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체계부터 갈아엎어 조선총독부 식민지배 그늘을 벗어야 한다.

글: 고성규(변호사)

 

 

광복75주년, 경찰, 검찰, 법원 등 사법체계는 여전히 조선총독부체제

‘조서를 꾸민다’는 말짱 거짓말을 담았다는 뜻, 조선총독부 일제잔재

조선형사령, 조선태형령 식민지조선에만 있던 야만적 식민통치법제

갑오개혁에서 일제가 폐지한 태형, 일제가 부활시켜 식민통치에 적용

일제치하 ‘순사’는 식민지 조선인에게 공포대상, 영장도 직접 발급

‘변호사를 산다’는 말에 녹아있는 돈이 돼야 움직인다는 금권주의실상

 

▲ 일제는 청일전쟁을 일으키면서 경복궁을 침탈하여 고종을 포로로 잡았다. 동학혁명을 무력진압하고 고종정권을 압박하여 일본식 법체계를 강요했다. 이것이 소위 갑오경장이다. 이 때 태형을 금지시켰다. 조선을 멸망시키고 식민지통치를 하면서 조선태형령을 부활시켰다. 자료는 조선인을 십자틀에 묶어놓고 삼베를 감은 대나무로 태형을 가하는 장면. 자료 출처: https://koreanchristianity.tistory.com/115

 

조서는 왜 ‘꾸민다’고 하게 되었을까?

 

1. 서럽던 시절

경찰서나 검찰청에서 조사를 받은 후, 내게 찾아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조서를 꾸미고 왔다”고 말한다.
범죄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이 수사기관에 불려가서 조사를 받게 되었을 때, 수사기관이 그 조사내용을 기록해 둔 문서를 ‘피의자신문조서’라고 한다.
간단히 ‘조서’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사전을 찾아보니, 「꾸민다」는 ‘거짓이나 없는 것을 사실인 것처럼 지어내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런데, 왜 수사기관이 조사내용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작성하는 조서를 두고, ‘작성한다’거나 ‘쓴다’고 하지 않고, 말짱 거짓말이란 뜻을 가진 ‘꾸민다’란 단어를 쓸까?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겠지만, 이 말은 서럽던 왜정 때 생겨났다. 한일병합 후, 일본은 식민지 조선을 헌병・경찰에 의해 무단으로 통치했다.

말로는 ‘일본인이나 조선인이나 다 같은 황국신민’이라며 내선일체를 부르짖었지만, 일본 의회가 만든 법으로 조선을 운영하지 않고 총독부에서 제정하는 총독부령으로 식민지를 지배했다.

원칙적으로는 일본의 형법・형사소송법을 조선에도 적용하도록 하면서도, ‘조선형사령’을 따로 공포했다.
조선형사령에는 조선인은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판사에게 청구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영장을 발부하여 경찰관은 14일 동안, 검사는 20일 동안 피의자를 잡아 가둘 수 있게 규정했다.

‘조선태형령’도 만들었다. 원래 태형은 일본에서는 명치유신으로, 조선에서는 갑오경장으로 폐지되었지만, 총독부가 부활시킨 것이다.

조선태형령에 의해, 16세 이상 60세 이하의 조선남자는 3월 이하의 징역에 처해졌을때나 벌금을 납부하지 못했을 때, 징역형이나 벌금 대신 매를 맞았다. 삼끈을 칭칭 감은 55cm짜리 대나무 막대기로 매를 맞았다.

매를 때리는 태형의 집행은 감옥이나 헌병대・경찰서에서 비밀리에 집행하도록 했다. 태형은 양손과 양발을 벌려 형틀위에 묶어 놓고, 엉덩이(볼기)를 까고 집행했다. 

맞는 동안 비명을 지를 것에 대비하여 입에 물을 적신 천조각을 물릴 수 있게 했다. 어찌나 혹독했던지, 매를 맞은 사람은 스스로 걸어 나올 수가 없고 다른 사람에게 업혀서 나왔다.

헌병경찰의 매앞에서 벌벌 떨어야 했던 식민지에서 조선태형령의 효과를 실감한 일인들은 “조선놈들은 맞아야 정신차린다”고 했다.

조선태형령의 마지막 13조에서는 「본 令은 조선인에 한하여 이를 적용한다」고 규정했다.
‘조선태형령’은 3.1운동 후, 조선인의 전국적인 분노를 알게 된 새 총독 사이토 마코토에 의해 폐지되었다.

2. 순사

우리나라 국가경찰공무원의 계급은 경정·경감·경위·경사·경장·순경 등의 순서로 구분된다.
순경이 가장 낮은 계급이다.
왜정 때, 경찰계급 중 최하위 계급은 지금의 순경에 해당하는 ‘순사’였다. 조선인을 잡아 가고 매질하던 놈들은 바로 경찰의 최하위 계급인 ‘순사’였다.

조선인은 일인 경찰관 중에서 최하위인 순사에게 영장없이 잡혀가고, 매를 맞았다. 경찰서에 들어 간 이상, 온전한 몸으로 나오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런 법령에 의해 조선인 위에 군림하게 되었으니, 헌병・경찰이 조선인에게 고문을 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일본인에게는 별 볼 일 없었을 최하위 계급자인 ‘순사’가 조선인에게는 무서움을 넘어 공포의 대상이었다. 

울던 아이들은 “순사가 온다”는 말만 듣고도 울음을 그쳤다. ‘순사’에게 잡혀가기만 하면 으례 없던 죄라도 만들어지기 마련이었으니, 경찰서에 잡혀가서조사를 받는 동안 작성되는 조서는 ‘꾸민다’고 하는 것이 당연했다.

대학에서 형사소송법을 공부하면서 ‘조선형사령’과 ‘조선태형령’에 대해 비로소 제대로 알게 되었을 때, 내 몸에서는 소름이 돋았다. 가끔, 사람을 때려 놓고도 ‘맞을 짓을 하기 때문에 때렸다’고 변명하는 경우를 본다.

극단적이지만, “자고로 조선 놈은 때려야 말을 듣는다니까”하는 표현을 거리낌없이 내뱉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통탄할 일이다. 왜정 때의 망령된 잔재가 머릿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사람이다. 나는 「이 세상에 ‘맞을 짓’은 없다」고 믿는다.

내일 모레면 75회 광복절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조서를 꾸민다’는 말이 통용되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제발, 제발 좀, 없어졌으면 좋을 표현이다.

해방 후, 우리나라 경찰은 일본 경찰의 보조원 노릇을 하던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조직되었다고 들었다. 

이런 부끄러운 역사로 출발했음을 생각해서라도, 고문기술자 이근안에 대한 기억을 잊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수사기관이 더 노력했으면 좋겠다.

덧붙여, 변호사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변호사인 나를 앞에 놓고, 스스럼없이 ‘변호사를 산다’고 말하는 것을 본다.

왜 이런 말이 생겼을까?
그에 대해서 아는 바는 없지만, 그저 「오래 전 이 바닥에 ‘돈’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선배들이 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의심해 볼 뿐이다.

그간 ‘변호사를 산다’는 말에 질색을 해 왔지만, ‘그런 말을 쓰지 말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그런 말이 없어지도록 나부터 더 주의해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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