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구한 민족사로 보아야 통일을 밀어붙일 수 있다.

 

 

 

의암의 선견지명으로 보는 통일투쟁의 당위성

반통일 분위기와 분단경제극복은 유무상자정신

일본 극복은 통일 3분의2 달성한 것이나 같아

 

▲조선개국4353.07.05. 서울 종로구 안국역 2번 출구 맞은편 광화문아침에서 통일학당 주례 강연을 손윤 학장이 하고 있다.

분단이 계속되는 한 배달겨레는 주변 강대국에 뜯기는 신세를 면할 수 없다. 주변 강대국은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을 통상 말한다. 뜯기는 다는 것은 다양한 뜻을 갖고 있다.

경제예속은 물론이고 정치, 군사, 문화 등 모든 면에서 피해를 당한다는 뜻이다. 경제는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다른 나라에서 벌어가지고 와서 일본에 갖다 바치는 구조다.

작년 아베의 수출제재에서 우리나라가 얼마나 일본에 종속된 경제구조를 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 바 있다. 극일을 하자고 외쳤지만 단기간 끝날 일은 아니다. 또 중국의 입김에 항복할 준비가 돼 있다.

정치는 미국에 종속돼 있다. 최근에 논란이 된 한미공조체제(한미워킹그룹)가 대한민국의 남북정책 위에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핵심을 들여다보면 미국의 대한국 차관보정치다.

비건이라는 자가 주도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당시 그자는 미국의 차관보였다. 차관보가 대한민국 대통령보다 위에 있어 국내정치를 좌우했다. 특히 대북정책에서 심했다.

이는 서기1907 고종의 헤이그 밀사사건으로 촉발된 차관정치를 그대로 빼닮아 있다. 이미 서기1905년 설치된 통감부에서 일본인 차관급 관리를 대한제국 각 기관에 파견해 감시, 감독했다. 무슨 정책을 하더라도 일일이 차관에게 보고하고 허락을 받아야 했다.

군사 분야와 문화 분야도 외세 예속은 두드러진다. 특히 미국에 거의 맡기다 시피하고 있다. 문화식민지라는 말이 오래전부터 유행했는데 지금은 거의 회복불능상태다. 말도 우리말 두마디 하면 꼭 한 개는 미제영어단어가 들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거리는 온통 미제말로 간판이 뒤 덮혀 있다. 누가 누가 잘하나 앞 다투어 미제 말 섞어 쓰기 경쟁하고 있다. 분야가 조금이라도 다르면 의사소통이 안 될 지경이 됐다. 우리말을 의지를 갖고 쓰려고 하면 따돌림 당하는 분위기다.

학문, 음악, 학위, 음식, 영화, 춤 모든 문화영역이 미제 따라가기 바쁘다. 자주적 진보세력이라고 하는 자들 마저 미국이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

이것이 분단체제가 만들어낸 참상이다.

분단의 반대는 통일이다. 통일은 미제가 가장 반대하지만 옆에서 기를 쓰고 거드는 것이 일본이다. 서기2018년은 다시 한 번 남북화해 상생번영의 분위기가 무르익은 해였다.

북조선 김정은 위원장의 선제조치로 이루어진 것이다. 평창올림픽에 참여하는 결단으로 물꼬가 트였다.

이 해 3차례 조미정상회담이 열렸고 남북도 3차례 정상회담이 열렸다. 대결시대를 끝내고 상생 번영으로 가자고 약속했다.

결국 파탄 났는데 알고 보니 일본이 이간질한 것이 주요변수였음이 볼턴 회고록에서 드러났다.

일본과 한패인 국내 미래통합당의 전신 자유 한국당 나경원이도 볼턴을 찾아가 이간질 했다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복수의 언론에서 보도된바 있다.

통일을 미국만큼이나 반대하는 일본의 실체를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일본을 지배하는 지배세력은 자민당을 중심으로 뭉쳐있다. 이 세력의 뿌리를 알아보는 강연이 있어 화제다.

조선개국4353.07.05. 서울 종로구 안국동 광화문 아침에서 주례 통일학당 강연회가 있었다. 이날은 손윤 통일학당의 학장이 강사로 나섰다.

주제는 ‘경제, 통일, 평화’ 였다. 이날 손 학장은 일본의 실체를 파악하는데 강연 약 3분의 2을 할애했다. 일본이 남북통일을 가장 반대한다는 것을 전제로 일본 집권당이 아베의 자민당 세력의 뿌리를 팠다.

손 학장에 따르면 아베세력의 기원은 임진왜란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주요 세력이 아베신조 일본총리의 정치 고향인 현재 야마구치 현을 중심으로 포진해 있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이 조선전쟁에서 패하고 죽자, 도쿠카와이예야스 세력이 풍심수길세력을 타도했다.

