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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 김일성은 손정도 목사의 작품남북 화해 협력 시대에 왜곡된 김일성을 바로 알아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오종홍 기자 | 승인 2020.08.03 18:44

 

손정도 목사,

백범 김구, 도산 안창호, 우남 이승만보다 더 많은 일 해

평안도 갑부 아들로 재산 팔아 만주 길림 개척 이주민 수용

김일성의 정신적 스승으로 김일성 성장기 절대적 영향 끼쳐

주체사상은 우리고유의 정신사상으로 김일성과는 상관없어

북에는 540여개 가정교회로 도착화 된 기독교가 왕성히 활동

김정은은 일찌감치 낙점된 왕도 수업으로 키워진 지도자

 

▲ 조선개국 4353.08.02. 서울 광화문아침에서 열린 통일학당 제33차 강연을 최재영 프레스 아리랑 공동대표가 진행하고 있다. 자료에 보이는 사진은 김일성 주석이 서기1994년 북을 방문한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함께한 장면이다. 

조선개국 4353.08.02. 서울 광화문아침에서 33차 통일학당 강연이 있었다. 최재영 재미교포 목사가 맡았다. 이날 강연은 북에 대한 오해를 푸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

특히 손정도 목사라는 독립투쟁사의 거물과 김일성 주석과의 관계를 조명하여 남북한 근현대사의 핵을 짚었다.

최재영 목사는 현재 프레스 아리랑 공동대표를 맡고 있고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대미자주독립투쟁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초를 치르기도 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시민권자 대북입국 금지를 하기 전까지 북한을 수시로 들어가 활동했다.

현재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벗겨져 자유롭게 국내서 활동하고 있다. 이날도 통일 시대를 맞이하여 남북이 이질감을 극복하고 하나가 되는 데 도움이 되는 강연을 이끌었다. 다음은 이날 강연을 요약한 것이다.

손정도 목사는 누구인가

임시정부 의정원 원장, 교통부장, 재정경리담당을 역임 했고 68개 항일무장단체를 지원했다. 평안남도 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망국을 당하여 재산을 다 팔아 만주 길림으로 이주했다.

집단 이주 촌을 도산 안창호와 함께 건설했다. 이 지역 땅을 매입해 조선 땅에서 이주해 온 이주민들에게 수백만 평을 농사지으라고 나눠줬다.

이런 활동으로 일제의 탄압이 시작됐다. 진도로 쫓겨가기도 했다. 나중에는 현상금이 걸렸고 결국 길림 동양병원서 각혈하며 갑자기 사망했다. 이때가 49세였다. 일제가 음식에 독극물 탄 것으로 추정된다.

손 목사는 현재 동작동 임시정부 요인묘역에 묻혀 있는데 시신은 없다. 사망한 지역 길림의 흙만 파다가 묻어 놓은 것이다.

중국 모택동 문화혁명 때 손 목사 유해 있는 묻혀 있는 지역이 파괴됐다. 지금은 그 위에 도시가 건설돼 어디에 있는지 아예 모르게 됐다.

너무 안 알려져 백범 도산과 우남과 같은 급의 독립투사 거물 임에도 손정도 목사라는 인물이 있는지도 잘 모른다.

왜 안 알려졌나.

본인의 독특한 인생관 철학사상 때문이다. 그의 철학은 스스로 걸레 철학이라고 했다. 걸레는 꼭 필요하다. 궂은 것 더러운 것을 청소하고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구석에 방치해 놓는 그런 것이다. 손 목사는 평소에 “나는 걸레처럼 살고 싶다. ” 라는 말을 신조처럼 했다,

미국에 있는 그 자녀들에게 손정도 목사 기념학술원을 같이 하자 제안하자고 아버지가 평소 걸레처럼 살라고 했다며 거절했다.

