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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동 유물은 찬란, 설명은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원삼국설' 발명한 김원룡의 식민고고학도 이제 청산을 본격 추진해야 한다.
오종홍 기자 | 승인 2020.06.06 23:55

 

 

김해 대성동에서 도굴 안 된 원형 목곽묘 발굴 화제

석기, 청동기, 철기, 옥, 칠기, 등 부장품 백화점 형

‘북방대륙계’, ‘왜계’ 것이라며 조선총독부 관점유지

 

▲김해시 대성동 108호 나무곽 무덤에서 가야의 실체를 알 수 있는 유물들이 다량 출토됐다. 자료: 김해시 제공

서기2020.06.03. 신문 방송할 것없이 언론매체들은 경남 김해 대성동에서 도굴 안 된 무덤이 발굴됐다며 일제히 앞 다퉈 소식을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발굴을 주도한 것으로 보이는 김해시와 대성동고분박물관 측은 학술발굴 결과 도굴이나 훼손 흔적인 없는 거의 온전한 상태의 귀족 무덤이 발굴됐다고 밝혔다. 또 이번 발굴은 문화재청의 허가와 비용을 지원받아 지난해 말부터 진행해 왔다.

발굴품을 보면 전국 무덤에서 나오는 모든 물건을 다 모아 놓은 듯하다. 이제까지 발굴된 무덤에서 나온 부장품을 보면 이번 108호 무덤에서 나온 물건들의 일부가 대부분이었다. 이는 이 무덤들이 이미 도굴된 뒤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부장품에는 토기 17점, 방추차형 석제품, 청동그릇 1점, 통형동기 1점, 철정이라고 하는 가공전의 대형덩이쇠 40매, 이른바 환두대도라고 하는 둥근고리큰칼, 화살촉 등 130여점의 철기, 대롱옥장식 목걸이, 곡옥이라고 알려진 굽은 옥장식 목걸이 각 1점 등 2백여 점의 유물이 나왔다고 한다.

석기부터 철기에 이르기 까지 석기시대부터 철기시대를 관통하는 물건이 다 나온 것이다. 더구나 고도의 가공과 기술을 요하는 옥장식 목걸이까지 나왔다. 또 옻칠을 한 물건까지 나왔다. 목곽에 옻칠을 했다고 한다. 같은 시기 전국 무덤에서 나온 물건을 다 모아놓은 백화점식 무덤이라고 할 수 있다.

▲ 이번 김해 대성동 108호 목곽묘에서 나온 이른바 통형동기. 식민고고학의 보도자료를 그대로 읊은 언론보도는 이것이 왜계 유물이라고 한다. 그러나 가야산으로 밝혀졌다. 자료: 김해시 제공

무덤 양식도 눈길을 끈다. 목곽묘라고 한다. 사방형으로 구뎅이를 파고 나무로 곽을 만들어 틀을 잡고 그 안에 나무관에 시신을 안치고 주위에 부장품을 놓는 형식을 나무곽 무덤, 목관묘라고 한다.

보도와 무덤 사진을 보면 이런 형식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다. 다만 무덤 바닥에 시커먼 나무판자가 삭은채 일부만 남아 있다. 목곽무덤이라고 했으니 앞서 밝힌 형식의 무덤이다.

문제는 시대를 아우르며 고도로 가공된 찬란한 부장품을 두고 어떻게 해석했냐는 것이다. 먼저 언제쯤 것이라고 하는지 보자.

온 언론매체가 보도한 것을 보면 기사 내용이 천편일률로 같다. 발굴단체에서 보내준 보도 자료를 그대로 읖조린 것을 알 수 있다.

하나같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을 정도로 같다. 일부 언론은 양심이 있는지 말을 약간 바꾼 정도다.

그러니까 발굴단체의 보도 자료의 말을 빌리자면 이 무덤은 서기 4세기 초라고 한다. 이는 지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한 가야 전에서 나온 가야개국시기와 일치한다.

