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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는 물론 현대도 정보공작이 국운 좌우국제정세를 잘 파악하고 있어야 국가운명의 날에 빛을 발한다.
공관 객원기자 | 승인 2020.08.28 17:16

 

글: 공관(북동중앙아시아연대  중앙위 의장)

 

국가정보원의 순기능을 잘 살려야지 무조건 통폐합은 안 돼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와 같은 종합 정보기관으로 나아가야

중국 은나라가 주나라에 망한 것도 정보작전의 힘으로 된 것

임진왜란 정유재란도 조선정부의 정보작전 실패로 발발한 것

소련 간첩 조르게 정보공작으로 2차세계대전과 근대사가 바뀜

 

뤼촤드 조르게Richard Sorge (1892-1944). 그는 독일태생으로 1차대전에 참전하는 등 전쟁에 참여하여 3번이나 부상을 당한다. 한 병원에 입원하여 한 간호사와 사랑을 나누고 공산주의자 였던 그녀의 아버지를 보고 공산주의자가 됐다. 이후 스탈린 밑으로 들어가 일본에서 간첩활동을 하며 특급정보를 스탈린에게 알려 2차대전을 소련이 승리케 했다.

 

국가의 생존법. 정보공작의 힘 (1)

한 사람의 중요한 정보가 한 국가의 운명을 가른다.

국가의 생존에는 먼저 아는 것(先知)이 중요하다.(*1)

임진왜란 때 한반도 분할 안을 막은 건 명나라 특급 간첩 사세용(史世用)이 아니라, 일본에 하인으로 끌려간 염사근(廉思謹)의 애국심이었다. 그는 명나라의 대일본 첩보전에서 가장 경천동지할 중요정보를 제공했다.(*2)

‘국가정보원법’을 개정한다고 한다. 올해 안에 국회에서 통과시킬 예정이다. 5.16 군사혁명 때 출범한,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중앙정보부를 시작으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문민정부 들어서의 국가정보원(국정원)을 거쳐 21년 만에 대대적 개혁을 할 모양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국내 정치정보사찰을 금지하고, 방첩과 국외정보(북한 포함)를 총괄하는 부서로 하는 내용인 모양이다. 이름도 ‘대외안보정보원’으로 한다나? 구체적 개정 내용은 알 수 없다.

소리만 요란하고, 국가대계의 집행에 첨병(나침판)이 되어야 할 중요한 작전국(The Directorate of Operations)이 또 빠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미국 CIA와 같이 대외작전이 법제로서 합법화되어야 한다.

미국 CIA는 약 2만 명의 요원이 근무하며, 해외의 특수작전을 위해 자체의 군부대도 운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예산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중국 용간(用間)의 역사는 유구하다. 그 전통을 이어받아 공산당 초기부터 스파이조직인 ‘터커(特科, 특과)를 운용하고 있다. 국가운영을 제대로 하는 나라는 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 

21세기는 IT기술이 융합된 정보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정보화 시대”에 와 있다. 현재는 우주과학의 발달로 지구궤도에서 인공위성으로 지구 구석구석을 조감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각국이 군사용ㆍ첩보용으로 비밀리에 쏘아 올린 위성까지 합하면 그 숫자가 약 6000여 기에 달할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3)

아무리 첨단첩보기술장비(테킨트, techint)가 발달한다 할지라도, 최종적으로는 첩보원(휴민트, humint)을 활용한 정보의 확인과 분석이 필요하다. 기원전 2,500년경 손무(孫武)도 정보전(情報戰)에서 정보와 첩보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보는 “먼저 아는 것(先知)”인데, “먼저 안다는 것은 귀신한테 빌어서 얻을 수 없고, 일에서 그려 볼 수도 없고, 천문의 운행에서 경험할 수 없으니, 반드시 사람에게서 얻어야 하는데 적의 상황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다. (*4)

고대나 지금이나 일급의 간첩은 전략음모가이다. 간첩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면 “옛날 은(殷)나라가 일어나는 데는 이지(伊摯=伊尹)가 하(夏)나라 안에 있었기 때문이며, 주(周)나라가 하나라를 뒤엎고 흥기한 것은 여아(呂牙, 통상 잘못된 호칭이지만, 강태공으로 불림)가 은나라에 있었기 때문이다”(*5)이라고 했다.

