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세력이 국민감정 조작해 만든 지역감정을 극복해야 성숙한 사회로 갈 수 있다.

 

글: 한설(육군예비역 준장, 국립순천대학교 초빙교수)

 

정치인들의 국민감정 조작이 망국의 지역감정 불러와

영남과 호남은 원래 조선시대 남인으로 동지적 관계

일제가 만들고 박정희가 정치탐욕을 위해 골 깊게 파

호남은 일제침략 투쟁의 훈장으로 생긴 것임을 알아야

최근에는 친문들이 영남 혐오감정을 만들어내고 있어

 

▲김대중(왼쪽)과 박정희(오른쪽). 박정희는 김대중을 정적으로 몰아 일본에서 바다에 수장시켜 죽이려고 했다. 왼쪽 김대중은 살해되기 직전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뒤 언론에 드러낸 모습이다.

지역감정의 기원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우리가 영원하다고 믿고 있는 우주도 결국 태어나고 자라고 늙어서 소멸해가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매우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과 그러지 않은 것은 있는 법이다.

이성적 판단의 기준도 불변의 것은 아니다. 사회정치적 상황에 따라 평가의 기준이 바뀌기도 한다. 그러나 감정보다는 지속적인 것은 사실이다.

심사숙고하고 주변의 여러 상황을 고려한 이성적 판단과 달리 감정적 반응은 매우 휘발성이 강하다.

쉽게 만들수 있고 쉽게 방향을 바꾼다. 그러다 보니 정치인들은 그런 감정들을 조작해서 자신들이 유리하게 이용해 왔다. 백성들은 속적없이 당하기만 한다.

지금은 영남과 호남의 지역감정이 문제이지만 그것은 1970년대 중반이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영남과 호남은 조선시대 남인세력의 중심지로서 300여년이 넘는 동지적 관계였다. 그러던 것이 박정희가 장기집권을 획책하면서 지역감정을 조작했고 지금껏 문제가 되고 있다.

이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남북통일도 불가능하다. 동서화합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남북통일을 이야기한다는 말인가?

옛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호남에대한 악감정은 일제시대에 만들어진듯 하다. 일제강점기에 호남은 가장 많은 착취를 당해왔다.

그러다 보니 쟁의가 많았고 일제관리들은 호남을 불령선인들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일제강점기에 호남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지역감정은 서울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일제의 통치수단이었던 것이다.

특히 서울지역에서 호남을 매우 싫어하는 감정이 만들어졌다. 일제는 자신의 통치를 가장 극렬하게 저항하는 호남을 혐오하는 감정을 만들었던 것이다.

박정희는 그것을 교묘하게 이용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일제강점기의 통치방법과 박정희의 통치 방법은 유사하다.

호남사람들은 자신들이 이유없이 미움을 받는 이유도 잘모르는 것 같다. 그들은 자신들을 혐오하는 감정의 뿌리가 일제강점기에 끝임없이 저항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자격이 있다.

그리고 영호남이 사실은 수백년간의 정신적 이념적 동지였다는 것도 잊어버리지 않아야 한다. 영남사람들이 호남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감정도 불과 수십년전의 박정희 정권이 만들어낸 사악한 음모라는 것을 잊어버려서는 안된다.

요즘은 서서히 대구 경북지역에 대한 혐오의 감정이 조성되고 있는 것 같다. 주로 친문세력들에 의해 조장되고 있다.

아마도 대구경북지역의 수구적 태도 때문일 것이다. 박정희가 권력을 잡기 위해 호남에 대한 적대감정을 이용했듯이, 친문세력들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대구경북에 대한 혐오감정을 이용하려 하는 것 같다. 거기에 놀아나면 안된다.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서울과 평양간의 지역감정이 극심했다고 한다.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던 것이다. 왜 그런 감정이 생겼는지는 알 수 없다.

일제는 불온한 세력을 통제하기 위해 호남을 백안시하는 한편, 서울과 평양지역의 서로 미워하는 감정을 치유하고자 했다.

서울과 평양의 축구대회도 그런 연유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마치 한일전과 같이 경평전이 열렸다고 한다.

서울과 평양의 대립이 얼마나 심했는지 도산 안창호 선생이 만해 한용운 선생에게 독립을 하면 평양사람이 권력을 잡아야 한다고 다짐할 정도였다고 한다.

만해 한용운 선생은 그 말을 듣고 평생 도산 안창호 선생을 다시 보지 않았다고 한다. 만해 한용운 선생은 충청도 출신으로 조선시대 내내 가장 핵심적인 지역에 있었으니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말 이면에 어떤 감정이 있었는지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김종필의 충청도 핫바지론은 허구다. 충청도는 조선시대 내내 권력의 핵심이었다.

충청도 사람들이 속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것을 마치 충청도가 오랫동안 변방이었기 때문이라고 하기도 한다. 전혀 그렇지 않다. 충청도는 항상 권력의 핵심지역이었다.

기호지방과 관서지방의 지역감정도 조선왕조의 통치전략이 아니었던가 한다. 평양감사의 품계가 다른 지역보다 현저히 낮았다고 하는 것도 무엇인가 이유가 있었으리라.

결국 해방이후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면서 평안도 사람들이 한을 풀었다. 이승만도 평양사람이었다.

이북에는 평안도와 함경도간의 지역감정이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무슨 연유인지 알 수 없다. 지금은 어떤지 알 수 없다.

최근 미국이 중국에 대한 혐오감정을 만들어가려고 하는 것 같다. 마치 나찌가 유태인에 대한 혐오감정을 증폭시킨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미국의 이런 태도의 배경에 트럼프가 재선을 위한 치졸한 전술이라고 분석하는 것 같다.

그런 것이 아닌 것 같다. 미중패권 경쟁의 일환으로 국제사회에서 중국을 몰아내기 위해 나름 고민한 전술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의 가장 취약한 부분에 대한 공격인 것이다.

바야흐로 국제사회에도 지역감정을 동원하는 형국이 되었다. 갈때까지 다간 느낌이다.

국가간의 혐오감정이든 국가내의 지역감정이든 그것은 대부분 정치적으로 조작된 것들이다. 거기에 놀아나면 모든 것이 다 망조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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