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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 불로초가 제주도에 있었다?제주도와 거제 해금강에 진시황의 불로초 찾아 서복이 왔다는 것은 후대에 꾸며낸 이야기다.
이덕일 | 승인 2020.05.27 23:27

 

이덕일(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신한대학원 교수)

 

 

《사기》<진시황본기>, 《한서》 <교사지郊祀志>,

바다=발해 가운데 삼신산이 있어 불로초=불사약을 찾으러 가

삼신산은 봉래, 방장, 영주산이고 불사약과 신선이 있다고 봐

제주도나 거제 해금강의 불로초와 서복래설은 후대 조작한 것 

 

▲ 제주도. arrigolupori, 출처 Unsplash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이 불로장생의 꿈을 찾아 제주도에까지 사람을 보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는 진실일까요? 《사기》<진시황본기>에 나와 있는 내용을 보면 이렇습니다.

"이미 일을 마치자 제나라 사람 서불徐市 등이 글을 올려 ‘바다 가운데에 삼신산三神山이 있는데 그 이름이 봉래산蓬萊山, 방장산方丈山, 영주산瀛洲山이고 신선들이 거처한다’며 재계齋戒하고 동남동녀들과 함께 이를 구하길 청했다. 이에 서불을 보내 동남동녀 수천 명을 선발해 바다로 들어가 신선을 찾게 했다."

서불徐市 혹은 서복徐福이라고도 하는 이 인물은 방사方士로 자는 군방君房입니다. 서불은 진시황의 명을 받아 기원전 219년에서 210년 사이에 두 번에 걸쳐 불로초를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났습니다. 여기에는 60척의 배와 5000여명의 일행, 3000여명의 동남동녀 등이 함께 했다고 합니다.

《한서》 <교사지郊祀志>에는 '삼신산'에 대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이 삼신산은 발해 안에 있다고 전한다. 사람과의 거리가 멀지 않아서 일찍이 여기에 이른 자가 있었는데 여러 신선과 불사약이 모두 여기에 있으며 그곳의 사물과 새와 짐승이 모두가 희고 황금과 백은으로 궁궐을 만들었다. (삼신산에) 이르지 않고 바라보면 구름 같지만 이르면 삼신산이 물 아래에 있다. 이곳에 임할 때 걱정이 있으면 바람이 갑자기 배를 당겨 떠나게 해 끝내 이르지 못한다고 이른다. 세상의 군주들이 마음으로 달게 여기지 않는 자가 없었다.”

또 《괄지지》에는

“단주는 동해 속에 있다. 진시황이 서복을 시켜 동남童男 동녀童女를 거느리고 바다로 들어가 선인을 찾게하여 단주에 머물러 있었는데 수만 가구가 함께 살고 있었다. 지금도 단주 상류층들이 회계 시장에 이르러 교역하는 자들이 있는데, 오나라 사람의 <외국도>에 단주와 낭야의 거리가 1만 리이다.” 라고 했습니다. 

서복이 들어갔다는 단주는 중국에서는 중국 남방 월나라 지역으로 보는 견해가 있고, 산동반도 바다 안에 있다고 하기도 합니다. 또 대만이나 일본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며 제주도나 거제 해금강으로 비정하기도 합니다. 

제주도나 거제 해금강으로 비정하는 이유는 제주 정방폭포에 서복과지徐福過之(서복이 지나가다)라고 쓰여 있고, 거제 해금강엔 서불과차徐巿過此(서복이 이곳을 지나가다)라고 쓰여 있다는 것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대부분 후대에 사대주의 사상으로 만들어진 내용들로써 근거가 없습니다. 천혜의 섬, 제주도에 서불이 불로초를 찾아 왔었는지는 알 수 없다는 이야깁니다. 

참고문헌: 신주사기新註史記

 

이덕일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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