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나라의 동쪽 국경선을 알면 단군조선의 판도가 보인다.

 

글: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신한대학교 교수)

 

진나라 동쪽 국경선은 현재 하북성 갈석산 인근

중국 모든 사료가 이곳이라고 일관되게 기술함

강단식민사학계와 일본, 중국만 아니라고 해

 

조선의 국경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논란이 있습니다. 국내 사료에는 구체적인 기록이 없어서 중국 사료를 기초로 판단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마천의 <사기>도 고조선의 국경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 중 하나입니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사기연구실이 펴낸 《신주사기》5권 <진시황본기>에는 진나라와 고조선의 국경과 관련한 대목이 서술돼 있습니다. 우선 《사기》 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자료출처 :《신주사기》5권 <진시황본기>

이는 진나라가 고조선과 강역을 맞대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현재의 발해는 산동 반도 위쪽에서 하북성 아래쪽의 바다를 뜻합니다.

중국인들에게 동북東北은 현재의 북경 동북쪽을 뜻합니다. 진나라가 만리장성을 쌓은 곳이 바로 고조선과 진나라의 국경입니다. 

현재 만리장성은 하북성 진황도秦皇島시 산해관山海關까지인데 명나라 때 쌓은 것으로 이것이 만리장성이 가장 동쪽까지 진출한 것입니다.

마지막 문장 "북쪽으로 하수河水(황하)에 의지해 요새로 삼고 음산陰山과 나란히 하여 요동까지 이르렀다"는 대목은 진나라와 고조선의 국경이 고대 요동이었음을 말해줍니다.

현재의 요동은 요양遼陽시를 끼고 흐르는 요하遼河 동쪽을 말하지만 진한秦漢 시대의 요동은 하북성 일대에 있었습니다.

《사기》 <몽염열전>에는 “시황제 26년 장성을 쌓았는데, 지형에 따라 험난한 곳을 이용해서 성채를 쌓아 임조에서 시작해서 요동까지 이르렀는데 길이가 만리였다[築長城 因地形 用制險塞 起臨洮 至遼東 延袤萬餘里]”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진시황이 중원을 통일한 해에 쌓은 장성의 동북쪽 끝이 요동이라는 뜻입니다.

▲ 진개 침입 이후 연장성과 행정구역. 자료출처: 《신주사기》5권 <진시황본기>

임조는 현재의 감숙성甘肅省 정서시定西市의 민현을 뜻합니다. 현재의 요하 동쪽을 뜻하는 현재의 요동을 기준으로 삼아도 만리장성의 동북쪽 끝을 황해도 수안이나 평양이라는 한중일 학계 일부의 주장은 논거를 잃습니다.

《수경주》 <하수주>에는 “진시황이 태자 부소와 몽염에게 장성을 쌓게 했는데 임조에서 시작해서 갈석까지 이르렀다[始皇令太子扶蘇與蒙恬築長城起自臨洮至于碣石]”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기》의 요동이 《수경주》에는 갈석으로 기록되어 있어서 고대의 요동은 갈석산 일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때의 갈석산은 현재의 하북성 창려昌黎 북부에 있었습니다. 갈석이 산동성 빈주濱州시 무체無棣현의 갈석산이란 주장도 있는데 이 경우 고조선 강역은 산동반도까지 이릅니다.

한漢나라 유안劉安이 기록한 《회남자》 <시칙훈時則訓>에는 “동방의 끝은 갈석산에서부터 조선을 지나[東方之極, 自碣石過朝鮮]”라고 기록하고 있어서 한나라와 고조선의 국경이 갈석산이었음을 명백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나라가 위만조선을 무너뜨리고 세운 한사군漢四郡 역시 한반도 북부가 아니라 갈석산 부근에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가 발간한 <신주사기>. <사기>에 붙어 있는 주석까지 풀어서 냈다는 점에서 기존의 <사기> 번역서와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주석 풀이를 통해서 <사기>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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