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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중립화론은 일제의 조선 침략 전술중립화론은 나약한 노예근성이고 일본 중립화로 나가야 한다.
공관 객원기자 | 승인 2021.03.26 22:41

글: 공관(북동중앙아시아연대 의장)

 

19세기 조선의 중립화론은 강대국의 이익을 위한 것

일제의 조선침략을 위한 청으로부터의 중립화 의미

소련과 중공의 일본 중립화가 성공했어야 한국에 유리

한반도 중립화가 실현돼도 반도안에 갖힌 신세 못 면해

 

▲ 조선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라고 하는 조일수호조규 장면. 이른바 강화도 조약이라고 한다. 일본은 흥선대원군 집권시절부터 끈질기게 수교를 요구해 왔다. 흥선대원군이 실각하고 얼마뒤에 체결을 했는데 이미 미국과 서양에게 불평등한 개항을 한 일본은 운요호 사건을 일으켜 미국이 한것 처럼 함포외교로 밀어 부쳤다. 조선에게는 불평등 조약이었다. 이후 조선은 빠르게 약화되고 중립화론이 대두 됐으나 열강의 조선침략 술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글: 편집자

한반도 중립화론’은 메이지 일본의 조선 침탈의 방략으로 시작되었다.(2)

국가중립화론의 동학

"중립이란 아주 위태로운 것이다. 중립은 당사국인 그 나라에게만 달린 문제라기보다는 이해관계가 얽힌 다른 국가들에 달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 제임스 에드워드 호어.

약소국의 중립국화는 그 국가가 처한 역사와 지정학적 위치에 따라 각각 다르다. 스위스처럼 인접 강대국의 이익에 직접 관련되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개는 다음의 흐름을 따른다.

1. 병이라는 약소국(예;한국)이 갑이라는 세력권(해양세력)과 을이라는 세력권(대륙세력) 사이에 있다. 병이라는 국가는 스스로 갑과 을 세력권으로부터 중립화가 국가의 존립과 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하고 중립국이 되었거나 추진하지만 국제 동학은 그것을 용인하지 않는다.

2. 갑이라는 세력(일본제국)이 을이라는 세력권(중국, 청淸)에 있는 병이라는 약소국(조선)을 을이라는 세력권으로부터 중립화하는 것이 자국의 안보와 팽창에 유리하다고 판단하여 병국의 중립화를 거쳐 자기의 영향권으로 하기 위한 과도 단계로 한다. 그 반대의 경우도 해당된다.

(*1:중립국의 정의는 [네이버 지식백과] 중립, 21세기 정치학대사전으로 갈음한다.)

조선의 경우 명·청대에 이어지는 ‘중국 중심의 조공·책봉체제’ 즉 화이질서(종주와 속방)에서 ‘서구 국제정치체제’를 빙자한 일본이 주장한 조선의 자주는 그들의 침략을 위해 필요했던 위계僞計였다.

그 과정에서 한반도 중립화론도 작동하고 있었다. 이것이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현실이었다. 1차 세계대전 때 중립국 벨기에 사례가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관점으로 보면 부끄럽지만, 고종의 ‘대한제국’도 일본의 한반도 침탈을 위해 중국(청의 속방)으로부터 떨어지게 하는 일시적 과정의 독립이었을 뿐이다.

후술하겠지만 일본열도의 중립화론도 있었다. 냉전 시기 일본열도는 미국의 지배하(영향권)에 들어갔다.

소련과 중공은 일본을 미국의 세력권으로부터 분리하고 자 노력했다. 그 방략의 첫 단계가 일본의 중립화였다. 그 다음 단계로 친소·중공의 세력권으로 만들고자 했었다.

소·중은 일본이 그 다음 단계까지를 목적으로 했다. 하지만 친공산권의 영향권에 들어오지 않더라도 그 중간(중립국)에 위치해도 좋았다. 일본의 중립화 논의에서는 국경이 아닌 지구 단위의 세력권의 중립지대을 뜻한다.