그 때도 가야는 서기 3세기 까지 없었다고 설명해 놨다. 변한만 있었다고 했다. 이때 까지 가야는 없었고 4세기 이후에 생겨났다는 얘기다.

이미 서기2020.05.13. 본지에서 보도한 바와 같이 이는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이라는 조선총독부 식민주의 사관에 따른 것이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에는 가야는 분명히 서기42년에 개국했다고 나오는데 4세기 초라고 한다. 이는 비단 가야뿐만이 아니다.

▲ 이번 108호 목곽묘에서 나온 '대롱형' 이라고 보도된 목걸이. 가공실력이 고도로 발달돼 있음을 알 수 있고 정교하다. 목걸이 삼수 철학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료: 김해시 제공

백제, 신라 관련 발굴에서도 같다. 발굴물이 아무리 올라가 봐야 4세기 이전으로 올라가는 것은 거의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거의 4세기 또는 5~6세기 것으로 딱지를 붙여 놓는다.

조선총독부 식민사관, 오늘날로 말하면 일본극우파 사관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108호 무덤은 저들의 말대로 도굴로 훼손이 안 된 원형의 것이다. 목곽묘라 나무관이 커다랗게 남아 있다.

고고학의 제1원칙 과학적 측정방법을 동원하면 간단하게 년대 문제가 해결된다. 소위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이다. 이 방법을 써서 측정해 봤다는 소리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아마도 서기1997년 서울 몽촌토성, 풍납토성 발굴물 방사성 동위원소 측정으로 세게 당한 것이 크게 작용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은 <우리안의 식민사관>에서 식민사학계가 어떻게 발굴물을 뒤집어 조선총독부 사관에 따라 년대를 낮추었는지 고발했다.

방사성 동위원소 측정을 해 보니 서기전 2세기로 나왔다. 나중에 식민사학계가 압력을 넣어 다시 측정해서 서기 3세기 후반으로 끌어내렸다고 한다.

소위 한성백제가 서기3세기 후반에 개국했다는 것을 이렇게 고고유물 조작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지금 몽촌토성자리에 들어선 한성백제박물관은 조선총독부 식민주의 역사관 홍보장으로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는 중이다.

박물관장과 직원 등 모두 식민사학 추종자들로 채워 놓았기 때문이다. 본사 기자가 거기서 열리는 식민사학 시민강좌를 취재할 때, 과장이라는 자는 물론이고 직원까지 추종자임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김기섭 당시 과장이라는 자는 학술발표자로 참여해 대륙백제를 부정했고, 한 직원은 기자가 한국고대사학회 장을 지낸 김영하 성균관대 교수가 발표한 내용을 비판하는 질문을 하자, 다가와서 저지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 이번 김해 대성동 가야유물 발굴소식을 전하는 언론매체들. 조선, 동아, 한겨레 등 좌우를 가리지 않고 '북방대륙계, 왜계' 유물이라고 일제히 복사해서 보도했다.

이번 108호 무덤 발굴발표에서도 어김없이 북방계 남방계 도래설이 또 등장했다. 청동그릇은 북방대륙계이고 통형청동기는 왜계라는 것이다.

북방대륙계는 흉노 유목족의 구리솥(동복)을 염두에 두고 한 것이다. 통형 청동기는 왜의 제품이라는 뜻이다.

북조선은 평양에서 대규모 무덤 군을 발굴한 바있다. 소위 통일거리에서다. 정백동, 토성동 무덤에서 썩지 않은 나무곽무덤이 다수나 왔다.

부장품을 보면 이번 김해 대성동 부장품과 거의 똑 같다. 놋단검류, 쇠검류, 둥근고리자류(환두도자), 돌, 청동, 쇠로 된 화살촉, 쇠갑옷, 마구와 수레부속, 구슬, 귀걸이, 토기단지, 옻칠한 칠기류, 청동그릇(단지,바리,접시 등) 무수한 물건들이 나왔다.

