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머리역사복원 첫걸음은 한사군 위치를 찾는 것이다.

글: 신종근(역사연구가, 의사)

 

 

<한서> 가연지 열전, 

<한서>, <후한서> 낙랑군의 열구현 위치는

중국 한나라가 위만조선을 멸하고 설치했다는

한사군은 중국 하북성 갈석선 인근이라고 증거

 

▲중국의 모든 1차사료는 중국 한나라 식민기관 한사군은, 현재 중국 하북성 갈석산 인근에 있었다고 나온다. 고대의 요동, 현재 갈석산 위치 <고조선의 대륙의 지배자였다> ⓒ 

한사군(漢四郡)은 북한에 있었나? 고대 요동(遼東)에 있었나?

두 번째 이야기

한사군의 위치에 대해 중국 동북공정 및 일본 극우파와 남한 강단사학은 모두 북한지역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서기전 108년에 설치한 낙랑군(樂浪郡) 및 한사군의 위치가 중요한 것은 고조선 강역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한사군(漢四郡) 중에서 중심인 낙랑군의 위치를 알면 나머지 3군도 그 부근에 있었기 때문에 대략 파악할 수 있다.

낙랑군의 위치를 알려면 낙랑군이 존재했던 당시에 쓰여진 1차 사료(史料)나 그 사료를 보고 쓴 고대 사료를 근거로 판단해야 한다.

낙랑군의 위치에 대한 중국의 1차 사료를 일부 살펴보자.

2. 《한서(漢書)》 〈가연지열전(賈捐之列傳)>

《한서》〈가연지열전〉에는 “(한나라 강역이)동쪽으로는 갈석을 지나 현도, 낙랑으로써 군을 삼았다(東過碣石以玄菟、樂浪為郡)"라고 말하고 있다.

한(漢)나라에서 상서령(尙書令)을 역임한 가연지(賈捐之:?~서기전 43년)는 낙랑군 설치 후 50여년 후의 인물이다.

갈석산(碣石山) 부근에 낙랑군과 현도군이 있었다는 뜻인데, 한(漢)나라 때 갈석산은 현재 중국 하북성 창려현에 있다.

갈석산은 진시황(秦始皇)을 비롯해서 한 무제(漢武帝), 조조(曹操)까지 9명의 황제가 올랐다고 해서 ‘9등(九登)황제산’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산이다.

3.《한서漢書》 및 《후한서後漢書》의 낙랑군 열구현(列口縣)의 위치

낙랑군은 지금으로 치면 도(道) 단위의 행정구역으로서 산하에 약 25개의 속현(屬縣)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열구현(列口縣)인데, 《후한서》〈군국지郡國志〉에는 “곽박이 《산해경》 주석에서 말하기를, ‘열은 강이름이다. 열수는 요동에 있다’〔列口(郭璞注山海經曰, “列, 水名, 列水在遼東”)〕라고 말했다고 적고 있다.

열구(列口)는 열수(列水)라는 강의 하구에 있어서 붙은 이름인데, 그 열수가 고대 요동(遼東)에 있었다는 뜻이다.

《한서》는 반고(班固:서기 32년~서기92년)가 지은 전한(前漢:서기전 302년~서기 220년)의 역사서이고, 《후한서》는 남조(南朝) 송(宋:420~479)의 범엽(范曄:398~445)이 지은 후한(後漢:서기 25년~220년)의 역사서이다.

그런데 이 역사서들은 모두 낙랑군이 평양이 아니라 갈석산 부근에 있으며, 낙랑군 열구현이 고대 요동(遼東)에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출처:
1. 미국 LA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에 근무하는 교수, 교사, 교민들과 함께한 '21세기 동아시아 역사 전쟁과 한국'이라는 주제 발표 자료. 2019.11
2.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이덕일.김병기, 2006, 역사의 아침.

▲ 갈석산에는 진시황(秦始皇), 한무제(漢武帝), 위(魏)나라 조조(曹操), 북위(北魏) 문성제(文成帝), 북제(北齊) 문선제(文宣帝), 수양제(隋楊帝), 당태종(唐太宗) 등 중국의 9황제가 올랐다고 한다.

 

저작권자 ©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