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소통을 위한 규칙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를테면 ‘호랑이’라는 단어를 아무리 눈 비비고 들여다보아도 그 안에 호랑이의 실재가 들어 있을 리 없다. ‘호랑이’가 호랑이를 형상화한 상형문자는 더더욱 아니다. 그저 ‘호랑이’라는 단어가 실재 호랑이를 가리킨다고 ‘우리’ 사회가 약속한 것뿐이다. 당장 영어권으로만 나가도 ‘호랑이’는 소통의 효용성을 잃는다. 동일한 실물을 가리켜 ‘타이거’(tiger)라고 해야 알아듣지, ‘호랑이’라고 백 번 말해도 알아듣지 못한다.

한데 이상하다. 분명히 공통의 언어와 규칙을 공유하는 집단 안에서 발화되는데, 청자가 아무도 알아듣지 못한다. 오죽하면 ‘번역기’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을 두고 하는 소리다. 이른바 ‘박근혜 번역기’ 사이트 개설자는 박 대통령의 대선 슬로건이었던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패러디해 “내 말을 알아듣는 나라”를 문패로 정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의 ‘임기응변’ 말들을 하나하나 풀이해준다.

"박근혜 번역기"가 청와대 공식 트위터 계정으로부터 '차단'된 모습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지난 4월 15일 세월호 1주기 현안점검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한 말, “간첩도 그렇고 국민이 대개 신고를 했듯이 우리 국민들 모두가 정부부터 해가지고 안전을 같이 지키자는 그런 의식을 가지고, 신고 열심히 하고……”라는 말을 다음과 같이 비교적 알아듣기 쉽게 풀이했다. “예전에 우리 아버지의 국민들이 간첩신고를 잘하여 간첩을 소탕했습니다. 지금 나의 국민들과 정부도 모두 앞장서서 간첩신고를 해야 합니다. 그런 시민의식이 국가안보와 안전을 지킬 수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의 독특한 ‘유체이탈’ 화법이다. 특정 사안을 다룰 때, 특히 그 사안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 리더십에 커다란 흠결을 드러내는 경우에, 그의 언어는 언제나 이 화법에 기댄다. 분명히 이 나라를 움직이고 이 국민을 보살펴야 할 최고 수장임에도, 자신은 이 나라의 운명이나 이 국민의 안녕 따위는 아무런 상관없는 듯 말하는 방식이다.

대선 때 항상 따라다니던 ‘수첩공주’는 이제 ‘불통대통령’으로 진화하여, 이 땅의 뒤틀린 현대사에 또 한 획을 그을 전망이다. 그래서인가. 티브이(TV)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소통’ 관련 아이템이 대세다.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었다. 출연자가 인터넷 채팅창을 보며 끊임없이 떠들어대는 콘셉트가 영 어수선했다. 파일럿 방송으로 방영될 때만 해도 공중파에서 과연 통하겠나 했는데, 그런 의혹이 기우로 드러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대중문화가 시대를 읽는 것인지, 아니면 시대가 대중문화를 낳는 것인지……. 확실한 것은 <마이 리틀 텔레비전>(뭐든 줄이기 좋아하는 요즘 추세로는 ‘마리텔’이라고 해야 더 잘 통한다.)이 성공한 배후에 ‘불통의 시대’가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인터넷 채팅 공간이 익명성을 빌미로 한없이 무례해진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를 잘 알기에 <마리텔> 제작진도 ‘청정 언어 사용’에 촉을 세우는 모습이다. 물론 출연자 중에는 빠른 속도로 댓글을 다는 시청자들과 일일이 ‘쌍방향 소통’을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진땀을 빼기도 한다. 그러나 <마리텔>에서 마침내 무소불위 ‘신계’(神界)에 올라 자동 ‘승천’(혹은 탈퇴)할 수밖에 없던 이가 ‘백주부’였다는 사실은 많은 여운을 남긴다.

마이리틀텔레비전에 출연 중인 백종원(MBC방송 캡처)

그가 얼마나 타고난 셰프이며 요식업계의 능력자인지는 굳이 말해야 입만 아프다. ‘셰프 먹방’이 유행인지라 여기저기에 그의 얼굴이 나오는 것을 우려하는 시선도 없지 않지만, 당분간은 그의 인기가 식을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전히 ‘불통의 시대’를 통과하는 중이고, 그의 가장 큰 자산은 ‘소통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게 모두 ‘장삿속’이라고 해도 할 수 없다. 소비자본주의 시대이니만큼 어차피 ‘소비’되고 말, 또 다른 ‘핫 아이템’이 나오면 가차 없이 폐기되고 말, 하나의 상품에 불과하다고 해도 상관없다. 다만 지금은 그가 ‘소통’의 아이콘으로 통용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소통에 목마를수록 불통을 참아내는 인내심도 이내 바닥을 드러내기 마련이므로.

그나저나 말의 홍수 속에 사는 우리, 의미 없는 언어유희가 난무하는 요즘, 나의 진정을 담은 말 한 마디라도 그대에게 가 닿을 수 있다면! <마리텔>의 댓글 같이 ‘스쳐 지나가는 말’ 말고, 나와 그대의 심장에 박혀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그런 말이 우리의 일상에 들어와 박힐 수 있다면! 진정한 말은 침묵 속에나 둥지를 트는 법일까. 새삼 ‘말없음표’(………) 안에 나의 말을 담아본다. 번역기가 없어도 그대의 더운 가슴만으로 충분히 해독가능한 말을.

글 구미정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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