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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신사참배, 왜 단군은 참배 안 하나일제 부역을 청산 안 한 개신교계가 대한민국을 갉아먹고 있다.
오종홍 기자 | 승인 2021.01.21 23:58

 

 

일제치하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아침마다 궁성요배를 합시다”

평양을 중심으로 조선 개신교회가 신사참배 앞장서 전파

“신사참배는 종교행위 아니니

기독교 교리에 위반되지 않고

단순한 애국적 국가 의식이니 솔선하여 이행하자.”

 

▲서기1930년 후반에 들어서자 일제는 전시동원체제로 식민지배한다. 가정의 숫가락, 솥단지 등을 공출해가고 심지어 소나무에서 송진을 채취하는 운동까지 벌이며 전쟁에 광분했다. 국민정신을 총동원하자며 일제부역자들은 자발로 조선민중을 일왕신민으로 묶으려 했다. 

한 얼굴책(facebook)에 조선총독부 식민지 시절 한 면을 엿볼 수 있는 자료가 올라와 화제다. 홍보 전단 같기도 한 것인데 “아침마다 궁성요배를 합시다.”라는 선동 문구가 새겨져 있다.

어떤 단체가 이 짓을 벌이고 있는지도 종이 자료에 새겨져 있다. <國民精神總動員朝鮮聯盟>이라고 쓰여 있다.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이다.

이 전단이 나오던 시기가 서기 1939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시기는 이미 일본 제국주의가 끝없는 탐욕으로 치달으며 패망으로 달리던 시기다.

국가 총동원령을 내려 전시체제로 돌입해 인력과 물자를 마구잡이 뜯어갔다. 전쟁을 북으로는 시베리아에서부터 남으로는 태평양, 인도네시아 그리고 중국으로 확장하여 전쟁물자가 절대 부족하던 시절이었다.

일제 치하에서 살았던 분들 얘기를 들어보면 소나무 송진까지 뜯어갔고 집안의 놋수저 그릇을 강제로 가져가던 시절이다.

한편으로는 국민정신을 하나로 모으는 관제 운동이 벌어졌는데 이번에 나온 이 전단도 그런 것 중의 하나였다.

궁성요배 宮城遙拜는 열도에 있는 일왕이 있는 동경을 향해서 절을 하는 것을 말한다. 이 전단을 설명하는 글에 따르면 당시 종교계를 동원해서 벌어졌는데 특히 북한 평양의 개신교 교회를 중심으로 번져 갔다.

서기 1938년 2월부터 당시 조선 교회에 권고하는 형태로 자리 잡아 갔다. 이해 2월에 조선총독부에서 지시가 내려왔고 같은 해 9월 9일 평양 서문박예배당에서 개최된 제27회 총회에서 공식 실행하기로 결의했다고 한다.

이때 총회 총회장이 홍택기 목사였는데 이 총회에서 “신사참배는 종교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기독교 교리에 위반되지 않으며 단순한 애국적 국가 의식이므로 솔선하여 이행하자.”고 결의했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예배를 시작하기 전에 일왕 사진을 앞에 놓고 동방요배라는 절을 한 것을 드러난다.

해방 후 이 같은 행위를 회개하고 신사참배 취소 성명서를 발표했다고 한다. 하지만 평양을 중심으로 일제 치하에서 혜택을 입은 개신교라는 것이 밝혀졌다.

북쪽에 김일성 정권이 들어서고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토지개혁으로 재산을 잃자, 대거 남한으로 내려왔다. 이 폐단의 하나가 제주 4.3 학살을 촉발한 소위 서북청년회다.

이들이 대부분 평양지역 개신교회 사람들이다. 서북청년단은 남한 개신교의 주축으로 성장한 영락교회 등에 포진하였고 이 교회들이 일제 치하 궁성요배를 한 평양지역 개신교회의 후신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앞서 평양 교회들은 “신사참배는 종교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기독교 교리에 위반되지 않고 단순한 애국적 국가 의식이라며 솔선하여 이행하자.”라고 했다.

그런데 이들은 지금 자신의 뿌리인 단군을 신화, 미신이라며 일제가 퍼뜨린 것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이들의 신사참배 논리라면 국조 단군에게 머리 조아리고 예배에 앞서 단군 영정을 걸어놓고 절을 하는 것은 종교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기독교 교리에 위반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는 단순한 애국적 국가 의식이므로 솔선하여 이행해야 한다.

하지만 단군상 목을 자르고 우상숭배라고 하며 자기 조상 단군을 미신 취급하며 ‘우리가 곰의 자식이냐’며 핏대를 세운다.

