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을 보면 혼돈의 이 시대를 푸는 열쇠가 보인다.

 

 

글: 조정미 사무국장

(사)동학혁명북접사업회

 

동학순례길 제1길, 동학민회지에서 문바위골까지

동학순례 제1길은 1박 2일로 적당,

동학혁명군의 시작과 끝이 서린 충북 보은 장내리에서 출발

청산면에는 동학혁명군의 지주, 해월 최시형의 딸 최윤을

강제로 결혼시킨 청산군수 박정빈의 공덕비도 순례길에 보여

최윤의 아들 정순철의 발자취와 해월의 피난처 강습처도 남아

옥천 문바위골의 임시대도소는 강론과 훈련장으로

동학혁명의 세력을 키우는 장

 

▲ 동학순례길에서 만나는 장소들

동학순례길 첫째 길은 보은 동학민회지에서 옥천청산 문바위골까지 26km이다. 1박2일로 여유있게 걷기를 추천한다.

옥녀봉 아래 장안 동학민회지에서 출발하여 장내교로 삼가천을 건너면 벙어리성터 아래 개안리와 봉비리를 지난다.

밭 사이 농로를 걷다보면 불목리에서 우진플라임을 만난다. 곧 청주상주간 고속도로 밑을 가로질러 수문2구마을 회관을 만나고 감지고개, 구름고개를 넘어, 마로면 관기초등학교를 지난다.

여기서 점심을 먹는다. 매콤한 꼬막짬뽕에 이어 최근에는 돈가스집이 인기가 좋다. 다시 신발 끈을 다잡고 태화루 골목으로 들어서면 적암천 사여2교(관기교)를 지나 고봉정사로 가는 길이 황금들판이다.

사립교육기관이였던 고봉정사 뒤로는 적암천이 삼가천에 흡수된다. 하천변에 갈대와 억새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곧 이어 삼가천은 보청천에 흡수되어 기대교 아래로 흘러, 옥천으로 폭 100m를 빛내며 청산으로 고고히 흐른다.

기대1교를 지나 만나는 선애빌에는 야영장이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서 하루 밤을 머무른다. 민박도 가능하다. 발 빠른 사람은 청산면까지 가서 머물러도 좋다.

이어서 원정리, 대성리(여기부터 옥천이다), 예곡교 옆을 지나 교평리로 들어서면 청산면이다. 앞에 길이 마을길이라면 이 길은 물길이다.

청산면 입구 청산공원에는 동학재기포기념비와 해월의 딸 최윤을 억지로 결혼시킨 청산군수 박정빈의 공덕비가 함께 있다.

청산면에서 식사는 생선국수나 올갱이국을 추천한다. 식사 후, 정순철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자. 정순철은 최윤의 아들로 동요작곡가이며 손병희의 사위 방정환과 함께 어린이운동을 함께 한 인물이다.

정순철의 생가와 생애벽화거리, 최윤이 옥살이 했던 옛 관아터 등을 둘러볼 수 있다. 다시 발길을 돌려 청산교를 건너 인정리, 한곡리마을회관을 지나 문바위골이다.

해월이 피난처였던 집(당시 대접주 김성원의 집)과 강론을 펼쳤던 장소가 있으며, 문바위에는 동학지도자 7인(박희근, 김정섭, 박맹호, 김영규, 김재섭, 박창근, 신필의)의 이름이 음각화 되어 있다.

문바위 위쪽으로는 동학농민혁명탑이 있으며, 문암저수리 위쪽엔 해월의 아들 덕기의 무덤과 동학군들의 훈련장 터에 수령이 50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그늘을 만들고 있다.

해월은 수운이 죽은 후 보따리 하나로 36년을 떠돌이로 살았다. 이런 이유로 ‘최보따리’라는 별명이 생겼다.

보은 장안은 1885년 이후 해월이 자주 머무르며 육임소, 대도소를 설치하면서 동학조직의 중심이 되었고, 1893년 동학민회는 보국안민의 근대적 민중운동으로 전개하는데 초석이 되었다.

옥천 문바위골의 임시대도소는 강론과 훈련장으로 동학혁명의 세력을 키우는 장소가 되었다. 그리고 해월 가족들이 살아간 이야기가 담겨있다.

순례 첫째 길은 ‘시천주’란 동학사상이 신분제를 해소하고, 남성, 여성, 어린이 자체로 존중 받아야 함을 몸소 실천하고 살아간 위인들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길이다.

(사)동학혁명북접사업회(약칭 동학민회)에서는 동학순례길 안내센터 (☎ 043-543-1893)를 운영하고 있으며, 다음카페 ‘동학민회’에 상세한 지도가 안내되어 있다(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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