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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 신화 이어받은 배달겨레 왕조들배달겨레는 전통적으로 버드나무로 상징되는 모권이 강했다.
김상윤 | 승인 2021.02.02 21:37

글: 김상윤(광주마당 고문)

 

 

부여의 시조 해모수가 나오지만 나라는 버드나무 여인 유화가 열어

만주 창세신화는 버들 여신이 주신이고 버드나무는 우주 목으로 주목

고려 태조 왕건도 버들 여인 도움받아 고려를 창건하고,

리 조선 태조, 이성계도 우물가에서 버들잎 처녀와 인연 맺어

 

▲ 부여개국신화의 한 장면. 해모수는 버들꽃아씨를 겁탈한다. 버들여신이 건국신화에서는 신격이 매우 낮아졌다. 그림: 김산호 화백

 

만주 창세신화 6

'해모수'는 부여의 시조로서 '버들꽃아씨'를 잉태시켜 주몽을 낳게 한 주몽의 아버지다.

해모수는 고유명사이기도 하지만, 윤내현에 의하면 '해 머슴애'라는 뜻으로 '하늘의 아들' 곧 단군과 같은 보통명사이기도 하단다.

해모수나 버들꽃아씨나 주몽은 모두 '건국신화'에 나오는 이름들이어서 이미 '창세신화'나 민족의 '시조신화'다운 맛은 사라지고 없다.

건국신화는 일반적으로 모계사회가 지난 지 오래된 후 만들어졌기 때문에, 여성은 신성한 자태만 남긴 채 대부분 덜 중요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버들여신'은 만주 창세신화의 주신이었고, 버드나무 역시 초원지역의 우주목으로서 매우 신성한 나무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부여나 고구려의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유화부인의 신격도 건국신화 이전에는 매우 높은 신격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광개토왕릉비문'에는,

'옛날 시조 추모(주몽)왕은 기틀을 세울 때 그는 북부여 천제(天帝)의 아들로부터 출생했는바 어머니는 하백의 딸이었다.'는 내용이 나오고,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시조 동명성왕' 조에도,

'이때 (금와는) 태백산 남쪽의 우발수에서 한 여자를 얻어 그녀에게 물으니 대답하기를, "나는 하백의 딸로서 이름은 유화라고 합니다. 여러 아우들과 함께 나와 놀고 있을 때 한 남자가 나타나 스스로 천자의 아들 해모수라 하면서 나를 꾀어 웅심산 아래 압록강 가의 집속에서 사욕을 채운 뒤 곧 가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유화는 '창세신화'에 나오는 마고여신이나 아부카허허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신격이 낮아졌다.

다윗을 여호와에게 비길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유화는 버들 여신의 위엄은 고사하고, 해모수에게 겁탈당한 죄로 하백의 명령으로 우발수로 쫓겨나는 신세로까지 전락한다.

그런데도 유화는 만주 창세 여신인 버들 천모의 오랜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았을 것이라 여겨진다.

유화 이래 새로운 건국신화가 등장할 때마다 버드나무와 관련된 여인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는데, 이는 버들 천모 숭배나 버드나무 숭배가 역사의 고비마다 계속 신성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런 사례가 '왜 우리 신화인가'에 여럿 나오므로 책 내용을 따라가 보자.

고구려의 뒤를 이은 고려 왕건도 '버들여인'의 도움으로 나라를 세운다.

왕건이 궁예를 섬기는 장군일 때, 늙은 '버드나무' 아래에서 쉬는데 '유씨 처녀'가 길옆 시냇가에 서 있었단다.

왕건이 그 버들아씨 집에 머물면서 유씨 처녀와 잠자리를 함께 하였으나 그 후 소식이 끊어졌더란다.

유씨가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있었는데, 왕건이 그녀를 불러다 부인으로 삼았으니 태조비 신혜왕후 유씨가 바로 그 버들 처녀였다.

홍유, 배현경, 신숭겸, 복지겸 등이 왕건을 추대하려고 하였으나 왕건은 낯을 붉히며 완강히 거절하였다.

이때 유씨 부인이 휘장에서 나와 손수 갑옷을 가져다 왕건에게 입혀 주었고, 장군들이 옹위하고 나가 마침내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버드나무 아래 서 있던 버들아씨가 왕권의 생산자가 된 것이다.

버들꽃 아씨 즉 유화는 태조 왕건과 고려의 조상들이 '혈통다운 혈통을 지녔다'는 혈통의 증거자로서 왕권의 생산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성계 역시 우물가 버들잎 처녀와의 만남이 여러 설화에서 거듭 나타나고 있으니, 고구려 이래 조선 시대까지 왕이 될 사람은 버들 여인과 인연을 맺으면서 그 생명력을 전수하는 통과의례를 거쳐야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가 만주지역에서는 더욱 뚜렷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김상윤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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