타낸다. 열양(列陽)이란 열수(列水)의 북쪽이란 뜻의 지명이다. 앞에서 열수의 입구인 열구가 발해만 서안임을 보았으므로, 열수의 북쪽인 열양도 대륙의 지명이며 그 ‘동쪽’에 조선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병도는 이 기사조차 열수 ‘이남’으로 방향을 마음대로 바꿔 대동강 남쪽에 조선이 있다고 이렇게 속인다.

“나는 열구를 대동강 하류인 황해도의 은율에 비정하고, 열양은 대동강 북쪽 특히 지금 평양 대성산하에 비정하고 싶다. 『동국여지승람』에 구룡산 즉 대성산을 일찍이 ‘노양산’이라 했다 하니, 노양이야말로 열양과 같은 이름에서 연유된 것이 아닌가?”(『한국고대사연구』, 81쪽)

열수나 열구는 앞에서 본 대로 발해만에 있는 것을 이병도가 황해 건너 대동강으로 조작한 것이지만, 여기서 또 ‘노양’을 ‘열양’이라 하니 ‘양’자 하나 같은 것이 어찌 근거가 될 수 있는가?

열수가 반도의 대동강이 될 수 없으므로 서영수(전 단국대 교수)는 지금의 요하라고 하며 이렇게 말한다.

“열수는 오늘날의 대동강으로는 설명할 수 없으나, 태자하와 혼하가 합류하는 요하로 보면 충분히 납득될 수 있다. 이는 열수가 고조선계 지명인 까닭에 고조선의 중심이 요동에 있었던 때의 열수와, 대동강으로 이동한 이후의 지리를 기록한 『한서』「지리지」에서 열수가 대동강으로 기술된 이유도 순리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열수를 요하로 보면 충분히 납득될 수 있다고 말했으나 왜 요하인지에 대한 아무런 근거 자료도 대지 않고 설명도 없다. 또 『한서』「지리지」에 ‘열수가 대동강으로 기술’되었다고 했으나 거기에는 대동강이 기록되지 않았음은 물론, 『산해경』등 여러 자료에는 열수가 요동에 있다고 했다. 거짓을 밥먹듯이 하며 학계를 장악하고 있는 매국사학자들은 머지않아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 조선(단군)의 강역, 비파형동검, 고인돌, 청동제 유물 등으로 위 지역이 단일문화권으로 파악되어, 조선의 강역으로 비정되고 있다. 출처: 이덕일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5. 고조선의 건국

대륙에 있던 고조선은 서기 전 24세기에 건국되었는데 『삼국유사』에는 이렇게 기록했다. 첫째, 중국의『위서』를 인용하여 단군왕검이 2천여 년 전에 아사달에 도읍하고 국호를 조선이라 했는데 요(堯)임금과 같은 시기라 했다. 둘째, 우리의 『고기』를 인용하여 하느님의 아들 환웅이 곰에서 인간이 된 웅녀와 혼인해 아들을 낳으니 단군왕검이라 했으며, 요임금 50년 평양에 도읍하고 조선이라 칭했다 한다. 중국과 우리의 문헌 양 쪽에 단군의 이름과 그 건국시기가 거의 일치하므로 이의 역사성을 부정하려면 근거가 확실해야 하며 논리적으로 합당해야 한다. 그러나 매국사학자들은 단군을 신화라 하며 그 건국시기를 서기 전 10세기 이후로 끌여내려 고조선사를 말살하고 있으니 그 주장들을 보겠다.

“고조선의 개국을 요임금의 시대에 구한 소이가 무엇인가····· 본래 비판과 고증을 요할 성질의 것도 되지 못하므로 이러한 것은 차치하고······”(이병도)

“『삼국사기』에 평양은 선인 왕검의 댁이라 하고 ····· (황해도의) 안악이 아사달의 한 중요한 지점임을 짐작할 수 있다. ···· 이 아사달은 옛 도읍 아사달(평양)에 대한 새 도읍 아사달로 보아야·····”(이병도)

이병도는 고조선의 건국을 요임금 시대에 구한 것은 비판과 고증을 논할 필요도 없는 것이라 일소에 붙였으나, 양국 기록에 있는 시기를 부정하는 논리가 없으므로 무작정 부인하고 있다. 단군은 신화라는 것인데 이기백이나 송호정도 그런 연장선상에 있다.

“단군조선의 연대는 신화에 나타난 대로 믿을 수 없음은 분명하다. 따라서 어떠한 뜻에서건 이 연대에 기초를 둔 추론은 무의미한 것이며····청동기시대 상한을 BC 10세기 경으로 본다면 이것이 곧 고조선의 상한연대가 될 것”(이기백)

“재야사학자들은 기본적으로 건국신화인 단군신화가 실재한 역사라는 입장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많은 오해와 오류를 낳고 있다.”(송호정)

이들이 신화로 밀어내는 『삼국유사』의 내용은 결코 신화가 아니다. 우선 환웅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어느 나라에나 있듯이 개국시조를 숭상하는 표현 방식일 뿐이다. 또 곰이나 호랑이가 여자가 되었다는 것은 곰이나 호랑이를 수호신으로 모시는 부족의 여자를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보면 된다. 외국의 많은 신화들이 역사적 사실로 밝혀지고 있는데도 매국사학자들만 이런 노력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역사가로서의 역할을 포기한 것에 불과하다. 한편 청동기시대 운운하며 고조선의 시작을 서기 전 10세기 이후라는 주장도 허위이다. 윤내현은 한반도의 두 군데 청동기 유물이 서기 전 24세기임을 밝혔으나 학계에서는 이런 사실도 모른 척하고 있다(3부에서 계속).

글: 황순종 역사연구가,  저서:  '식민사관의 감추어진 맨얼굴', '임나일본부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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