소·중의 일본 중립화 전략과 동시에 일본 자체에서도 중립화론이 거론되었다. 일본으로서는 평화헌법으로 이미 비무장이기에 미국의 세력권과 중·소의 세력권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는 것이 자국에게 국익이 된다고 여겼던 것이다. 현재 대만도 일부 지식인들이 대만의 중립화 독립론을 거론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역학(동학)을 대국적, 주체적으로 보아야만 한다. 과거 우리는 물론 다른 민족과 국가의 융성과 쇠락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 현재 우리가 세계체제와 동북아 세력변이에서 어디에 위치 하고 있는가를 냉철히 진단할 때 우리 민족의 자주적 미래를 제대로 그릴 수 있다.

한반도는 일본열도나 유럽의 영세중립국과는 역사, 지정학적 맥락이 다르다. 설사 동북아시아에서 한반도 전체를 범위로 한 영세중립화가 실현된다 할지라도 그것은 일시적일 뿐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 한민족은 어느 세력권에 들어가기 전의 과도적 형태이거나, 아니면 유라시아의 맨 동쪽인 한반도라는 조그만 주머니에 스스로 갇히는 신세가 될 뿐이다. 그렇게 되면 종속과 굴욕의 굴레에서 몇 세기 동안 헤어나기 힘들 것이다.

나는 결론적으로 말하건대, 남북분단극복과 통일방안의 한 방책으로 한 영세중립화론을 포함하여 어떠한 목적이던 우리에게는 불가하다고 생각한다.

이 안을 주장하는 이들은 세계적 동학에서 한반도가 점하는 지정학적 위치와 역할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헛똑똑인 문사들의 현란한 지적 유희에 불과하다. 실현 불가능한 몽상에 지나지 않는다. 한때 무식한 지식인들로부터 시작되어 정부의 전략정책으로까지 받아들여진 ‘동북아공동체론’과 다를 바가 없다.

우리 민족의 생존 활로를 깊이 생각할 때는 더욱 불가하다. 국경은 고정돼있는 것이 아니다. 그 국가의 영향권은 더욱 변화무상하다. 지나온 역사를 통찰하여 긴 눈으로 보면, 우리 민족이 대륙의 고조선, 부여, 고구려 강역을 잃어버린 후 그 생존권은 사대와 굴종으로 항상 유동적이었다.

한반도 중립화론은 우리 민족에게 무익하다. 따라서 실현되어서도 안 된다. 우리에게는 북방고토를 비롯하여 중앙아시아까지 전쟁없이 진출하여야 한다. 이러한 관점으로 글을 펼쳐보려 한다.

‘한반도 중립화론’ 발안의 역사적 배경

서기 1853년 섬나라 일본은 미국 페리 흑선의 무력시위로 강제 개항 당했다. 에도 막부의 250여 년 이어온 쇄국정책은 서양의 무력에 버티지 못했다. 이 때문에 그들은 미국을 비롯하여 네덜란드, 러시아, 영국, 프랑스와 불평등조약을 맺었다.

이에 반발하여 존왕양이(尊王攘夷)의 기치 아래 왕정복고와 메이지 유신을 성공시켰다. 명치 유신정부는 사민평등, 폐번치현(廢藩置縣)을 실시했다.

전국 사무라이들이 직업을 잃고 유랑했다. 그 해결책이 필요했다. 자기들이 서양에 당한 불평등조약의 보상국가를 찾았다.

보상국가는 한반도를 비롯한 주변국을 그들의 영토로 집어삼키는 것이었다. 일본이라는 국가는 대륙침략의 역사적 경험이 있었다.

서기 660년 라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 후, 그들이 언필칭 한반도 개입의 최초라고 들먹이는 백강구전쟁(白江口 戰爭, 662년)(*2)은 접어두기로 한다. 백제부흥군이 그들 부용(附庸)의 섬나라 일본을 동원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서기16세기 말 도요도미 히데요시가 일본열도의 전란을 평정하고 통일한 후였다. 그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뜻을 이어받아 중국대륙과 인도까지 경략하는 큰 그림을 그렸다.

가도입명(假道入明)이란 명분으로 조선을 차지하고자 임진왜란(壬辰倭亂)을 일으킨 것이 국가적 경험이었다.

