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 일제 황국사관 극복해야 일본을 넘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가야본성 전시회, 일본극우파 선전장 이유 있어

상고대사 전시관은 일본 박물관 상고대사 전시관 옮겨 놓은 듯

일본 구주 이도국 박물관 원삼국시대, 삼국 4세기에 건국 기술

 

▲일본 구주 후쿠오카 이도국 박물관에 전시된 전시물 설명부분. 원삼국시대와 삼국시대를 서기로 표시하고 있다. 원삼국시대는 서기전 1세기에서 서기 3세기라고 쓰고 있다. 삼국은 서기 4세기 부터 시작했다고 쓰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식민사학계가 정확히 이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학설은 스스로 연구해서 창안해 낸 것이 아니라, 일본제국주의 극우파 설을 그대로 갖다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기 2017.08.03. 일본 구주를 중심으로 시모노세키 지역을 4박 5일 동안 답사했다. 두번째날 8월 4일 후쿠오카현 이토시마시에 있는 이도국 박물관에 갔다. 

박물관은 중국 <삼국지> 위지 동이전, 왜국 조에 나오는 이도국을 소개하고 있었다. 이도국으로 설정한 이토시마(絲島)시에서 나온 유물을 전시하고 있었다. 

 입구에는 구주 후쿠오카현 이토시마시의 이도국 시기 일본과 우리나라 상황을 그려놓고 있었다. 이도국을  중국 <삼국지>에서 따 온 것이라 그런지 이 시기를 서기3~4세기로 설정해 놨다.  

이 시기는 조선총독부 황국사관에 따르면 우리나라 평양을 중심으로 중국 한나라 식민기관 낙랑군이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박물관 입구에 그려진 지도에 낙랑군이 표시돼 있었다. 황해도에는 또 다른 중국 식민기관 대방군이 보였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왜조의 사료까지 친절하게 아래에 붙여놓고 이도국이라고 써 있는 곳은 빨강색으로 표시해 놨다. 

전시관으로 들어갔다. 석기시대부터 시작됐다. 고인돌부터 청동기, 철기, 그리고 최근의 물건까지 전시해 이도국과 현재까지 역사를 설명했다. 

그런데 전시된 유물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마치 우리 어느 박물관에 온 느낌이었다. 토기에서 부터 청동기에 이르기 까지 우리 박물관에서 옮겨 놓은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청동검, 청동거울, 곡옥, 귀면와, 세발 그릇 등 우리나라 박물관에서 보던 것 그대로 였다. 

문제는 유물들에 대한 설명이었다. 특히 낙랑군시기에 전시된 유물은 중국 아니면 일본에 초점을 맞추었다. 우리 것이 건너 왔음에도 우리 역사는 없었다. 

특히 낙랑군을 강조하며 마한, 진한, 변한 등 소위 원삼국시대 토기들이 낙랑군의 영향하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설명해 놨다. 이어 삼국시대 것들은 삼한의 것을 이어 받았다고 써 놓고 있었다. 

결국 중국 식민지 낙랑군의 선진문물이 삼한에 영향을 주었고 이것에 힘입어 고구려, 백제, 신라가 일어설 수 있었다는 논리다. 

중국 등 외부의 우수한 문물이 아니고서는 우리역사는 정체될 수 밖에 없다는 정체성론, 밖에서 들어온 것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타율성론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조선총독부 일제식민관의 전형이다.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 상고대사 전시관도 이것과 다르지 않다. 고조선시대는 고조선이라는 말과 건국년대만 써 있고 이어지는 시기에는 중국 한나라 식민기관, 낙랑군을 끼워 넣고 있다. 

지도에도 일본 이도국 박물관 입구에 그려놓은 것과 똑 같이 낙랑군을 그려놓고 있다. 아래는 사진 자료를 통해서 비교해 본 것이다. 

