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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이 구정? 일제의 민족말살책설날을 구정이라고 부르는 것은 일제식민 통치 동조하는 것이다.
주철희 객원기자 | 승인 2021.02.11 00:34

글: 주철희(역사연구가)

 

신정, 구정은

일제가 우리  정체성인 설날을 말살해

일왕의  신민으로 복속코자  한  일제잔재

설날 유래는 문헌상 신라시기로 거슬러 올라가

백제도 설날 쇠고, 고려는 9대 명절 중 하나로  새겨

오늘날 설날의  공식명칭과 풍습은 고려시대 공식화

조선시대도 변함없이 이어지다 일제가 파괴,

때때옷  설빔에 먹물  뿌리고, 떡방아 못하게 막아

이승만, 박정희 독재군사정권도 구정이라며

앞장서서 말살에  광분, 설쇠는 것에 생활 불이익 줘

노태우 정부 때 민중의 음력설 고수로 설날 부활 시켜

 

설을 신정 구정으로 나눠놓고 우리 설날을 구정이라고 강조하는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의 민화.

설날이 구정(舊正)이라고.....

설날이 언제부터 대한민국의 최대 명절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역사 기록을 통해서 설날의 유래를 추정해 보면, <수서(隨書) : 중국 수나라 역사서>를 비롯한 중국의 사서들에는 “신라인들이 원일(元日)의 아침에 서로 하례하며 왕이 잔치를 베풀어 군신을 모아 회연하고, 이날 일월신을 배례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설날을 원단(元旦)이라고도 불렀던 기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김부식의 <삼국사기(三國史記)>〈제사〉편에는 백제 고이왕(古爾王) 5년(238) 정월에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냈으며, 책계왕(責稽王) 2년(287) 정월에는 시조 동명왕(東明王) 사당에 배알하였다고 한다.

백제의 정월 제사가 오늘날의 설과 관련성을 가졌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으나, 이때부터 정월에 조상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것으로 보아 오늘날 설날과 유사성을 짐작할 수 있다.

신라에서는 제36대 혜공왕(惠恭王)(765∼780) 때에 오묘(五廟: 태종왕, 문무왕, 미추왕, 혜공왕의 조부와 부)를 제정하고 1년에 6회씩 성대하고도 깨끗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6회 제사 중에는 정월 2일과 정월 5일이 여기에 포함된 것으로 보아 설날의 풍속이 형성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설과 정월 대보름, 삼짇날, 팔관회, 한식, 단오, 추석, 중구, 동지를 9대 명절로 삼았다. 오늘날 ‘설날’이라는 명칭과 풍속은 고려시대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설날과 한식, 단오, 추석을 4대 명절이라 하였다. 당연히 고려와 조선은 태음력을 사용했기에 새해 또는 설날은 음력 정월 초하루가 된다.

19세기 열강의 침략이 빈번한 시기인 1895년 을미개혁(乙未改革)으로 양력이 도입되면서 1896년 1월 1일(음력 1985년 11월 17일)부터 공식적인 새해 첫날이 되었다.

이때 “새로운 양력을 세운다”는 뜻의 건양(建陽)이란 연호를 사용하였다. 국가의 시간도 서구의 그레고리력이라는 24시각 양력체계로 전환되었다.

1910년 경술국치 이듬해부터 <조선민력>의 공표를 통해 일본의 연호, 역법체계, 국가의례일 등을 대중화시켰다. 일본의 양력 1월 1일에 지낸 설(お正月)을 조선에 도입하여 신정(新正)이라고 지칭했다.

신정은 ‘새로운 것, 진취적인 것, 발전된 것’으로 규정된 반면에, 기존 음력설은 구정(舊正), 즉 ‘낡은 것, 오래된 것, 버려야 할 것’으로 규정하였다.

일제는 조선 문화 말살 정책 목적으로 조선의 설날(음력설)을 없애기 위해 조선인들이 설날에 세배하러 다니거나 설빔을 차려입은 경우에는 먹물을 뿌려 옷을 얼룩지게 하였다. 

또한, 떡 방앗간을 돌리지 못하게 경찰을 동원해 감시하는 등 온갖 탄압과 박해를 가하였다.

그러나 1천년 이상 설날을 쇠는 풍습을 없앤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해방 이후에도 음력설은 여전히 구정이라는 옛것으로 규정되어 명절로서 대접받지 못했다. 이승만 정부와 박정희 정부는 양력 1월 1일부터 1월 3일까지를 공휴일로 지정하였다.

특히 신정을 설날로 규정하기 위해 이중과세(二重過歲)라는 이유로 사기업체의 휴무에 불이익을 주면서까지 음력설을 없애려 하였다.

이러한 정부 시책으로 서울 등 대도시의 일부 가정에서는 신정(양력설)을 쇠는 풍토가 생겨났다. 1천여 년 동안 문화로 굳건하게 자리한 음력설은 쉽게 일그러지지 않았다. 

대부분 가정에서 여전히 음력설에 차례를 지내는 전통과 세시풍습을 유지하면서 정부도 문화 전통을 존중해야 했다. 정부는 1985년부터 1988년까지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음력 1월 1일 하루를 공휴일로 지정하였다.

즉 여전히 설날은 양력 1월 1일의 몫이었다. 1987년 6월 항쟁은 민주주의 초석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풍속도 되살렸다. 1898년 취임한 노태우 정부는 민족 고유의 설날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국민 여론을 받아들여 1989년에 음력설을 ‘설날’로 지정하고, 섣달그믐(음력 12월 말일)부터 음력 1월 2일까지 3일 간을 공휴일로 지정하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여전히 설날을 구정이라고 칭하는 사람이 많다.

일제 35년 그리고 이승만과 박정희 독재시절의 경험치가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구정이란 구태의연한 오래된 것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설날은 구태의연한 문화가 아니다. 우리 민족이 오랫동안 지켜온 세시풍속이며, 문화이다. 혹여, 설날을 아직도 ‘구정’이란 잘못된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았으면 한다.

주철희 객원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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