자신들도 이름을 알리고 싶지 않다고 아버지의 뜻을 받들었다. 백범, 우남, 도산보다 독립을 위해서 더 많은 일을 했다. 한국 해군의 아버지 손원일 제독의 아버지가 손정도 목사다

김일성에 대한 남한의 모략과 왜곡

박정희 정권의 공작이었다. 처음에는 박정희 정권도 김일성의 항일투쟁을 인정했다. 김일성의 보천보 전투 등 친가와 외가가 모두 항일투쟁을 벌인 가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명영 교수라는 사람이 박정희 정권하에서 왜곡 모략하는 책을 발간하면서부터 김일성의 항일투쟁은 날조된 가짜로 알려졌다. 

김일성 열전, 괴수 김일성, 김일성의 정체, 가짜 김일성 등이다. 박 정권은 정보기관을 동원해 가짜 김일성을 퍼뜨렸다. 국책사업으로 진행했다. 

그러나 김일성과 김일성 가계가 독립투사로 가득하다는 것은 언론에서 먼저 알고 있었다. 동아일보에서는 김일성의 친동생 김철수가 국가독립유공자라고 했다.

김일성의 외삼촌, 강용석도 항일무장투쟁 하다 일제에 잡혀 옥고를 치르다가 병을 얻어 죽었다.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도 마찬가지다. 월남한 한국기독교계의 대부로 알려진 한경직 목사와 한가지인 배민수 목사가 책을 썼는데 거기에 김형직이 혈서를 쓰고 항일투쟁했다고 나온다. 김형직은 조선국민회라는 항일무장단체를 만들어 일제와 싸웠다.

손정도 목사와 김일성의 인연

김일성의 원래 이름은 김성주다. 나중에 이름을 바꾼 것이다. 김성주의 아버지 김형직도 항일투쟁을 하다가 옥고를 치르던 중 갑자기 사망한다. 김형직은 평소에 김성주에게 '나는 병이 있어 오래 못 살 것이다. 내가 죽으면 길림에서 목회하는 손정도 목사를 찾아가라'고 유언처럼 말했다.

당시 김성주는 15세였다. 만주 길림에 있는 조선인 교회로 담임 목사인 손정도를 찾아갔다. 손정도 목사는 잘 왔다면서 부인과 함께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양아들처럼 돌보았는데 손 목사의 부인은 삯바느질로 도왔다. 처음에는 화성의숙에서 배웠다. 독립투사 최동호가 교장으로 있는 곳이었다.

이곳은 동학 천도교가 세운 정의부 소속이었다. 이후 독립투사 오동진과 최동호의 추천으로 손 목사는 김성주를 육문중학교에 입학시켜 학비를 댔다.

김성주는 손 목사의 교회에 나갔고 거기서 주일학교 반사, 연예선전단이라는 성가대 대장도 맡았다. 풍금도 잘 쳤다.

이쯤에 김성주는 조선인 소년단체를 만들어 공산주의 운동 공부를 했다. 기독교 신앙도 동시에 이어나갔다.

이 당시 공산주의 운동은 일제 식민지 압제에서 벗어나는 항일투쟁의 수단이었다. 지금처럼 사회주의 좌파 운동과 같은 것이 아니었다.

손정도 목사의 항일투쟁 정신을 배운 것이었다. 김성주는 비밀독서회도 만들어 활동했는데 당시 만주의 권력은 군벌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군벌 지배하에 있었다.

장작림, 장학량 군벌 치하였다. 공산주의 운동과 관련돼 있어 김성주의 이런 활동을 알고 그가 다니던 육문중학교에 경고가 내려왔다.

그리고 김성주는 체포돼 8개월 정도 구금된다. 이때 손정도 목사가 구명운동을 했고 군벌에게 뇌물을 주어 김성주를 빼냈다.

구금 됐을 때 손정도 목사의 막내딸 손인실이 김성주를 보살폈다. 침구, 사식 등을 들여보내며 도왔다. 나중에 김일성이 손인실을 잊지 못했다고 한다. 

