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국신화가 같다는 것은 한 뿌리에서 나왔다는 것을 말한다.

 

글: 김상윤(광주마당 고문)

 

신시 배달 한웅천왕이 내려온 신단수,

우리 방계 역사에도 개국신화에 나타나

고구려 버드나무, 몽골족 자작나무, 만주족 버드나무

고구려 유화부인, 몽골 알랑고아, 만주족 아부카 허허

단군조선 개국신화의 동굴, 고구려 국동대혈, 부여의 금와의 연결

 

▲ 서기 2015년 고구려 국내성에 있는 수혈을 답사했다. 고구려에 국동대혈이 있는데 수신을 모시고 있다고 했다.

해모수와 유화 그리고 주몽 4-1

유화는 버들꽃 아가씨다.

웅심산에서 천제의 아들 해모수를 만난 후, 빛으로 잉태하여 주몽을 낳았다.

해모수는 하늘과 태양을 상징하고 하백의 딸인 버들꽃 아가씨는 물이나 땅을 상징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조현설은 황하 유역의 하백족이 만주로 진출한 사실이 신화에 삽입되어 나타났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어찌되었든 유화는 버드나무 신성을 지니고 있다.

버드나무는 자작나무와 더불어 유라시아 북방민족의 신목으로서 세계 신화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우주목이자 세계수다.

단군신화에서 환웅이 신단수 아래로 내려온 것도 신단수가 하늘과 지상을 연결하는 우주목이기 때문이다.

만주족의 창세신화인 <천궁대전>(天宮大戰)에서 우주와 생명을 창조하는 아부카허허는 '천모'(天母)이자 '버드나무여신'이다.

김재용과 이종주는 <왜 우리 신화인가>에서, 버드나무는 여성 상징이면서 생명의 창조자 역할을 한다고 했다.

버드나무는 잎의 생김새가 여성의 성기와 비슷하고 물을 매개로 여성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창조여신으로 시조모신으로 풍요의 여신으로 지상의 인격신으로 다양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버들천모신의 신격은 계속 '신비한 버드나무'라는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는데 , 그 여신의 인격체와 결합한 아골타와 누루하치, 왕건과 이성계는 모두 왕위에 올랐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만주나 시베리아의 초원지대에서 버드나무를 우주목으로 신성시한데 비해, 산악지대에서는 자작나무를 신목으로 받들고 있다.

자작나무는 만주족이 숭상하는 흰색을 지니고 있고, 하얀 껍질을 벗는 모양이 재생과 부활의 생명성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버드나무와 마찬가지로 물을 많이 머금고 있는 자작나무는 생명과 풍요를 상징하게 되었을 것이다.

박원길은 <고대 유라시아 알타이의 종교사상>에서 유목민족들의 이동식 가옥인 게르는 '유화의 집'이라고 단언한다.

버드나무 신목 코드로 고구려의 유화를 바라볼 경우, 유화는 몽골의 알랑 고아처럼 신앙의 중심에 위치해 있고, 청나라 만주족의 시조신인 푸투마마(버드나무 어머니)처럼 알랑 고아보다 더 구체적으로 버드나무 신목 숭배사상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게르는 알랑 고아가 빛을 통해 세 아들을 잉태하는 장소인데, 게르의 벽체를 지탱하는 격자는 모두 버드나무로 만들어져 있다고 한다.

따라서 몽골 게르는 상징적인 의미에서 유화의 집이라고 해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버들꽃 아가씨 유화의 신격은 만주족 창세신화의 아부카허허나 만주족의 시조신 푸투마마, 그리고 몽골족의 시조모인 알랑 고아와 같은 신격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유화의 신격은 중요성이 훨씬 떨어진 채 나타나고 있을 따름이다.

 

해모수와 유화 그리고 주몽 4-2

2015년 8월에 우리 부부는 한국민속학회 여러분들과 함께 고구려 유적을 답사하고 있었다.

광개토왕릉과 추모왕의 신화가 새겨진 호태왕비도 보고 이어서 우리 일행은 국동대혈을 보러갔다.

'국내성 동쪽에 있는 큰굴'이라고 하여 국동대혈(國東大穴)이라 부른다는데, 이 동굴은 수신(隧神)인 유화를 모시는 곳이라고 한다.

수신은 동굴신이라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유화를 모시는 곳이었고, 그곳 가까운 곳에 제천대라는 제사터가 있었다.

고구려는 매년 10월 동맹행사가 열렸는데, 신성한 동굴에서 나무로 만든 신상에다 수신(동굴신)을 접신시킨 후 강가에 마련된 신의 자리에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는 천신과 지신이 만나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과정이자 해모수와 유화가 만나 추모왕을 탄생시키는 고구려 건국신화의 재현이기도 하다.

동맹에서 모셔진 신은 천신만이 아니라 부여신과 고등신이 모셔졌는데, 고등신은 고구려를 건국한 추모왕이고 부여신은 바로 추모의 어머니 유화부인이다.

고등신(高登神)을 모시는 제는 제천대회에서 올렸을 것 같은데 하늘에 제를 올리는 방식으로 하고, 이어서 국내성으로 돌아가 국중대회를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올림픽 성화를 받아 시민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 대축전을 열게 되는 행사와 비슷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유화여신이 왜 동굴 속에서 모셔졌을까?

우리는 여기서 동부여 금와왕 신화를 한 번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시조 동명성왕'편에,

'부여왕 해부루는 늙어 아들이 없었으므로 ~~ 그가 탔던 말이 곤연 못에 이르러 큰 돌을 보고 마주 대하여 눈물을 흘렸다. ~~ 사람을 시켜 그 돌을 굴려 들치니 거기에 조그만 아이가 있는데 금빛 개구리 생김새였다. ~~ 이에 거두어 기르며 이름을 금와(金蛙)라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금빛 개구리 '금와' 개구리는 알을 많이 낳아 다산을 상징하는데, 고구려가 달을 두꺼비로 나타냈던 것도 그런 상징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알타이 지역에서는 개구리가 우주 만물의 기본이어서 우주를 떠받치고 있다는 믿음이 있고, 운남성 동파족도 개구리를 매우 숭상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금빛 개구리 곧 금와는 그 발음이 고마 개마 금마 등과 매우 비슷하다.

우리는 하늘을 '감'이라고도 했는데, 감이 곰과 뒤섞여 곰에 신성성이 가미되고, 더 나아가 고마는 신이자 동물신이 되기도 했다.

상징들이 통합되어 또 다른 형태로 전화되기도 했던 것이다.

금와는 하늘을 나타내는 '감'과 신성이 가미된 '곰'의 이미지에 다산을 상징하는 개구리 이미지까지 더하여 만들어진 상징이 아닐까 싶다.

마찬가지로 버들아씨는 하백의 딸로 물의 신이지만, 동굴 속에서 변신하여 단군을 잉태하는 곰의 모습과 합쳐지게 된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그렇다면 유화는 웅녀의 상징을 흡수한 모습으로 고구려인들에게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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