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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태왕 국새, 소장자 확인 기록 나와중국 어디선가 잠자고 있을 광개토태왕 옥새가 다시 세상에 나오길 빈다.
오종홍 기자 | 승인 2020.12.09 21:13

 

이찬구 박사,

1933년 조선일보 광개토태왕 국새 발견 기사 발견

조선일보는 이 사실을

1913년 예관 식규식 선생의 <한국혼>서 발견해 보도

<한국혼>에서는 신규식 선생이

중국인 정씨가 소장한 것을 찾아 매입 시도

매입 불발 뒤 나중에 재차 찾고자 했으나 찾지 못해 포기

 

▲이찬구 박사는 서기2010.12.06. 유튜브 방송, '이찬구'를 통해서 광개토태왕 국새를 서기1911년에 중국인 정가정이라는 사람이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적은 신규식의 <한국혼>에서 발견하고 이를 보도했다. 자료: 이찬구 박사 유튜브 발췌. 

조선개국 4353.12.06. 이찬구 박사는 본인이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 ‘이찬구’에서 광개토태왕의 어보御寶(국새)가 발견됐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서기 1933년 조선일보 기사를 검색하는 과정에서 광개토태왕 국새를 한 중국인이 소장하고 있다는 것과 예관 신규식(서기 1880-1922) 선생이 이를 알고 찾아가서 매입하려고 시도했다는 내용을 발견했다.

당시 조선일보는 역대 병화 또는 잃어버려 우리 역사적 유물과 유적이 사라졌다는 것을 회상하며 예를 들었다.

병화로 사라진 것은 신라 황룡사탑이고 잃어버린 것은 고릉묘가 파헤쳐져 매장된 미술품이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고구려 유물과 관련해서는 평양 근처와 만주의 통구 방면의 고구려 능묘를 들며 도굴된 물건 중에서는 국보급 것도 있었을 것이라며 광개토태왕 국새도 있었을 것이라는 여운을 남겼다.

잃어버린 것 중에는 광개토태왕 국새도 있는데 이것이 중국인 정가정程家檉이라는 사람의 손에 들어가 있었다며 이 사실을 알고 예관 신규식 선생이 찾아가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신규식 선생이 정씨에게 팔라고 했는데 정씨는 거절했고 이때가 민국 원년(1912년)인데 혁명의 풍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어수선한 때라서 그 뒤 정씨가 어떻게 됐는지 알지 못하게 됐다고 추정했다. 이어 신규식 선생도 불귀의 객이 됐다며 사망했음을 알렸다.

▲이찬구 박사의 광개토태왕 어보 존재 기록 발견 보도 일부분. 자료: 유튜브 '이찬구' 에서 발췌

이찬구 박사는 이 같은 보도 기사를 확인하고 신규식 선생이 직접 쓴 <한국혼>에 나오는 같은 내용을 전했다. 이 책은 논문인데 서기 1914년 11월에 쓴 것이라고 한다.

이찬구 박사에 따르면 신규식 선생은 <한국혼>에서 안휘성 사람인 정씨가 광개토왕의 보배인 옥새를 집에 소장하고 있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신해년(서기 1911) 연경(북경)에서 정가의 정군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신규식 선생은 정씨에게 국새를 입수하게 된 계기를 들었다. 정씨는 ‘광개 옥새를 동3성 어떤 시골 늙은이에게서 얻었는데 심히 보배롭게 여긴다’고 말했다.

이어 옥새를 꺼내서 보여주려고 했는데 마침 손님들이 몰려 들어와서 다음날 보기로 했다고 했다.

정씨는 고구려 유물과 관련된 다른 사실도 들려줬다. “오록정吳祿貞 장군(서기 1911년 암살)이 동 3성에 있을 때 귀국의 고대 인장과 기물 몇 가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모두 귀물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신규식 선생은 그다음 날 일이 있어 남으로 떠나오게 돼 다음을 기약했다고 했다. 뒤에 찾아가려고 했으나 두 사람 모두 사라져버렸다.

신규식 선생은 이를 두고 “이제는 정씨와 오록정 장군 모두 죽어서 어디서 다시 그 사람과 물건을 찾는단 말인가.”라며 통탄했다.

▲예관 신규식 선생이 쓴 <한국혼>. 예관의 자주적 민족사관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역서다. 망국의 원인을 자기 것을 버리고 남의 것을 숭배하는 노예근성에서 찾는다. 식민사학의 소굴, 한국고대사학회와 같은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신봉하는 식민사학계가 보면 '국뽕'이며, 유사역사학자이고 사이비 역사학자다. 이 <한국혼> 책 아래를 보면 단기4288년이라고 쓰고 있다. 식민사학계가 보면 '단군은 역사가 아니고 신화인데 무슨 단군기원 4천년이 넘는다는 것이냐'며, 거품을 물고 비난할 일이다.

이찬구 박사는 이 같은 사실을 알리며 사건의 전말을 요약해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첫째, 광태토태왕 어보는 동북 3성 어느 시골 노인이 가지고 있었다.

둘째, 정씨가 시골 노인에게서 구입하여 소장하고 있었다.

셋째, 신규식 선생이 이 소문을 듣고 북경에서 소유자 정씨를 만나 이 어보를 확인하고 구입하려고 했다.

넷째, 정씨와 다시 만나길 약속했으나 이루지 못해 꿈이 무산됐다.

이 박사는 이같이 정리하면서 20세기 초까지 시골 노인 집에 1천6백 년 전의 광개토태왕 국새가 보관돼 있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광개토대왕릉에서 도굴된 것이 아닌가 추정했다. 또 도굴품으로 돌아다니다가 정씨에게 들어간 것이 아닌가 추정했다.

이 박사는 광개토태왕의 국새가 존재할 수 있다는 근거로, 조선 효종의 옥새를 찾은 사건을 들었다. 재미교포 이성수 씨가 보관해 오다가 기증했다는 보도다.

효종의 국새가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 떠돌다가 돌아온 사례가 실제 있는 것을 보면, 광개토태왕 국새도 당시 만주의 한 시골 노인이 보관하고 있었다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고 이것을 중국인 정씨가 소장하고 있었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 중국 어디에선가 묻혀 있거나 가치를 모른 체 누군가 소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잠자고 있는 광개토태왕 옥새가 다시 세상에 드러나길 기원한다.

 

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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