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훈의 천부경 풀이를 연구하여 국학의 격을 높여야 한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전병훈의 천부경 역사

천부경을 푼 전병훈에 자극, 천부경 재조명해야

망명객으로 북경에서 천부경 가치 알고 풀어

계연수->윤효정->전병훈으로 이어지는 천부경

전병훈 천부경 1백 주년 맞이 학술발표회 필요

 

▲조선 개국 4353.07.25. 서울 종로구 익선동 한배달 강당에서 제1450차 21세기신문화연구회가 주최한 강좌가 있었다. 이날 강좌는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 사무총장, 이찬구 박사가 맡았다.

일제 침략기 우리 국학을 세우는 일에 일생을 바친 인물을 꼽으라면 단재 신채호가 떠오른다. 또는 백암 박은식 등이다. 국사 교과서에서 언급될 만큼 많이 알려져 있다.

국학은 정신이 핵심이다. 사상이라고도 할 수 있고 철학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 겨레의 의식구조다.

우리 겨레의 집단의식구조의 원형은 일연의 삼성기인 삼국유사 고조선기에도 녹아 있지만 직접 글자로 밝히고 있는 것은 천부경이나 삼일신고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천부경은 총론 격이고 숲과 나무를 상정할 때 숨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 천부경은 단군교, 대종교,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에서 전하고 있다.

천부경이 세상에 나와 공식 문헌으로써 연구돼 출간까지 한 것은 서기1920년 전병훈이라는 인물이 쓴 <정신철학통편>이다.

조선 개국 4353.07.25. 서울 종로구 익선동 한배달 강당에서 제1450차 21세기신문화연구회가 주최한 강좌가 있었다.

이날 강좌는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 사무총장, 이찬구 박사가 맡았다.

이날 이 박사는 천부경과 동학의 수련법을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천부경을 연구하다 보니 동학과 통하더라고 하면서 이렇게 된 계기는 전병훈이 푼 천부경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그동안 천부경과 동학, 주역을 오래 연구했다고 소개했다. 천부경 연구를 철학적 우주론적 관점으로 했고 이제까지 천부경이나 동학을 수련과 연관시켜 얘기하면 거부반응이 있었다고 했다. 이 박사 본인도 이런 태도였음을 암시했다.

이제까지 천부경을 철학적 시각과 우주론 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전병훈의 천부경 연구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는데 자신이 그동안 천부경을 잘 안다고 까불었다며 전병훈의 천부경 풀이가 깊이 있음을 암시했다.

또 코로나 돌림병을 겪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며 수운 최제우가 전하려는 도가 무엇인지도 생각하게 됐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코로나 돌림병을 겪으면서 인간이 변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마음을 바라보는 것만 중시했는데 이제 몸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몸 수련수단으로 천부경과 연결 시켰다.

이어 전병훈이 천부경을 입수하게 된 과정을 정신철학통편의 천부경 풀이 서문을 풀면서 밝혔다. 먼저 전병훈은 자신을 서우라고 소개했다. 서우曙宇는 우주의 서광이라는 뜻이다. 밝게 빛나는 우주로도 풀이된다.

서우한인전병훈이 편집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첫 장 제목이 동한신성東韓神聖단군천부경이다. 동쪽 한국의 신령스럽고 성스러운 단군 천부경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전병훈은 서문에 윤효정이 천부경을 가져다주었다고 밝히고 있다. 앞서 천부경은 신라 시대 고운 최치원이 처음 전한 것으로 적고 있다. 그는 최치원을 동쪽의 선인이라고 했다.

당나라에서 진사를 하고 돌아와 선을 이룬 자라고 한다(成仙者). 천부경 81자가 신지 전자로 된 것을 옛날 비석에서 발견하고 해석해서 백산에 정성을 다해 새겨놨다. 여기서 백산을 이 박사는 북한 묘향산이라고 했다.

이렇게 새겨 놓은 것이 서기 1917년 북한 영변군 백산에서 나왔다. 계연수라는 도인이 백산에서 약초를 캐면서 생활하다 석벽에서 발견하고 탁본하여 전했다.

이 박사는 당시 대한자강회라는 항일독립단체가 있었는데 여기에는 한단고기에 합본 된 안함로 삼성기 등을 전한 해학 이기, 윤치호, 계연수, 윤효정 등이 활동했다고 했다.

