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 굿을 알면 한단고기의 참모습이 보인다.

 

선도의 중심, 자부 선생에게 보이는 무당 굿 현상

자부 선생과 태호복희 모두 접신과 밀접하게 연관돼

자부 선생의 제자, 중국 황제헌원도 무당으로 보여

 

▲ 김금화 만신이 굿을 하면서 신들려 있다. 그는 서해안 풍어제를 주관하며 개인 굿이 아닌 고울 굿 차원의 큰 굿을 주관했다. 황해도 굿의 대가로 해방 전 10대에 신들려 내림 굿을 하고 무당의 길을 걸었다. 굿 마당 배경을 장식하고 있는 무그림이 수 많은 신들로 채워져 있다. 만신이 들고 있는 꽃대와 설치된 신대는 모두 일연의 삼성기(단군사화)의 한웅천왕이 내린 신단수다. 저 신대에 내린 원신은 한웅천왕이다. 김금화 만신은 서기2019년 파란만장한 삶을 마치고 돌아가셨다. 자료: 경인일보

외래 문물 사조, 종교가 본격적으로 밀려드는 시기는 삼국시대로 나타난다. 불교가 삼국시대에 들어왔다는 것은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 나타난다. 소수림왕 때다.

당나라에 유학한 최치원은 유학자로 유명한데 유교도 신라 말기에 이미 들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교도 영류왕 때 들어 왔는데 이 때문에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키는 계기가 됐다고 한단고기 고구려국 본기에서 말한다.

단군조선이 문을 닫자 열국들이 분리 독립하여 각자 단군을 이어받았다고 했다. 북부여는 창건자 해모수를 단군이라고 하고 이하 임금들의 일반명칭을 단군이라고 했다. 고구려 시조 고주몽도 삼국사기 왕력조에 보면 단군의 씨(子)라고 하고 있다.

신라는 삼국사기 신라본기 박혁거세 조에 신라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6촌 사람들이 조선의 유민 遺民이라고 하고 있다(先是 朝鮮遺民 分居山谷之間爲六村). 조선이 망하고 그 지역에 버려진 백성이라는 뜻이 있다.

조선이 문을 닫고 열국으로 분리 독립한 뒤 각자 조선을 이어받았다고 한다. 이어서 불교, 유교, 도교 등 외래 종교가 들어왔다.

그렇다면 외래 종교가 들어오기 전에 우리를 이끌던 종교나 철학사상이 없었을까. 있었던 것으로 나온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박혁거세 다음 임금이 차차웅이다. 박혁거세의 적자라고 한다.

이 조에 차차웅은 자충이라고도 하는데 김대문이 말하길 방언으로 무巫라고 한다고 풀고 있다. 계속해서 무는 귀신을 섬기고 제사를 드리는데 이런 이유로 세상 사람들이 그를 경외하며 존장자로 부른다. 그래서 자충이라고 한다(次次雄 或云慈充 金大問云 方言謂巫也 世人以 巫事鬼神 尙祭祀 故畏敬之 遂稱尊長者 爲慈充).

이것은 신라 2대 임금이 무당였다는 이야기다. 귀신을 섬긴다는 것을 볼 때 지금 무당과 같이 신들린 존재다. 접신하여 귀신을 섬기는 사람이다. 또 제사를 드린다는 것에서 당시 신라의 임금임을 알 수 있다. 祭는 하늘에 굿을 하는 것이고 祀는 땅신에 굿을 하는 것이다. 또 제는 사람과 신이 하나가 된다는 뜻이 있다.

당나라에 유학하여 벼슬까지 한 유학자, 최치원이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라는 말을 난랑이라는 화랑의 비문을 쓰면서 서문에 새겼다. 풍류가 뭐냐고 했을 때 유, 불, 도를 포함하며 핵심은 접화군생 接化群生이라고 했다.

이것은 외래종교 또는 철학사상이 들어오기 전의 우리 철학사상이다. 접화군생이라는 말을 풀어보면 모든 살아있는 생명을 접하여 교화시킨다고 첫 번째로 풀 수 있다. 생명을 살리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군생은 사람뿐 아니라 이외의 생명체를 포함하며 더 나아가 우주 만물이라고 푸는 견해가 많다.