북조선에서는 이 나무곽 무덤의 연대를 하한은 아무리 내려가 봤자, 서기전 1세기로 본다. 그럼 상한은 어느 때까지 올라갈까, 정가와자 나무곽무덤을 고려하면 서기전 7세기까지 간다고 한다.

똑같은 구조, 거의 같은 부장품의 나무곽 무덤인데 남한의 식민사학의 통제를 받는 식민고고학은 서기4세기 초라고 지껄이고 있다.

북조선은 정가와자와 비교해서 서기전으로 잡고 있다. 무려 최소한 4백년이상 역사를 날려 버린 것이다. 고대판 조선총독부, 임나일본부가 가야=임나에 설치되어 지배했다고 하기 위해서다.

▲김해와 마주보고 있는 일본 야마구치현 사이토바루 박물관에서 전시돼 있는 이른바 환두대도. 이번 김해 대성동 108호 목곽묘에서 발굴된 것과 똑 같다. 일제는 서기1912년 이곳을 발굴하고 여기가 '황조의 발상지'라고 했으며 시작을 서기3세기 후반이라고 했다. 자료: 이덕일 역사 tv(유튜브) 갈무리. 

왜계라고 한 통형동기라고 하는 물건은 이미 "김해 양동, 김해 대성동, 부산 복천동 등 낙동강 하류의 대형고분군에서 다량으로 출토" 된바 있다.

일본열도에서 나온 것과 상대가 안될 정도로 많다. 그런데도 여전히 왜계라고 하고 있다. 이 식민고고학은 바람개비형 동기(이른바 파형동기)도 왜계 것이라고 한다. 

가야세력이 건너가 일본 천황의 시조가 됐다는 것이 '이덕일 역사 tv' 유튜브에서 이미 밝힌 바 있다. 가야 남부를 마주 바라보고 있는 열도 야마구치현에 있는 사이토바루(西都原) 고분군이다.

전시물을 보면 가야를 옮겨 놓은 듯 하다. 이번 대성동 108호 목곽무덤에서 나온 이른바 환두대도 부터에서 철갑투구, 토기 등 모두 가야산이라고 할 만큼 똑 같다. 

이덕일 교수에 따르면 일제가 우리를 침략, 집어삼킨후 서기1912년 당시 동경제국대학, 교토제국대학, 일왕가를 떠 받치는 국내성이 합동 발굴했는데 일왕의 발상지("황조발상지의 땅")라고 적시해 놓고 있다. 시작을 서기 "3세기말에서 6세기까지" 라고 써놨다. 

국내 식민사학계의 우상이자 '조선반도사편찬'을 주도한 악질 일제식민사학자, 이마니시류(今西龍)가 발굴에 참여했다고 한다.

이 자는 이런 사실을 다 알면서 조선에 건너와서는  가야가 임나고, 서기369년 부터 점령했고, 야마토왜, '천황'가가 서기전 660년 시작했다고 지껄였다. 이를 두고 이덕일 교수는 일본 역사학은 학문이 아니라 사기꾼의 소리라고 질타했다. 

 

▲ 야마구치현 사이토바루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철모. 일왕가의 발상지라고 하는 곳에서 나온 것이다. 가야 철모와 똑 같다. 일왕가의 시작이 가야 이주민이었다는 것을 고백하는 증거다. 자료: 이덕일 역사tv 갈무리. 

결국 문재인 대통령이 가야사 발굴하라는 것이 혈세를 퍼부어 조선총독부, 일본극우세력에게 가야사를 팔아먹으라는 것이 되고 말았다.

이 총독부 사관으로 도배한 '가야본성' 전시가 국립중앙박물관과 부산박물관 전시에 이어 곧, 일본도쿄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런 사례는 한 두번이 아니다. 언제까지 이들의 혈세탕진 매국행위를 보고만 있어야 할까. 이게 정상국가인가.

 

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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