메이지 일본도 조선을 우선 경략하여 대륙으로 진출하는 것이 그들의 국가생존전략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3)

그 중심에는 일본의 사토 노부히로(佐藤信淵)의 대전략 「우내혼동비책宇內混同祕策」과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의 『유인록幽囚録』이 자리잡고 있었다.

왜국은 자신들이 서양제국에 당하게 된 것을 그대로 조선 침략에 본떴다. 함선과 대포와 총을 앞세웠다. 1875년 강화도에 운양호를 몰고와서 무력시위를 하였다. 문호개방을 요구했다.

이 때문에 조선은 불평등한 조약을 체결하였다. 강화도 조약(1876년)이었다. 그들이 미국 흑선 페리에 당한 것의 재판이었다. 폭력의 전이(轉移)다.

당시 조선은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화이질서(華夷秩序)라고 하는 국제질서(지역체계-하위체계)에 포함되어 있었다.

“다만 이러한 전통적인 화이질서는 중화에 의한 권력적인 지배라기보다는 의례적인 상하관계를 기준으로, 언제든지 각각의 자립성과 독자성이 보장되는 시스템이었다.” (*4) 명목상으로 중국(청)을 종주국으로 한 중화권(속방屬邦)에 속해 있었다.

서세동점의 세력 변동으로 한반도 조선은 은둔의 나라에서 세계열강의 먹잇감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신흥 일본과 서구열강이 자기들의 영향권으로 편입하고자 군사 외교전을 치열하게 전개했었다. 이에 청국은 「종주권과 속방론」을 내세워 열강의 베트남과 일본의 조선의 침략을 경계했다.

일본과 서구열강은 그들의 국익을 위해 사상적으로는 사회진화론과 문명론으로, 제도적으로는 ‘서구국제법(만국공법)’을 앞세워 침략을 정당화하고, 군사적으로는 총과 대포를 실은 함선으로 우위를 과시하며 중국(청국)의 영향권에서 조선을 때어내려 했다.

동아시아의 세력 전이 시기에 조선 한반도의 중립화론이 거론됐다.

한반도 중립화론은 1882년 임오군란으로 야기된 내정혼란 과정에서 청·일 양국 군대의 한반도 진입이 계기가 되었다. 그 해결방안의 하나로 한반도 중립화론이 거론되었다. 그 도정에 정한론(征韓論)이 있었다. 정한론의 과정에서 한반도 중립화론은 19세기 말 이웃 섬나라 메이지 일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은 일본과 중국(청) 사이에서(임오군란에서 청일전쟁 시기), 나중에는 일본과 러시아가 있었다(청일전쟁에서 러일전쟁 사이). 여기에 제3국의 위치에 있었던 독일, 프랑스, 영국도 자국의 동유럽과 대러시아 정책 차원에서 한반도를 두고 거들었다.

한반도분단 이후에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한반도 중립화론은 민족 내부에서 자발적으로 논의되는 것으로써 3번째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3번째는 시기적으로 내용적으로 또 세분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깊이있는 전략적 안목을 가졌다면, 지금은 한반도 중립화가 아니라, 우리가 주도하여 미국, 중국, 러시아를 설득하여, 일본을 중립화시키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할 시기가 왔다고 나는 주장하고 싶다.

왜냐하면 일본이 우리의 앞날을 막는 큰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어리석게 군다면 그들이 전쟁 없이 미국을 대신하여 우리를 지배할 것이다. 아니 그들이 우리 민족의 주적이 될 것이다.

참고

(*1: [네이버 지식백과] 중립 [neutrality, 中立, Neutralität] (21세기 정치학대사전)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729548&cid=42140...

(*2:삼국사기』『구당서 』에서는 ‘白江口’라 했고, 『일본서기』에서는 ‘白村江’이라 하였다. 현재 이곳이 어디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3:1874년 타이완 침략, 1875년 조선 개항 강요, 1879년 류큐 강제 합병.

(4:『청일전쟁기 한․중․일 삼국의 상호전략』 동북아역사재단 2009. 172쪽. 「청일전쟁 전후 일본정치에의 동아시아 질서 구상」, 오비나타 스미오大日方純夫.

2021.03.18. 한반도에서 공관

공관 객원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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