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 무당 세계는 차별하지 않고 너와 나를 가르지 않는다.

 

글: 김상윤(광주마당 고문)

 

광주비엔날레 실무책임자로 미국 뉴욕에 갈 때 ‘왜 우리신화인가’ 휴대

귀국길에 섭렵한 뒤 책을 놓고 내려 낙담, 다시사서 2번 더 읽어 소화

내용 중에 만주족 창세신화 등장, 9모링으로 구성, 신화가 우리와 상통

청나라와 러시아의 전투 중 만주족 무당이 나타나서 양쪽 병사 치료

“버어더인무라는 토착 여샤먼이 아홉 가닥 뿔이 난 흰 순록을 타고

부락에 나타나 양쪽 병사들을 치료하고

짝짝이(하라치)를 치며 노래하고 춤추면서

3일 밤낮으로 만주족 창세신화, ‘우처구우러본’ 설창”

 

 

▲ 샤먼들은 눈을 가리는 경우가 많다. 마음의 눈으로 하늘이나 정령과 대화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만주 창세신화 1

2000년은 제3회 광주비엔날레가 열렸던 해다. 나는 광주비엔날레 실무책임자로서 전시기획실장인 장석원 교수를 대동하고 비엔날레 홍보차 뉴욕을 다녀왔다. 뉴욕 한국문화원의 적극적인 협력이 있었다.

뉴욕으로 출발하기 전에 나는 한국작가 부문의 해설가, 김홍희 선생의 저서인 '백남준'을 가방에 넣었다.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백남준 전시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홍희 선생의 책 덕분에 구겐하임 1층부터 7층까지 꽉 들어찬 백남준의 작품을 속시원히 감상할 수 있었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원형 건물인데 위로 올라갈수록 넓어지는 독특한 구조였고, 가운데는 1층부터 7층까지 툭 터져 있었다. 1층에서 7층까지 터져있는 중앙에 '야곱의 사다리'라는 거대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히야, 이래서 백남준이로구나!" 감탄이 절로 나왔다.

나는 백남준 책 이외에 또 한 권의 책을 가져갔었다.

'왜 우리 신화인가'

귀국길에 이 책을 다 읽었는데, 책 맨 뒤에 '만주의 창세신화'가 실려 있었다. 저자는 이 만주의 창세신화가 '동북아 신화의 뿌리'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중국식으로 '천궁대전' 그러니까 '하늘궁전의 큰싸움'이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원래 신화 이름은 '우처구우러본'이라고 한단다.

‘우처구’는 신주(神主)나 신판(神板) 혹은 신을 모신 감실을 뜻하고 ‘우러본’은 이야기라는 말이라고 하니, '(조상)신들의 이야기'라는 뜻이 되겠다.

우처구우러본은 전부 9 모링으로 짜여져 있는데 모링이란 차례나 회라는 뜻이라니, 우처구우러본은 아홉 개의 기원신화로 구성된 창세신화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창세신화는 불교나 유교 또는 고급한 외부 종교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순수한 형태여서, 만주 원시신화의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비행기 안에서 밑줄을 그어가며 이 책을 다 읽었는데, 아뿔싸! 책을 비행기 안에 그대로 둔 채 내리고 말았다.

책은 다시 사면 되겠지만 밑줄치며 요약해 놓은 메모는 어떻게 하지?

그후 책을 다시 사서 다시 밑줄 그으며 요약을 한 것이 2006년이었고, 2013년에도 또다시 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번에는 만주 창세신화인 우처구우러본을 천천히 따라가 보기로 하자.

 

만주 창세신화 2

1모링

[ 사하렌 하류의 동방에서 아홉 가지 뿔의 신록(神鹿)을 탄 버어더인무 샤먼께서 걸어오신다."

하늘에 아름다운 무지개 빛날 때, 사할린 물이 물보라 칠 때, 하늘에서 금빛 지느러미 잉어가 바람에 날려오고 나무 구멍에서 네 발 은(銀)뱀이 기어나올 때, 몇 대조인지 모르는 할머니께서 살림을 주관하던 그 초기에, 사하렌 하류의 동쪽에서 아홉 가지 뿔 신록을 타신 버어더인무 샤먼께서 걸어오셨네.

연세가 백여 세인데도 얼굴에는 홍조가 넘치고, 백발이 머리를 덮었으나 아직 힘이 장사이시네.

신매(神鷹)께서 그녀에게 정력을 주셨고, 어신(魚神)께서 물재주를 주셨고, 아부카께서 신의 수명을 주셨고, 온갖 새들이 노래하는 목청을 주셨고, 온갖 짐승이 타실 짐승을 주셨기 때문이라네.

온갖 기술로 사악한 것을 물리치시고, 모든 일을 환히 꿰뚫어 보시며, 백 가지 재난을 점쳐 아시고, 하라치(짝짝이)는 신의 가르침을 전하네.

여러 종족을 사랑하시는 그 깊은 정은 동방의 태양신(태양빛)처럼 대지를 환히 비추네...]

 

여기까지가 1모링을 전부 옮긴 것이다.

우처구우러본은 맨처음에 버어더인무 샤먼이 등장한다. 버어더인무 샤먼은 뿔이 아홉 개나 달린 신성한 순록을 타고 걸어나온다.앞으로 나올 모든 이야기는 버어더인무라는 샤먼의 입을 통해서 전하는 하늘의 이야기라는 말이다.

우처구우러본의 이야기는 1모링 이후 신들의 탄생과 악신의 등장, 사람을 비롯한 삼라만상의 탄생 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대홍수로 모든 것이 사멸한 이후 다시 사람이 태어나고 대샤먼이 신들에 의해 다시 길러지는 이야기로 대단원이 끝난다.

그러니까 이 창세신화는 맨처음에 버어더인무라는 샤먼의 이야기로 시작되어, 마지막에 다시 대샤먼이 탄생하는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구성이다.

그런데 우처구우러본은 청나라 때 만주족 신화를 모아 놓은 '만주족의 신화 이야기'(滿族古神話)라는 책에는 실려 있지 않다.

이 이야기는 부육광의 '살만교와 신화'(薩滿敎與神話,1990)에 실린 것인데, 그동안 만주 여러 종족들에게 구전되어 오던 것을 최근에야 문자화한 것으로 보인다.

부육광의 아버지 부희륙과 동료인 오기현이 1939년에 샤먼인 백몽고(白蒙古)의 구술을 기록한 것이 이 이야기를 처음 기록한 것이라고 한다.

몽골의 대서사시 '게세르'는 3천 년 전부터 불리어졌고, 천 년 전부터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고 한다.

우처구우러본도 오래 전부터 만주에 살던 여러 부족들에게 여러가지로 구전되다가, 청나라 강희제 때 러시아와 야크사 전투(1685년)를 할 때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 같다.

청나라 팔기병들이 샤하렌 즉 흑룡강 오른쪽에 주둔하여 야크사 전투를 하고 있을 때, 버어더인무라는 토착 여샤먼이 아홉 가닥 뿔이 난 흰 순록을 타고 부락에 나타나 양쪽 병사들을 치료하고 짝짝이(하라치)를 치며 노래하고 춤추면서 3일 밤낮으로 우처구우러본을 설창하고 다녔다는 것이다.

버어더인무가 설창하던 우처구우러본은 물고기 뼈를 두드리면서 훨훨 날며 춤을 추던 보더인 대샤먼에게 이어졌고, 백몽고는 풍마마라 불리던 보더인 대샤먼의 설창을 배운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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