이들이 성조기를 흔들며 자신들의 정신적 고향을 개신교 왕국, 미국으로 삼고 있는데 이는 일제 치하 친일부역행위가 미국숭배로 옷만 갈아입은 것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이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전단에 나오는 ‘국민’이라는 말은 지금도 대한민국 백성을 일컫는 말로 쓰고 있다.

가장 많이 쓰는 말 중의 하나인데 이게 일본제국 황국신민의 약식 표기인 국민에서 온 말이라는 것을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일왕을 지금도 일본에서는 천황폐하라고 한다. 일본은 천황의 나라인데 그 나라의 백성을 황국신민이라고 불렀다.

국민이라는 말을 우리가 쓰고 있는 한 우리는 우리가 싫든 좋든 황국신민의 주술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국민과 대조를 이루는 말이 인민이다. 인민은 '인민위원회'에 보듯이 해방공간시기까지 아무런 거부감 없이 쓰인 말이다.

지금은 인민이라는 말을 쓰면 오히려 거북스럽고 적대감이 들 정도다. 공산주의자라는 인상을 받게 한다. 인민人民은 중국 고전에서 시작된 말이며 조선왕조실록에도 등장한다.

人은 지배자 상층부로 풀이되며 民은 피지배자 하층부를 뜻한다. 공동체 구성원 모두를 지칭하고 둘이 대립 관계가 아닌 조화 관계다. 이 말이 분단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친일세력이 지배하는 구조 속에서 이들의 세뇌 교육으로 공산당을 연상케 하는 말이 됐다.

궁성요배로 대표되는 친일부역과 인민이라는 말을 변질시킨 분단상황은 별개가 아닌 하나다. 친일잔재를 청산하는 것이 분단을 극복하는 길이다.

아래는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이 무엇을 하는 단체이며 이 단체를 만든 자들과 활동을 알려주는 글이다. 전문을 붙인다. 친일부역자들의 단면을 파악할 수 있다.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國民精神總動員朝鮮聯盟)-

[일제 말 국민정신총동원연맹과 국민총력조선연맹이라는 전시총동원기구가 만들어지면서 10개 가구를 단위로 애국반을 조직했다. 매월 1회 개최되는 애국반회의(반상회)를 통해 각종 시책을 전달하였으며, 그 이행 여부를 검사하고 주민들끼리 서로 감시하도록 했다.

일제강점기인 1938년 6월 중순경 민간 사회교화단체 대표자들이 총독부의 종용에 따라 자발적인 총후봉사활동을 내세우며 조직한 친일단체로, 일본의 황민화(皇民化) 정책에 선도적 역할을 했던 친일 단체이다. 40년 10월 국민총력조선연맹으로 기구를 개편했다.

1938년 7월 7일 민간 사회 단체 대표자들이 조선총독부의 종용에 따라 결성한 친일 전시동원 선전 조직이다. 같은 해 6월 22일 서울 부민관에서 열린 발기인 대회를 열었으며 한일 양국의 59개 단체, 56명의 발기인이 참석했는데, 한국 측에서는 윤치호(尹致昊), 최린(崔麟), 김활란(金活蘭), 김성수, 박흥식(朴興植), 방응모(方應模) 등 27명, 25개 단체가 참여했다. 발기인 대회에서는 한상용 등 6명의 이사, 박영철 등 13명의 창립총회 준비위원을 뽑았다.

지원병 독려는 물론 창씨개명 독려, 공출과 현금 독려, 폐품 수집, 일본어 강습회 등 활동이 미치지 않은 분야가 없을 정도로 많은 활동을 하였다.

이 단체가 구체적으로 제시한 실천강령을 보면, ① 황국정신 현양 ② 내선 일체 완성 ③ 비상시 국민생활 혁신 ④ 전시 경제정책 혐력 ⑤ 근로 보국 ⑥ 생업 보국 ⑦ 총후 후원, 즉 군인원호 강화 ⑧ 방공(防空) 방첩 ⑨ 실천망의 조직과 지도의 철저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1941년 12월 미·영 타도 대강연회(연사는 이광수·주요한·김동환 등)와 결전 부인대회(연사는 김활란·모윤숙·박순천 등)를 개최하여 황민의식을 고취하였으며, 1942년 2월부터 근로보국운동의 일환으로 부녀층을 광범위하게 동원하여 군복 수리작업을 전개하였다.

중일전쟁 발발 1주년인 7월 7일 창립 총회를 열고 선언문을 통해 “동양 평화를 확보하여 팔굉일우의 대정신을 세계에 앙양함은 제국 부동의 국시이다. 우리는 이에 일치 단결하여 국민정신을 총동원하여 내선일체 전 능력을 발양하며 국책의 수행에 협력하여 성전 궁극의 목적을 관철한다”고 연맹의 취지를 밝혔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11338661938

 

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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