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한국 사료에 따르면 한국인은 단군조선 이전으로 올라간다.

 

한 한국철학 수업시간에서는 한국인은 신라부터라고 해

단군조선이 신화라는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이 지배하는 중

중국 사기와 삼국유사는 단군조선을 실제한 역사로 나타내

유물로, 한국인은 한웅천왕 신시배달국까지 거슬러 올라가

 

▲ 중국 사마천의 <사기> 송미자세가에는 주나라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고 한다(붉은 색 밑줄 친 부분). 자료출처: 대만 한적전자문헌자료고 누리집 발췌

 

1. 문제 제기

서기 2020.10.06. 한 대학교 대학원 수업에서 한국철학을 정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한구의 한국철학 정의를 기준으로 풀어나갔다. “한국인이 한국의 현실 문제를 주제로 다루어 한국어로 표현한 철학적 결실”이라고 했다.

여기서 한국어, 한국, 한국인을 연속체로 보는 관점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왔다. 역사상 한국인의 범위를 어디까지 보는지 궁금했다. 이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파악한 한국인의 범위를 몇 가지 근거로 제시하고자 한다.

2. 수업 시간에 한국인은 신라인부터라고 해

5주 차 수업 시간에 “한국인의 정의?” 장에서 한국인을 정의하면서 “신라, 고려, 조선과 근대 및 현대 한국인”으로 표시해놨다. 신라부터 나오는 것을 보니 시간상 범위로 보인다.

물론 “동아시아문화권의 형성과 정체성의 자각(1)”에서는 언어를 언급하며 백제, 고구려, 부여도 나온다.

한국인의 범위를 이렇게 정한다면 백제나 고구려 그 앞 시대인 부여, 그리고 이 앞 시대인 단군조선 사람들은 한국인이 아니라는 것인지 궁금하다. 단군 조선인은 한국철학에서 한국인의 범위에 안 들어가는 것일까.

앞서 정체성과 관련하여 백제, 고구려, 부여가 언급되고 있으니 이들도 한국철학에서 한국인에 포함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해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단군조선인을 한국인으로 보는지 궁금하다.

“동아시아문화권의 형성과 정체성의 자각(1)”에서는 고려 시대 와서 “하나의 민족이라는 자의식이 심화 됐다.”라고 했다.

하나의 민족이라는 자의식이 심화했다는 것은 이전에 하나의 민족이라는 의식이 있었다는 말인데, 언제 하나의 민족이라는 의식이 생겼는지 이것도 궁금하다.

이는 한국인이라는 시간적 범위와 관계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소위 ‘통일신라’ 이후에 하나의 민족이라는 의식이 생겼다고 한다면 이때부터 한국인이 범위가 정해지는 것일 것이다.

 

3. 한국인은 단군조선까지 가능

1). 『삼국사기』 「신라본기」 박혁거세 조

『삼국사기』 「신라본기」 박혁거세 조에 보면 신라는 6촌에서 시작한다. 앞서 조선의 유민이 있었는데 이들이 산의 계곡 사이에 흩어져 살았고 6촌이 됐다고 했다(始祖 姓朴氏 諱赫居世 前漢孝宣帝五鳳元年甲子 四月丙辰(一曰正月十五曰) 卽位 號居西干 時年十三 國號徐那伐 先是 朝鮮遺民 分居山谷之間爲六村).

여기서 조선은 단군조선을 뜻한다. 조선총독부 식민주의 황국 역사관은 기자조선 또는 위만조선부터 우리 역사가 시작됐다고 하며 그것도 위만조선을 멸망시킨 한나라가 북한 평양지역을 중심으로 식민기관 한사군을 설치하여 사실상 식민지로 우리 역사가 시작됐다고 한다.

식민사관에 따르면 기자조선이나 위만조선의 세력 범위도 북한 지역을 중심으로 한 소국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따르면 경주 신라 지역은 포함될 수가 없다(조선총독부 조선반도사편찬위원회, 친일반민족행위관계자사료집 V-일제의 조선사 편찬사업,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2008.147~149쪽./ 고등학교 한국사, 교학사, 2020, 20쪽/ 한국고대사학회).

조선의 유민이라고 할 때 유민은 밖에서 흘러들어왔다는 유민流民이 아니라,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조선이 망한 뒤에 남은 백성이라는 뜻의 遺民이다.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은 '기자/위만' 조선이 한강 이남에는 존재하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도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따르면 한강 이남에도 조선이 존재했다. 이는 '기자/위만' 조선이 아닌 다른 조선이 존재했다는 말이 된다. 

「신라본기」를 가지고 식민사관을 해석하고 「신라본기」 박혁거세 조를 보면 경상도 경주지역이 조선의 땅이었다는 말이 된다. 이 조선은 '기자/위만' 조선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니 단군의 조선 외에 다른 조선을 상정하기 어렵다.

신라인들이 자신을 단군조선의 유민이라고 봤다면 또는 『삼국사기』를 쓴 고려의 김부식이 신라인들이 단군조선의 유민이라고 봤다면 한국철학에서 한국인은 단군조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사료 사기에 따르면 상나라가 망한 뒤 기자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주나라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고 한다(於是武王乃封箕子於朝鮮-史記卷三十八/宋微子世家第八).

기자가 봉해진 이 조선은 어떤 조선일까. 기자가 조선으로 온 것이 되니 당시에 조선이라는 나라가 존재했다. 봉해지기 전의 조선은 기자조선도 아니고 그 뒤에 생긴 위만조선도 아니다.

단군의 조선 이외에 다른 조선은 상상하기 힘들다. 그럼 이때는 언제인가. 중국 주나라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한 때는 중국 주나라 무왕이 상나라를 멸망시킨 시기이니 상나라(은나라)가 망한 주나라 무왕시기 일 수밖에 없다.

삼국유사 고조선기는 고기를 인용하여 주나라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한 때를 기묘년이라고 했다. 이때는 서기전 1122년이다.

서기전 12세기경이니 이때 이미 단군조선이 존재했다는 얘기다. 중국 주나라 성립 시기 언저리에 단군조선도 같이 일어났을 리는 없다. 최소한 상나라 시기에도 존재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중국 주나라 무왕 얘기도 나오고 기자도 등장하는 삼국유사 고조선기의 고기에는 중국 주나라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하던 시기가 단군조선이 1천5백 년 진행되던 때라고 한다.

중국 요임금 나라가 일어난 뒤 50년 경인년에 단군이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처음 조선이라고 했다고 한다.

고조선기는 위서에 요임금과 동시에 일어났고 단군이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조선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 기록을 기준으로 하면 최소한 서기전 2333년에 단군조선이 문을 열었다.

종합해 보면 중국 문헌에 따라도 최소한 단군조선은 서기전 12세기 전에도 존재했다. 삼국유사 고조선기를 따르면 단군조선은 서기전 2333년에 개국했다. 이 백성들이 지금으로 말하면 한국인이다.

2). 한국인 범위 단군조선 이전까지 확장 가능성

한국철학의 한국인의 시간상 범위는 단군조선까지 올라감을 알 수 있다. 단군이 곰녀와 신시의 환웅천왕 사이에서 나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신시시대까지 한국인의 범위를 확장할 수 있다.

『삼국유사』 왕력조에는 고구려의 시조 주몽을 단군의 아들이라고 하고 있다. 고구려도 단군의 후손이라는 소리다. 고구려가 부여에서 나왔는데 부여도 단군의 후손이 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백제도 부여에서 나왔다. 백제도 단군의 자손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결국, 우리 역사상 등장하는 모든 나라가 단군의 후손이라는 소리고 한국인도 단군조선까지 올라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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