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에 배달겨레의 시조, 한웅천왕을 맞이하는 대보름 굿을 활성화 해야 한다.

 

원래 대보름날에는 마을 어귀의 당산나무에서 제를 올리고,

당산나무에 내려오신 한웅천왕을 맞이하여 제물을 차려 놓고,

풍장을 치면서 굿을 올리며 한웅천왕을 마을 집집마다 모셔서

액을 없애고 복을 기원하며 한해가 잘 돌아가도록 비는 잔치날

 

▲서기2018.02.24. 풍물굿패, '한풀'에서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 4호선 전철역 4번 출구에 있는 나무 아래서 정월대보름 굿을 올리고 있다. 오른족 나무가 한웅천왕이 내려오는 당산나무=신단수다. 간소하게 제물을 차려놓고 있다. 신성한 공간임을 나타내는 령기가 제단 앞에서 버티고 서있다. 액이나 잡 것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키는 역할을 한다.

조선개국4353.02.08. 은 정월 대보름날이다. 대형상점이나 작은 상점이나 대보름날에 먹는 각종 반찬거리나 먹을 거리를 팔고 있다. 호두나, 각종 말린 나물을 팔고 있는 것이 보인다.

급격한 산업사회로 접어 들면서 우리 정체성을 나타내는 고유풍습이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미신 또는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에 거추장스럽다는 이유로 대부분 사라져 갔다.

여전히 상점에서 대보름날 해먹던 나물류를 파는 것을 보면 우리 고유 정체성을 대변하는 대보름 풍습이 아주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도 대도시인 서울에서 말이다.

대보름날 잔치에는 아득한 역사가 스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보름 날 가장 먼저 찾아가는 곳은 마을을 지켜주고 액을 내쫒으며 마을 공동체의 안녕을 비는 신성한 공간인 당산나무다. 

통상 서기1980년대 까지 웬만한 시골 마을에서는 정월 대보름 굿을 했다. 정교하게 차려입은 제복이나 악기를 모두 갖추지는 않았더라도, 당산나무 아래서 제물을 차려놓고 풍장을 치며 당산나무에 신이 내리길 빈다.

이 신은 누구일까. 역사를 추적해 보면 이 신의 원형은  하늘에 있는 한웅천왕이다.  <일연의 삼성기(삼국유사)> 고조선기에는 한웅천왕이 인간세계를 구원하고자 인간의 땅에 내려온다.

이에 아버지 한인이 그 뜻을 알고 삼위, 태백 중에 태백을 홍익인간할 만한 곳으로 보고 한웅천왕에게 천부인 3개를 주어 내려 보냈다. 한웅천왕은 무리 3천을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로 내려온다.

이곳을 신시라고 하고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곡식, 목숨, 형벌, 질병, 선악 등 인간의 366여사를 하나 하나 다스린다. 한알님의 섭리로 인간세상을 교화시켰다고 한다.

대보름 날 행하는 당산 굿과 이후의 잔치는 이 기사를 그대로 다시 밝히는 아득한 역사성을 갖고 있다.

당산나무는 신단수다.  당산나무에 내리는 신은 한웅천왕이다. 제를 올리고 이후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천지가 진동하도록 풍장을 치며 액을 내 쫓고 복을 빌어준다. 

이는 한웅천왕이 내려와 신시를 열고 366여사로 상징되는 인간의 모든 일을 돌봐주고 다스려 재세이화하는 것과 같다.

이 때 각 집에서는 술과 떡 등 푸짐한 음식을 내놓는다. 어렸을 때 기억을 더듬어 보면 풍물놀이 패가 들어와서 놀아 주는 동안 쌀 한 되박을 내놓기도 한다. 충남 보령시 웅천읍 성동리 내성에서는 주로 아주머니 등 여성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풍장을 두드렸다. . 

이를 '지신밟기'라고도 한다. 추운 겨울을 지나면서 마당이 얼고 녹고를 반복하면서 물러졌고 푸석푸석해 진 땅을 단단하게 밟아 준다. 땅에서 올라오는 나쁜 기운을 잘근 잘근 밟아 다져준다는 뜻도 있다.