중국 고전을 읽은 사람들은 위의 두 사람이 얼마나 위대하게 그려졌는지 안다. 어렸을 때 배운 천자문에도 “여아와 이윤은 시대를 도운 제상들이었다(磻溪伊尹 佐時阿衡).”고 했다. 한데 손자는 이들을 이중간첩으로 명기하고 있다. (*6) 근거 없는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국가정보의 부재가 부른 국난

우리의 역사에서 국가정보의 부재로 위난과 망국으로 간 예는 많다. 그중 임진·정유의 왜란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국가정보의 축적과 분석능력이 그 나라의 안보는 물론 민생의 안녕을 지키는 데 중요하게 기능한다.

임진왜란기의 명나라 대일 첩보전

명나라, 대일 첩보망을 통해 일본의 조선 침공날짜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국가의 관직이나 봉록도 없이 단지 애국심으로 스스로 정보원이 된 중국포로 허의후.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했다. 명나라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한 후 조선을 짓밟고 대륙의 명나라까지 침공할 것을 알았다.

일본으로부터 온 한 통의 극비문서가 지금 대만 섬 서쪽에 있는 복건성 장주시 월항(月港)을 통해 중국에 전해졌다. 명나라 만력제 신종시대의 대외무역항은 이 항구가 유일했다.

복건 순무 허부원(許孚遠)은 이 극비문서 한 통을 받았다. 일본에 사는 허의후(許儀後)로부터였다. 그 문서에는 놀랍게도 임진년 양력 4월 13일(*7)로 조선 침공날짜가 정확하게 기록돼 있었다.

허의후는 명나라 사람으로 1571년 왜구에 납치되어 우연히 사쓰마 번주의 가의家醫로 있었다. 전달책은 그와 동향인 주균왕이었다. 주균왕은 일본 가고시마항에서 배를 타고 40여 일만에 중국 복건성의 대작만에 도착했다.

그 비밀문서는 지금의 A4용지 2장 정도 되는 5000여 자에 이르렀다. 일본 침략군의 규모와 편제, 병기를 비롯하여 한반도를 3선으로 북진하는 군사전략과 지휘장군에 이르기까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일본군이 해전을 배우지 못했으니, 수륙합공과 화공 전략을 구사할 것까지 건의했다.

이는 곧 복건 순무를 통해 명나라 중앙조정에 전달되었다. 임진왜란 개전 44일 전이었다. (*8) 허의후는 정보수집 공작과 분석에 탁월했다. 그는 비밀보고서 말미에 시 한 수를 적었다. “비밀리에 국가존망사를 부탁하오니, 섬족 왜구를 멸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당부합니다.”라고.

한 사람의 특급정보가 세계역사를 바꾸다

그런 점에서는 350년 후가 되는, 지난 세기 독일태생의 소련의 전설적 스파이, 리하르트 조르게(Richard Sorge, 1895~1944, )에 버금간다고나 할까. 그는 일본에 8년 동안 체류했다.

조르게도 일본에서 독일의 소련침공 43일 전인 1941년 5월 30일 모스크바에 긴급타전한다. 독일이 6월 말께 소련을 침공할 것이라는 통보였다.

스탈린은 국가존망이 달린 이 일급정보를 의심하고 믿지 않았다. 독일이 침공한다면 그 일년쯤 뒤가 될 것으로 여기고 방심했다.

조르게의 타전대로 나치독일은 '바르바로사'(Barbarossa)라는 작전명으로 1941년 6월 22일에 소련을 기습 침공했다. 갑작스러운 독일 침공으로 모스크바의 함락이 눈앞이었다. 전방 30km까지 독일군이 진격해 왔다. 스탈린은 매우 당황했다.

소련에 남아 있는 병력은 시베리아군과 극동군만 온전했다. 하지만 일본이 독일의 침공에 발맞춰 동쪽으로 침공해 올까 봐 병력을 뺄 수가 없었다. 일본은 독일과 함께 추축국이었다.

그때 조르게가 소련을 구한다. 1941년 9월 14일, 그의 긴급비밀전보가 일본에서 타전되었다. 이번에는 스탈린이 믿을 수밖에 없었다.

1939년, 몽골 할힌골 전쟁(5∼8월)에서 러·몽 연합군에 완패한 일본이 북방진로를 포기한다는 특급의 정보였다.

일본은 자원 확보와 동남아시아의 서구제국 식민지를 삼키기 위해 태평양 남방으로 침략진로를 택했다는 것이다.

소련 정보기관은 일본과 미국에 공작하여 미·일이 태평양에서 전쟁하도록 유도했다.

