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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단고기> 실사성 다시 증명되다고대판 조선총독부 임나일본부의 임나는 대마도에 있었다.
오종홍 기자 | 승인 2020.04.16 05:11

 

 

<한단고기> 고구려 본기 임나의 삼가라 현재 대마도에 존재

좌호, 인위, 계지 임나 삼가라 현재 대마도 지명으로 돼 있어

토왜사학이 말하는 안라국도 일본열도 아소산 남쪽에 존재

 

▲조선개국 4353.02.25.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에서 윤창열 대전대학 교수가 학술대회 토론을 이어가면서 <한단고기> 실사성을 알리는 증거를 내놨다.

한국고대사학회를 비롯한 제도권 강단주류 식민사학계는 <한단고기> 위서론을 맹렬하게 퍼뜨리고 있다.

군사독재정권시절에 만들어 졌고, 군사독재정권은 민족을 강조하고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 정권을 정당화할 목적으로 활용했다고 한다. 단군은 군사독재정권이 활용한 대표사례에 해당할 것이다.

군사독재정권은 인권을 탄압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한 원흉으로 각인돼 있다. 군사독재정권이 한 것은 모두 악이라고 세뇌됐다. 잘못됐다는 고정관념이 무의식에 파고들었다.

우리 역사도 조금만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해석하려고 하면 국수주의니, 국뽕이니 하며 비난, 조롱을 받는 분위기다. 군사정권이 정권 정당화를 위해 만들어낸 역사라는 것이다. 또 세계화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고 당연히 지양해야 되는 것으로 각인돼 있다. 불문률처럼 됐다.

우리 민족 고유의 사상과 철학 역사를 알려주는 고전, <한단고기>도 마치 보아서는 안되는 독극물처럼 끝없이 매도되고 있다. 금서, 불온서적 취급을 받고 있다.

우리 고유 정신과 사상, 역사를 매도하는 세력을 보면 대부분 서양 가치관, 역사관에 물들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광복 후 우리 학문이라는 것이 거의 서양 학문을 일방적으로 수입해서 주입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도 된다.

거기다가 중화사대주의 세계관과 일제침략기를 거치면서 일본학문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우리는 현재 서양, 중국, 일본의 이중, 삼중의 외세학문에 짓눌려 있는 형국이다.

우리 사상, 철학, 역사는 삼중고에 시달리며 거의 질식 상태에 있다. 질식 상태에서 소생가능케 해주는 고전 중의 대표가 12권으로 묶여 있는 <한단고기>다.

기득권 학문세력은 <한단고기>를 없애려고 혈안이 돼 있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한단고기> 실제 역사성이 끊임없이 증명되고 있다.

조선개국 4353.02.25. 서울 마포구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의 가야본성 전시회 비판’ 학술대회가 있었다.

원래는 서울 시청 인근 한국기자회관(프레스센터) 대회의장에서 대대적으로 열릴 예정이었다. 돌림병19(코로나19) 창궐로 취소되고 대신 핵심 관계자들만이 참여해 대회를 열었다. 이덕일 역사tv로 학술대회를 생중계하여 참석하지 못한 시민들을 배려했다.

이날 이찬구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 사무국장이 광개토태왕비문 신묘년조 해석을 주제로 주제 발표를 했다.

토론자로 나선 대전대학교 윤창열 교수가 토론을 하면서 <한단고기>의 실사성을 다시 한 번 알렸다.

임나일본부설이라는 것이 있다. 고대시기에 일본 야마토 왜가 우리나라 남부에 임나일본부라는 식민통치기관을 설치해 지배했다는 것이 골자다.

일제식민사관의 전형이다. 임나가 경상남도 김해, 함안 일대에 있었다는 것이 이 설의 핵심이다. 국내 제도권 식민사학계가 이설을 따른다. 한국고대사학회가 대표 집단이다.

윤창렬 교수는 이날 제도권 식민사학계의 주장을 반박하며 임나는 대마도에 있었다고 일갈했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한단고기> 고구려본기에 임나가 나오는데 대마도라고 한다. 대마도의 두 섬이 임나의 통제를 받게 됐고 이 때부터 대마도 전체를 가리키는 이름이 됐다. 이어 임나가 또 나뉘어 삼가라라고 되었는데 ‘가라’는 수읍首邑이라는 뜻을 나타낸다.

삼가라의 임금이 서로 싸웠으나 화해하지 못하고 좌호가라는 신라에, 인위가라는 고구려에 속하고 계지가라는 백제에 속하였다.

윤 교수는 자신이 직접 대마도를 가봤는데 현재도 좌호, 인위, 계지라는 지명을 쓰고 있다고 놀라워했다.

<한단고기>가 얼마나 정확한지 알려주는 대목이다. 이어 <한단고기> 고구려국 본기에는 광개토태왕이 영락 10년, 서기 4백년에 모두 고구려에 귀속시켰다고 한다.

이때부터 바다와 육지의 왜인을 임나가 통제하여 10국으로 나누어 다스리며 연정을 폈다고 한다. <일본서기>에는 임나 10국의 구체적인 명칭이 나온다.

한편 이날 광개토태왕 비문과 관련하여 일제가 어떻게 날조했는지 새롭게 조명됐다. 윤창열 교수에 따르면 계연수본 비문탁본이 있는데 1898년 본과 1912년본이 있다.

왜에 관한 부분이 1898년 본과 1912년 본이 확연이 다르다. 뒤 탁본에는 왜 관한 부분이 모두 삭제되고 없다.

앞에 것을 ‘징실徵實’고본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일제가 마멸하기전 광개토태왕의 활약이 나와있다. 섭적이월躡跡而越 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도망가는 왜의 발자취를 밟아 바다를 건넜다는 뜻이다.

이어서 “바다를 건너 협공하면서 왜의 등 뒤로부터 급히 추격하여 임나가라의 종발성에 이르렀다” 고 한다. 이는 임나가라는 일본열도에 있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안라국도 임나위치와 연관되어 있어 위치가 중요하다. 이 안라국도 강단식민사학은 전부 경남 함안이라고 한다. <한단고기> 고구려국 본기를 보면 위치를 알 수 있다.

고구려 창업자의 하나인 협보가 일본에 상륙해서 다파라국을 세운다. 그게 다라국이다. 그 옆에 안라국이 있는데 동성이라고 하며 아소산 밑에 있었다.

이 협보가 세운 다라국은 그 사람들이 홀본(졸본)에서 이주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이는 고구려 건국시기부터 교류를 해 왔음을 나타낸다.

광개토태왕이 일본을 정벌한 뒤에 먼저 이주해 간 고구려 안라국 사람들을 모두 수명을 세우게 했는데 이런 이유가 있었다.

윤창열 교수는 자신이 이와 관련해 논문을 써서 증명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한단고기>는 사료가치가 계속해서 증명되고 있다는 증언이었다. 

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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