이후 일본 주도세력이 도쿠가와이예야스(德川家康)을 중심으로 모였고 현재 동경에 자리를 잡았다. 도쿠가와 막부세력이 임진왜란 이후 약 250년간 일본을 지배했다.

서기1850년에 들어 서양세력이 일본에도 밀어닥쳤다. 미국의 강제개항으로 서양에 문호를 연 덕천막부정권은 막부정권에 불만을 품은 하급 사무라이 세력과 전쟁을 벌였다.

하급사무라이 세력은 당시 죠슈번세력이 주도했는데 현재 야마구치 현을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세력을 키운자가 요시다쇼인(吉田松陰)이다. 그는 송하촌숙이라는 서당을 열고 장차 명치유신을 주도할 인물들을 양성했다.

존왕양이라는 기치를 걸고 당시 막부세력을 몰아내고 일왕을 중심으로 외세를 막아내자는 주장을 했다. 여기서 이토오히로부미, 야마카다아리토모, 기도 다카요시, 오쿠보 도시미치 등 천황제를 부활하고 중앙집권체제를 만든 인물들이 탄생했다.

이를 명치유신이라고 하는데 이 세력이 조선을 침략하여 식민지로 만들었다. 조선을 정복하고 나서 원래대로 돌아왔다며 고토수복을 했다고 주장했다.

조선을 침략하는 과정을 보면 거의 야마구치현 출신들이 주도했음을 알 수 있다. 서기 1884년경에는 일본은 야마구치현의 송하촌숙 출신의 이토오히로부미가 장악하고 있었다.

동학혁명이 발발한 서기1894년 6월21일에는 일본군이 경복궁을 침탈하여 고종을 포로 사로잡았다. 청일전쟁을 앞두고 사전 정지작업의 일환이었다. 조선정권을 일본군에 협조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임진왜란 때 못 잡은 조선왕을 250여년 뒤에 사로잡았음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 때는 선조가 미리 알고 도망가서 못 잡았는데 이번에는 잔꾀를 써서 잡았다. 또 임진왜란 때는 관군이 의병과 합세하여 왜군을 물리쳤는데 이번에는 의병이라고 할 수 있는 동학농민군을 관군이 왜군과 합세하여 살육했다.

고종을 포로로 잡고 전국 관군에게 왜군에게 협조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경복궁 침탈당시 군인이 오시마 요시마사였는데 이자가 현재 일본 자민당 총리대신 아베신조의 고조부다.

혈연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현 아베신조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일 극우파 자민당이 일제침략세력을 조상으로 두고 있고 이 세력이 임진왜란을 일으킨 세력이다.

이 세력은 아직도 우리나라를 자신의 식민지로 여기고 있다. 최근에 일본 아베신조가 보인 행태를 보면 사실임이 드러난다.

작년의 적반하장격의 수출규제와 우리나라가 선진국 G7에 들어가려고 하자 극구 반대했고, 일본 교과서에 여전히 고대에 우리나라를 식민통치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을 싣고 있다.

손 학장은 덧붙여 명치유신을 하고 조선침략을 주장했던 사이고 다카모리 동상이 그의 고향 가고시마현에 세워져 있는데 조선을 향하고 있다고 상기시켰다. 한국침략야욕을 현재 일본이 버리지 않고 있음을 내비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세력이 현 분단체제를 환영하고 통일을 갖은 수단과 방법으로 방해하고 있다. 또 국내에 정치, 경제, 학문 등의 영역에 일본 자금으로 활동하는 세력을 키워 일본의 침략행위를 옹호케 하고 있다.

이날 손 학장은 일본의 이런 실체를 알아야 한다며 동학의 수운 최제우나 의암 손병희 선생의 일본에 대한 시각을 소개하며 일본을 극복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수운 최제우는 “개 같은 왜적놈”이라고 할 정도로 일본의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 왜적이 다시 올 것을 예견하고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했는데 거꾸로 자신을 탄압하고 왜적을 끌어들인 결과를 저질렀다고 당시 고종정권을 비판했다.

손 학장은 국민총생산량 등의 지표를 제시하며 일본을 극복할 날이 멀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하나도 둘도 우리가 살길은 북조선과 전면교류밖에 없다고 역설했다. 무역을 전면허용하여 국부를 쌓으면 일본이 넘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미 남북한은 각종 선언과 구체적인 실행 안까지 교환했으니 과감하게 실행만 하면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북조선 헌법도 이민위천以民爲天이라는 정신을 싣고 있고 우리도 동학의 사람 섬기기를 하늘 같이 하라(事人如天), 인내천 등의 정신이 있으니 잘 통할 것이라고 했다.

남북경제협력은 지금 코로나19로 촉발된 경제침체와 위기를 해결하는 방법임은 두말 할 나위도 없고 미국을 극복하는 길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만남으로부터 시작, 투자로부터 출발, 민족애의 복원이 통일의 길. 이것이 밥 한 그릇의 삶이’라는 구호로 강연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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