소련의 정보기관은 대일 공작에는 조르게 인맥인 오자키 호쓰미(尾崎秀実)를 통하여 당시의 고노에 후미마로(近衛文麿) 내각의 일본국가전략에 영향을 미쳤고, 또 한편 미국에는 해리 덱스터 화이트(Harry Dexter White, 1892~1948)를 통하여 미·일간의 태평양전쟁으로 유도하였다.

미국 공작은 NKVD의 25살의 탁월한 정보기획가 파블로프(Pavlov, Vitaly Grigorievich, 1914-2005)의 ‘백설 공작’(Operation Snow)이었다. (*9)

일본은 서구가 나치독일과의 전쟁에 정신이 없을 때, 큰 힘 들이지 않고 이익을 얻는 어부지리漁父之利를 노리는 전략이었다.

섬족은 전과가 있었다. 청말 태평천국과 아편전쟁 때를 이용해서 유구琉球(지금의 오키나와 군도)를 먹었듯. 결과적으로 미국과 일본이 태평양에서 전선을 형성함으로써 소련이 큰 이익을 보았다.

이러한 일본의 전략을 조르게가 수집하여 모스크바에 긴급타전한 것이다. 스탈린은 극동군·시베리아군 40여만 명을 모스크바 방어전선으로 이동시킨다.

이로써 모스크바 방어전에 성공하고, 전세를 역전시켜, 유럽동부전선으로 진격해 베를린을 함락시킨다. 그리고 좁은 서부전선의 미·영의 연합국들과 함께 나치 독일을 패망시킨다.

실제로 유럽전선의 제2차 세계대전은 독일과 러시아의 전쟁이었다. 조르게의 정보가 얼마나 중요했는가.

조르게의 특별 정보가 근대세계사를 바꾼 것이다. 이는 전쟁의 한 축인 일본의 군사전략이 미칠 역할을 정확히 알아보는 그의 거대한 종합적 안목과. 분석능력이다. 그의 정보는 완벽했다. 그는 일반 스파이와 확연히 구별된다.

이는 허의후와 공통된다. 조르게가 소련 정보기관의 정식 요원이었다면, 허의후와 염사근은 조국으로부터 관직도 봉록도 없었다.

염사근은 임진왜란 때 한반도의 명·일 분할점령을 막는 데 결정적 정보를 제공했다. 모두 자기들 조국과 이념에 충성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참고자료

(*1:『孫子兵法』 「用間篇」第十三.。故明君賢將,所以動而勝人,成功出于眾者,先知也)

(*2:『跨境人员、情报网络、封贡危机:万历朝鲜战争与16世纪末的东亚』 郑洁西 著, 上海交通大学出版社, 出版日期:2017.

http://reader.epubee.com/books/mobile/55/5593d730c3448428f53dd306826b1d21/text00006.html )

“黄加报称…迫遇朝鲜人廉思谨.…因寄书一封与世用。黄加等人接受了廉思谨的捎带信函委托。但是,黄加一行后来并未遇上史世用,他们遂将信函直接携回福建,并将之径投泉州府衙门:经由黄加等人的相关活动,廉思谨向明朝提供的日本情报传到了福建,其内容可概见于当时福建巡按刘芳誉的奏疏之中:臣览其书,毛发上指)

(*3:중앙일보: 2018.10.25. 지구궤도 6000대 인공위성.

https://news.joins.com/article/23066115 )

(*4:『孫子兵法』「用間篇」第十三.先知者,不可取于鬼神,不可象于事,不可驗于度。必取于人, 知敵之情者也。)

(*5:昔殷之興也,伊摯在夏﹔周之興也,呂牙在殷)

(*6:『전쟁은 속임수다』 리링저작선, 2012, 김승호 역, 글항아리. 828~842쪽)

(*7: https://www.dcdapp.com/article/6708289409906639371 . 음,3월 1일, 또는 음력 28일 양력 4월 12일설이 있음. 한글 위키피디아의 날짜는 양력을 음력으로 착오하여 오기인 것으로 보임.)

(*8: 상동)

(*9: , 『Operation Snow: How a Soviet Mole in FDR's White House Triggered Pearl Harbor』, John Koster. 2012).

(*9-1: http://documentstalk.com/wp/pavlov-vitaly-grigorievich-1914-2005/)

2020.08.18. 서울 남쪽 인릉산 아래 누실에서, 공관.

 

공관 객원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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