정월 대보름은 여성의 날로 부르기도 한다. 음력 대보름이기 때문에 달이 들어있다. 해가 양인 남성을 나타내는 반면 달은 음인 여성을 상징한다.  정월 초하루, 설날보다 이 대보름 날이 더 풍성하고 각종 놀이가 본격 이어진다.

마을에서는 냉장고, TV 등 당시 비싼 물건까지 경품으로 내걸고 윳놀이로 벌였다. 또 동네 아이들은 불깡통을 들로 나가 돌렸다. 옆동네 아이들과 불깡통 돌려 던지는 패 싸움을 벌이는 것이 대보름날 년래 행사였다.

또 오곡밥을 지어 먹고 먹기 전에는 집 앞 입구에 '고시레'라고 하며 따로 떼어서 나물밥을 정성스럽게 놨다.

모든 것이 한웅천왕이 신단수에 내려 공동체를 신시神市로 만들 만큼 지상천국, 지상낙원인 재세이화를 해준 것을 축하하고 한웅천왕의 덕을 기리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일연의 삼성기> 외에 보다 자세하게 대보름날 당산굿을 올리고 잔치를 벌이는 행위를 담고 있는 기록은 없을까.

<한단고기> 단군세기, 제16세 위나 단군 재위58년 조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무술 28년(서기전 1583년) 구한의 여러 칸(khan)들을 영고탑에 모여 삼신상제에게 제를 올리게 했다. 한인, 한웅, 치우 및 단군왕검을 모셨다. 5일 동안 크게 백성과 함께 잔치를 베풀었다. 불을 밝혀 밤을 지새며, 경을 노래하고 마당밟기를 했다."

위나 단군이 우리 역사의 조상신들에게 제를 올리고 축하며 기리는 잔치를 5일간 했다고 한다. 그 내용 중에 마당밟기라는 말이 나온다. 앞서 언급한 지신밟기의 다른 말이다. 원문에는 답정踏庭이라고 나온다.

단순히 마당을 밟기만 한 것이 아니라 '창경唱經'을 같이 했다고 한다. 어떤 경전을 노래하며 마당을 밟았다는 것이다. 또 경전을 무미건조하게 노래했다기 보다는 악기 장단이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지금의 당산제에서 울려퍼지는 풍물장단일 가능성이 크다.

인간은 사라지고 신의 마당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번뇌로 들끓는 인간 내면을 아무생각이 나지 않게 천지가 진동하는 풍물장단이 동원됐을 것이다.

대보름날 잔치는 여성의 날로 남성의 날인 설날을 압도하고 남는다. 한해는 실제로 이 날 부터 시작된다. 남성이 아닌 여성이 새날을 여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시 배달국, 한웅천왕의 역사는 이렇게 우리 풍습 속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고 있다. 이 역사는 무려 신시개천 5917년이다.

그렇다면 우리 반쪽, 북조선은 대보름을 어떻게 보낼까. 공산주의 이념으로 나라를 연 북조선은 대보름날을 미신으로 내친 것은 아닐까.

한 탈북주민이 전하는 북조선의 대보름 잔치는 존재한다. 기리고 누리고 있다. 그는 홍강철인데 그에 따르면 북조선에서도 '정월대보름'이라고 부르며, 9가지 오곡밥을 해먹고 나물 반찬을 해 먹으며 명태국을 먹는다고 한다. 

또 보름달이 떠오르기 전에 차례제사를 지내고 자기 소원을 빈다고 한다.  함경도가 고향인 이 탈북주민은 우리과 같이 밤새도록 놀았다고 한다.

다른 점도 있다. 특이 하게도 설날은 조상님을 불러서 명절을 보내고 정월대보름에는 놀러오셨던 조상님들을 돌려보내는 제를 지낸다고 한다.

또 닭곰이나 토끼곰을 만들어서 다리밑에 떨어뜨리며 소원을 비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닭곰과 토끼곰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인데 다리 밑에는 이 곰들을 기다리는 살아있는 신령님들이 많이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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