윤효정이 천부경을 계연수로부터 받은 연결고리를 대한자강회에서 찾았다. 두 사람은 이미 이런 활동을 통해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윤효정이 천부경을 계연수에게서 입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서문에서 전병훈은 윤효정을 늙은 유학자라고 한다. 전병훈 자신도 유학에 능통한 조선과 대한제국의 관리를 역임했다. 여기서 윤효정이 전병훈에게 천부경을 전해 준 윤곽이 드러난다.

전병훈은 천부경을 받기 전에 이미 정신철학통편을 북경에서 출간하여 세계 주요나라에 배포할 계획이었다. 출간 직전에 천부경을 받아 출간을 멈추고 천부경을 연구했다.

결과 천부경의 가치를 알고 책 처음에 실었다. 그는 천부경을 최고의 극존칭으로 부르며 기자의 홍범경 등 중국의 어떤 사상이나 철학보다 가치 있다고 평가했다.

천부경은 우리나라가 천지의 중심이 되고 가장 오래된 신성한 문명국임을 말해준다고 감탄한다.

▲서우 전병훈이 천부경을 풀면서 내놓은 수행도. 이찬구 박사는 이것이 우리의 고유 풍류도라고 소개했다. 수련을 하다보면 몸에 또 하나의 내가 탄생하는 데 이것이 본래 '나'라는 것이다. 그는 예수의 부활개념, 거듭남으로 표현했다.

전병훈은 서기 1892년 의금부 도사를 거쳐 서기 1899년 중추원 의관을 지냈다. 또 전라남도와 황해도에서 균전사를 역임했다.

독립을 지키자는 상소를 다섯 차례 올렸는데 오히려 북간도 관찰사로 좌천당했다. 또 을사늑약의 부당성에 항거하고 독립을 촉구했다가 또 좌천당했다.

이에 50세 때인 서기 1907년 관직을 내려놓고 배로 중국으로 망명길에 오른다. 상해와 남경을 거쳐 광동에 가서 도교에 심취하여 연구하고 수련도 한다.

득도 체험을 하고 세상에 나와 북경에서 활동했다. 서기 1920년에 정신철학통편을 출간한다. 이 책은 중국 도교의 내단사상을 요약하고 서양 철학사상을 정리해 놓고 있으며 첫머리에 윤효정이 전한 천부경을 풀어 소개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을 이찬구 박사는 조남호 교수의 글을 실어 전했다.

이 박사는 전병훈이 정신철학통편을 출간하여 세계 주요 국가에 보냈다고 한다. 지금도 미국 도서관을 검색하면 이 책이 소장돼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이어 전병훈이 정신철학통편을 내놓은 지 1백 주년이 된다고 하면서 그가 공식으로 천부경을 연구한 최초 학자라 평가했다.

그전에는 누가 전하고 어디서 발견됐다는 말만 무성했을 뿐 세상에 내놓은 연구물이 없었다고 했다. 천부경이 전해지는 공식 역사는 전병훈에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더구나 구한말 고위관리를 역임한 당대 최고의 유학자 중의 한 사람이 천부경을 연구 해석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았다.

전병훈의 천부경 풀이 서문을 보건데 북경에서 망국인으로서 천부경을 풀면서 쓰라린 눈물을 흘렸을 것이라고 보았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가운데 외롭게 우리 국학의 최고봉인 천부경을 전했다는 것이다.

막연한 철학사상이 아니라 자신의 유학과 도교 경험을 바탕으로 천부경이 실생활에서 나 자신을 변형시키는 수행 방편이 될 수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이 박사는 천부경이 전해지는 과정을 강조하며 천부경이 실사성이 있음을 부각시켰다. 또 계연수가 강단식민사학계서 모함하는 것과 같이 가상 인물이 아니라 실제 역사 인물임을 분명히 했다.

이날 시간상 한계로 천부경과 동학의 수련 방편까지 소개하려고 했으나 천부경 서문 해설에 그쳤다. 이 박사는 올해 하반기에 전병훈 정신철학통편출간 1백주년 학술발표회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가운데 천부경이 역사가 되게 한 전병훈의 국학수호 업적이 출간된지 1 백주년이 됐다. 이를 기념하지 않는 것은 국학을 잇는 후학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광복 75주년이 되고 있지만, 온통 외래 철학사상이 주인행세를 하는 이때 전병훈의 국학을 더이상 외면하는 것은 후손의 도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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