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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치유신으로 포장된 사무라이들의 민낯반 막부 무사들의 명치유신은 권력 쟁취를 위한 핑계에 불과했다.
신종근 객원기자 | 승인 2020.12.02 18:54

 

글: 신종근(역사연구가, 의사)

 

막부타도 주역 중의 하나인 사이코 다카모리 어이없는 역설

폐번지현 해 놓고 다시 반대하는 서남전쟁 이르켜 패망해

자신이 주장하던 정한론이 먹히지 않자 귀향한 뒤 전쟁

정한론은 끝내 추진돼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끝으로 완성

 

▲ 서기1877년 명치유신의 주역 중의 하나인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가 일으킨 서남전쟁 그림.

<오사카의 여인> 스물세 번째 이야기

메이지유신의 역설 - 서남전쟁(西南戰爭): 명분없는 반항(내가 하면 낭만)

1871년에 있었던 폐번치현(廢藩置縣)의 시행은 만일에 있을 변고에 대비하여 사쓰마ㆍ조슈ㆍ도사 등 3개 번(藩)의 병력 1만 명을 도쿄에 집결시킨 가운데 에 의해 단행되었다.

그러나 그 후 사이고의 행적은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때 일본전역에서 폐번치현이 이루어졌지만 그 마지막 완성단계에서 사이고 자신이 반항의 중심에 섰다.

그의 몰락(1877년의 서남전쟁)으로 메이지유신의 핵심인 폐번치현이 완성되었다는 것은 모순이다.

이 서남전쟁(西南戰爭)에서 바로 메이지유신의 주역조차도 유신에 대한 이상의 설정이 없이 단순한 막부(幕府) 타도만을 노력던 것임을 알 수 있다.

1874년 사이고는 자신의 정한론(征韓論)이 먹히지 않자 분개하여 관직에서 퇴진하고 그의 고향인 가고시마(옛 사쓰마)로 돌아갔다. 그를 따르는 사족들도 일제히 사직하고 모두 따라갔다.

일본 전국의 번(藩)이 폐지되고 중앙정부가 들어섰지만 정작 사이고가 실질적으로 지배하게된 가고시마는 사이고의 독립왕국이 되어갔다.

메이지유신에서 채택한 중앙정부의 정책은 모두 무시되었는데, 정부에서 파견한 관리가 가고시마에 부임해 오는 것도 거부하고 가고시마가 중앙정부에 납부해야 할 세금도 내지 않았다.

내가 하면 낭만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바로 사이고에 딱 해당하는 말이다. 결국 사이고는 불만에 찬 사무라이들을 이끌고 자신을 수반으로 하는 정권을 만들기 위해서 반란을 일으켰다.

이것이 바로 막말(幕末) 최후의 내전이라 불리는 서남전쟁(西南戰爭, 1877년)이며 탐 크루즈가 출연한 '라스트 사무라이'라는 영화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그 내용은 많이 왜곡되어 있다.

우선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가 국가와 사무라이의 명예를 위해서 전쟁을 일으켰다는 영화의 내용은 사실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권력에 대한 탐욕만이 눈앞에 있었던 것이다.

내전은 처음부터 사이고의 의도와는 달리 전개되었다. 결국 구마모토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반란의 거점인 가고시마로 퇴각하였으나 시로야마(城山)가 함락되고 사이고도 자살함으로써 반정부세력은 완전히 소탕되었다.

서남전쟁(西南戰爭)은 기도 타카요시(木戶孝允)와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 두 사람이 의견 일치하여 철저히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를 따돌려 정한론(征韓論)을 부결시킨 결과다.

이들 유신3인방 실세간의 내부파열음은 대규모 내전으로 귀결되어 메이지유신의 대미를 장식하였다.

그러나 이들 유신의 주역들이 뿌려놓은 정한론의 씨앗은 서서히 발아하여 서남전쟁이 있은지 17년 만에 청일전쟁(1894년)과 러일전쟁(1904년)에서 그 결실을 맺었다.

흔히 구한말에 있었던 조선의 근대화를 두고 일본의 유신 지사들과는 달리 조선의 위정자들은 생각이 짧았다거나 썩어빠진 유생들이라고 비난하며 경멸하는 경우가 많다.

또는 대원군의 쇄국정책만 없었다면 조선의 근대화작업이 금방 이루어졌을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시대를 앞서간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망하는 국가는 하나도 없어야 하고 망하는 기업도 없을 것이며 개인이 파멸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역사상 대부분의 인물들 누구나 시대의 대세가 그렇게 흐르는 것을 미리 파악하지 못했던 것과 같이, 한말(韓末)의 조선 선비들도 대세가 자신의 의도와는 반대로 가는 것을 파악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것은 소위 메이지유신의 지사(志士)들의 일생을 봐도 마찬가지인데, 이들이 자신의 지혜와 의지대로 미래를 주도했던 때는 일본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고 난 다음이다.

그것이 바로 거스를 수 없는 대세, 세월이라는 요소를 지닌 흐름이라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한말 근대화의 진도를 다른 각도에서 평가해야만 할 것이다.

출처: <오사카의 여인> 곽 경, 어문학사, 2015

신종근 객원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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