일연의 삼성기에 나오는 홍익인간이 인간에 국한된다고 볼 때 이보다 더 큰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상이 외래종교, 문물 사조가 들어오기 전의 우리 정신세계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당시 백성들이 이런 심성과 정서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정서와 심성을 대변하는 자가 무당이었고 굿 속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한단고기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자부선생은 발귀리의 후손이다. 태어나서 신이 밝아 득도하여 날아올라(飛昇) 일찍이 해와 달의 궤도와 운행하는 차례를 측정하고 오행의 수리를 미루어 고찰한 칠정운천도를 지었으니 이것이 칠성력의 기원이다.”

 

자부 선생이 신이 밝았다고 한다. 이는 신과 친했다는 것이고 결국 신들린 존재, 접신한 존재다. 신이 밝아 득도했다고 한다. 득도한 능력은 해와 달을 측정하여 칠정운천도七政運天圖를 짓는 것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칠성력七星曆이라는 인간의 시간을 정하는 달력이 나왔다고 한다.

중국 갈홍이라는 사람이 포박자 抱朴子를 썼는데 거기에 황제가 청구에 와서 풍산을 지나서 자부 선생을 만나 삼황내문을 받아 만신을 불렀다고 한다(임승국, 한단고기, 정신세계사, 2000. 40쪽).

여기서 핵심은 중국 역사의 시조라고 하는 황제가 만신을 불러냈다는 것이다. 이는 만신을 부린다는 뜻이다. 만신을 다루는 존재는 우리나라에서는 무당이다.

무당을 다른 말로 만신이라고 한다. 무당이 수많은 신에 들려 굿을 한다. 신별로 특징이 있어 신 옷도 가지각색이다.

그래서 굿당에 가보면 무복, 신복이 옷걸이에 수십 개 걸려 있다. 신이 내릴 때마다 거기에 맞는 신복으로 갈아입는다.

황제가 이런 수많은 신을 부리는 존재가 됐다는 것이다. 무당이었다는 소리다. 이렇게 된 것이 자부 선생을 만나고 나서다. 자부 선생이 전수해준 것이다. 그렇다면 자부 선생도 무당일 수밖에 없다.

이후 이어지는 중국의 요, 순, 우임금도 신들린 존재로 나타난다. 접신해서 춤추는 모습을 보였다(미르치아 엘리아데, 샤마니즘, 까치, 2007. 389, 534쪽).

한단고기 태백일사 신시본기에는 이런 말도 나온다.

태우의 한웅은 신시가 열린 뒤 5번째 한웅인데 열 두 아들을 두었다. 그중에 막내가 태호복희다. 태호복희가 어느 날 꿈에서 몸에 삼신이 강령했는데 만리를 꿰뚫어 볼 수 있게 됐다. 이에 삼신산에 가 하늘에 굿을 올리고 천하에서 궤도를 얻었다.

여기서 핵심은 삼신의 신령이 자신의 몸에 내렸다는 것이다. 접신했다는 뜻이고 신들렸다는 것이다. 무당의 신들림과 같다. 신들린 존재들은 그 뒤 초능력이 생기고 신비 체험을 한다. 자부 선생이나 태호복희나 모두 우리 전래 仙人들인데 이들의 특징 중의 하나가 신들렸다는 것이다.

또한 풍류도, 선도의 부활이라고 하는 동학의 수운 최제우도 이러한 신들림 현상을 본인 자신이 고백한다. “밖에서는 신령한 기운이 나를 접령하고 안에서는 가르치는 말씀이 내렸다.” 라고 한다(外有接靈之氣 內有降話之敎-동경대전, 논학문).

수운은 그 神을 지기至氣, 귀신, 천주, 상제, 한알님 등으로 표현한다. 오늘날 무당과 다르지 않다.

한단고기 위서론자 중 대표 인물이 이문영이다. 그는 조선총독부 황국식민주의 사관을 숭배하는 인물이다. 한단고기 위서론을 적은 그의 책을 보면 일본을 높이고 한국역사를 파괴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다.

그는 이유립이 한단고기를 창작했다고 한다. 이유립은 한학자다. 그의 부인 신매녀 할머니는 이유립이 한학자로서 무당 굿과 같은 시끄러운 것을 아주 싫어했다고 한다. 그러한 사람이 무당 굿의 요소가 곳곳에서 발견되는 한단고기를 창작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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