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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29일은 나라 팔아먹은 날대한민국은 여전히 나라 팔아먹은 자들이 지배하는 나라임을 알아야 한다.
류돈하 객원기자 | 승인 2020.08.29 18:31

 

글: 류돈하(역사연구가)

 

이완용, 이인직 시켜 먼저 나라 넘기겠다고 왜구에게 전갈

순종은 자기 생일 지나고 발표하자며 29일 돼서 매국발표

매천 황현은 자기라도 책임지는 자세 보이겠다며 자살해

석주 이상룡, 우당 이회영 신흥무관학교로 대일전쟁 발화

 

▲이인직은 혈의 누라는 소설을 쓴자로 학교교육에서 등장했다. 그는 매국노 이완용의 비서로 이완용의 지시를 받고 왜구 관리를 찾아가 나라를 팔아먹겠다는 이완용의 뜻을 전했다. 왼쪽이 이인직, 오른쪽은 그의 소설, 혈의누(편집인 주)

 

1910년 경술년 대한제국 순종 융희 4년

8월 22일 일본에 의해 강제로 한국병합 늑약이 조인되었다. 8월 29일 대한제국의 황제 순종은 일왕 명치에게 대한제국의 통치권을 양도하는 것을 온 나라에 발표하였다.

이로써 오백 년간 이어져 온 대한제국은 망했다. 경술년의 국치는 많은 것을 앗아갔다.

국권과 국토가 왜적의 손아귀에 떨어졌으며, 국민은 노예가 되어 그 생명권마저 저들의 뜻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절망스러운 국치의 상황에서 자정 순국을 택하여 목숨으로 저항한 선비들이 있었다. 그중에 전남 구례의 매천 황현 역시 나라의 선비가 되어 망국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절명 시를 짓고 독약을 입에 머금었다.

"내가 죽어야 할 의무는 없지만 나라가 선비를 기른 지 5백 년에

망국한 날에 한 사람도 죽는 이 없다면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라는 매천의 비장한 결연함은 오백 년간 길러진 선비의 성성한 기상을 그대로 나타내는 것이었다. 죽음으로서 항거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살아서 나라를 되찾으려 한 이들도 있었다.

그중에 안동의 석주 이상룡은 처남 등 40여 명의 가족을 이끌고 강도 일본이 강제 점령한 땅을 떠나 서간도로 이주하여 한인촌을 개척하였다.

또 우당 이회영과 만나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독립군을 양성하였으며 새 시대의 일꾼이 되게 하였다.

신흥무관학교의 졸업생들은 봉오동전투, 청산리대첩 등의 주역이 되었으니 신흥무관학교는 곧 광복 운동의 요람지이자 우리 국군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석주는 한반도 국내는 물론 해외 각지에 흩어진 임시정부와 독립단체들을 하나의 조직된 힘으로 통합하는 것을 적극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상해의 임시정부를 단일정부로 인정하였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으로 취임하게 된 것이다.

죽음과 헌신으로 위국진충한 이들과 달리 국치를 개인의 사사로운 복으로 생각하여 자발적이고도 적극적인 매국노의 길을 향한 이들 중에 대한제국 총리대신 일당 이완용은 가히 대표적이었다.

일본은 병합 늑약을 은밀히 추진하는 한편 오히려 느긋하게 실행하였다.

한일 양국 간에 병합을 두고 서로 눈치가 오고 갈 때, 마치 그물을 치기도 전에 물고기가 뛰어드는 격으로 먼저 병합을 제의한 사람이 바로 일당 이완용이었다.

이완용은 1910년 8월 4일 자신의 비서 이인직을 통감부 외사국장 소송록(小松綠)에게 보내 병합을 함께 의논하였다.

소송록은 과거 일본 도쿄 정치대학 교수로서 이인직을 가르친 스승이었다.

병합에 대한 공작작업을 벌인 이완용은 동양평화를 유지하고 인민을 구제한다는 그럴싸한 명분으로 은사금 15만 원에 나라를 팔아먹었다.

그리고 조선귀족령이 반포됨에 따라 이완용은 백작이 되었다. 후에 후작으로 승급하는 이완용은 자신의 장손자를 일본 내각 총리대신으로 만드는 '장대한 꿈'을 꾸기도 한다.

나라와 민족을 15만 원에 팔아먹고 호의호식하며 망상을 꿈꾸다 와석 종신하였다. 악인이 제 명을 다하고 편안하게 죽은 것이다.

해방 후인 1979년 그의 묘는 증손자 이석형에 의해 파묘되고 만다. 친러, 친미를 오고 가다 친일을 택해 매국노의 대명사가 된 이완용은 만고의 다시없을 국적(國賊)이다.

그러나 이완용이란 이름 뒤에 숨어서 그 악행이 잘 알려지지 않고 드러나지 않은 진짜배기 매국노 또한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민국 102년 8월 29일에 류언암 쓰다.

류돈하 객원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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