 

▲ 국립중앙박물관 상고대사 전시관에 걸려 있는 반도사관에 입각해 그려 놓은 우리 역사 흐름도. 부여, 옥저, 동예 등 우리역사에 특별히 강조하여 서기전 108~313년 까지 낙랑군이 존재했다고 써 놓고 있다. 

위 사진은 국립중앙박물관 상고대사 입구에 그려놓은 우리역사 진행도다. 부여, 동예, 옥저를 나란히 적어 놓고 있지만 시말이 없다.

낙랑군만 서기108~313년까지라고 정확히 써놓고 있다.  이것은 북한 평양을 중심으로 설치됐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중국인 정권 낙랑군이 무려 4백년이 넘게 낙랑군 모국, 한나라는 물론 이후 수 많은 나라가 명멸했음에도 낙랑군은 건재했다는 얘기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여러나라가 생겨났다. 그럼에도 낙랑군만 얼마나 강했는지 부여, 고구려, 백제 등 우리나라 강력한 고대국가들이 주변에 있었음에도 독립군으로 남아 있다.

식민사학자들은 거꾸로 이 낙랑군의 우수한 선진문물이 고구려와 백제, 신라에 영향을 주어 삼국의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고 한다. 

▲시민들이 조선총독부 반도사관으로 그려놓은 낙랑군 표기 지도 앞에서 호기심을 드러내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 국립중앙 박물관 상고대사 입구에 걸려 있는 우리 상고대사지도. 국사책에 나오는 고조선 형세도 같은 것은 보이지 않고 중국식민지 지배역사를 알려주는 낙랑군, 대방군 지도가 등장한다.

위 지도는 일본 이도국 박물관 입구에 그려져 있는 지도와 똑 같다. 우리나라 북쪽은 중국식민지, 낙랑군과 대방군이 다스렸고, 남부지방에는 곧 들어설 일본 야마토 왜의 남한식민통치기관, 임나일본부를 위한 멍석을 깔고 있다.  마한, 진한, 변한이다. 삼한이라는 촌락국가 수준의 세력이 들어서 있다. 

 

▲ 이도국 박물관 입구에 걸려 있는 이도국과 우리강토 형세도. 북한 평양과 아래 황해도에 낙랑군과 대방군이 있다.

일본은 이도국을 중심에 놓고 설명하면서 당시 우리강토에는 중국 한나라 식민기관 낙랑군과 대방군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국립중앙박물관이 먼저 발명한 것일까,  이도국 박물관이 먼저 개발한 것일까. 누가 먼저일까.  일본이 먼저다.

일본은 서기19세기 말 우리나라를 침략하면서 '대일본제국' 황국사관에 따라 우리나라를 보호국으로 설정하고 우리나라는 외세의 지배를 받아야 발전할 수 있다는 식민사관을 만들어 이렇게 지리를 비정해 놓았다. 

△ 이도국 박물관 낙랑군편에 그려놓은 지도 모습. 이도국시기 3세기 동아시아 형세도라고 한다. 중국 한나라가 북한 평양에 낙랑군을 설치했다고 표시해 놓고 있다. 이하 지방도 식민사관에 따라 간략하게 그려놓고 있다.

이 지도에서 보이는 특징은 식민사관의 하나인 이른바 '교량론'도 등장한다. 일본 극우파는 우리나라의 고유선진문물이 일본에 건너간 적이 결코 없다는 태도를 보인다.

모두 중국 것인데 우리나라는 단지 거쳐가는 곳, 중국 선진문물을 전달해 주는 다리 역할을 했을 뿐이라고 한다.

이런 태도는 국내 식민사학계도 같다. 김현구 전 고려대 교수는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에서 이 교량론을 펼치고 있다. 

조선총독부 일본제국주의 식민사관이 역사학은 물론이고 전국의 국립박물관까지 점령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박물관은 한국고고학회와 각종 발굴단체가 지배하는데 고고학도 제국신민의 식민고고학임이 드러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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