김성주는 출옥 후 손정도 목사에게 인사를 하고 떠났고 이후 15년 동안 풍찬노숙을 하면서 항일무장투쟁을 벌였다. 출옥하면서 주체상의 주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 이날 강연에는 평소보다 많은 시민들이 몰려와 북에 대한 소식에 목말라 했다.

주체사상이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우리 민족 수천 년 동안 내려온 고유한 사상과 정신문화다. 우리 안에 내재해 있는 것이다. 이것을 학문화 철학화한 것이다. 대미대결에서 사상 무장화 한 것이다.

다만 주체사상 근본주의로 흘러 너무 김일성 부자와 결부시켜서 강조하는 것이 흠이다.

주체사상을 교회 신앙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남한의 미국산 기독교는 주님, 또는 하나님에게 믿고 맡긴다고 한다. 북 기독교인의 관점은 다르다.

요한계시록에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와 더불어 먹고 마시리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내가 문을 연다는 것에 방점을 찍는다. 내가 주체가 되는 것이다.

기다리거나 기대거나 의지하지 않는다. 내 길은 내가 개척하는 것이고 내가 주체가 되고 내 힘으로 가는 것이다. 북한도 기독교가 있는데 구한말과 일제 치하 형성된 기독교다.

우리 남한처럼 해방 이후 물밀 듯이 밀려온 미국산 사대주의 기독교가 아니다. 북한은 교회가 가정교회로 돼 있다. 평양에 봉수교회 등이 있지만 북에도 교회가 있다는 것을 상징으로 보여주기 위함이다.

가정교회가 북에는 540여 개가 있다. 특별히 교회당이 없을 수밖에 없다. 마을 회관 등 공공건물에서도 예배드린다. 북의 기독교는 이렇게 토착화됐다. 남한은 미국식 교회가 토착화된 것이다.

북에는 당연히 신앙의 자유가 있다. 종교정책을 두 갈래로 펴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누구나 종교자유가 허용한다. 대외적으로는 제한, 통제한다.

밖에서 북으로 목사나 선교사의 신분으로 들어와서는 간첩행위를 하는 것이 자주 일어나다 보니 나타난 현상이다.

미국 시민권자로 알려진 김동철 목사가 북에서 활동했는데 나중에 북에서 돌아와 한국 전광훈 목사에게 자기는 미국 씨아이에이(미국중앙정보국)의 첩보원이었다고 털어놓더라는 것이다.

김정은은 어떻게 키워졌나

흔히 김정은, 김정철, 김여정이 스위스에 유학했는데 베른에 있는 최고급 국제학교에 다닌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반만 맞는 것이다. 김정철과 김여정은 베른의 최고급 국제학교에 다닌 것이 맞다. 김정은은 다르다.

시골에 있는 이름이 없는 학교에 다녔다. 이는 김정일이 그의 자질을 알아보고 지도자 수업의 하나로 하층계급을 체험시키는 과정이었다. 돌아와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인민군 사병으로 들어가 군 생활을 한다.

또 북조선 최고 대학인 김일성 종합대학에 들어간 것도 아니다. 김일성 군사종합대학에서 공부했다. 지도자로 일찌감치 낙점돼 왕도 수업을 밟아 지도자로 키워진 것이다.

그가 집권하고 벌이는 것을 보면 종합적이다. 새로 건설되는 도시나 농장을 보면 스위스풍이 물씬 풍긴다.

백두산 아래 삼지연 시나 강원도 3개 군을 밀어서 만든 대규모 농장, 세포 등판의 건물이나 목초지를 보면 스위스풍이다. 스위스 유학시절 보고 느낀것이 그의 북조선 '재조산하'에 진하게 녹아 들어가 있다.

▲손윤 통일학당 학장. 손 학장은 이날 강연을 마무리하면서 이제까지 북조선 김성주(김일성)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들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감동했다. 김성주가 화성의숙에 들어가서 배운 것을 언급하며 최동호가 학교장이었는데 이는 동학 천도교가 세운 정의부 소속이었다며 역사의 내막을 상기시켰다.

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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