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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국토 4배나 작은 한국에도 밀리는 일본일본은 시대착오 제국주의노선 버리고 한국 품안으로 들어와야 살아남을 수 있다.
이재봉 객원기자 | 승인 2020.01.13 18:53

 

한국은 인구와 땅이 일본의 4분의 1 수준

한국 경제력, 2025년 경 일본을 100% 추월예상

초조한 일본, 제국주의 노선으로 패착 길 고집

미국의 비정상 행패에 중국이용 적극 대항해야

 

▲ 일본은 아베가 집권한 이후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미국의 팽창주의에 편승하여 일본 평화헌법을 고치고 전범기를 달고 미국 작전구역에 참여하여 과거 제국주의 시대로 돌아가려고 한다. 사진은 전범기 앞에서 사열하는 아베신조 일본총리.

새해 경자년 특집 :

한반도 대전환과 위기, 한국의 길 (2)

 

4. 한일분쟁 확산

문재인 정부가 ‘촛불 민심’을 바탕으로 그리고 2017년 대선공약에 따라, 한국과 일본 사이에 2015년 맺어진 위안부협정을 2018년 사실상 파기했다.

대법원은 일제에 징용된 한국인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2018년 판결했다. 아베 일본총리는 2019년 6월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과만 정상회담을 하지 않는 등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7월부터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난과 함께 한국에 수출규제를 비롯한 경제보복을 시작했다. 한국은 민간 차원에서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전개하고, 정부 차원에선 일본과의 군사정보교류협정 (GSOMIA)을 끝내겠다고 맞섰다.

한일갈등이 역사문제와 영토문제에서 경제문제와 군사문제로까지 확산된 것이다. 미국의 중재와 압력으로, 한국이 지소미아 종료결정을 미루고 일본은 수출규제를 완화하는 등 2019년 12월 현재 한일 간의 마찰이 일시적으로 잠복하는 듯하지만, 갈등과 분쟁은 언제든 다시 불거지고 오랫동안 해소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 배경과 과정을 짚어본다.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냉전이 심화하자 미국은 일본과 1951년 안보조약을 맺었다. 1941-45년 일본과 전쟁을 벌일 때는 소련과 연합했지만, 1947년부터 소련과 냉전을 치르면서는 일본과 손잡게 된 것이다.

미국이 일본과 동맹을 맺고 한국까지 끌어들이려 했지만, 한국은 일본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난 지 겨우 6년이 지난 때여서 일본과의 적대관계를 풀기 어려웠다. 미국이 1951년부터 한일협상을 주선하고 개입하며 압력을 행사했지만 이승만의 완고한 반일정책에 막혔다.

이승만이 1960년 사월혁명으로 쫓겨나고 일본군 출신 박정희가 1961년 5.16쿠데타로 정권을 잡자, 미국은 1962년부터 한일협정을 “미국정부의 최고 관심사” 또는 “가장 급선무”로 삼고 한국과 일본을 거세게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박정희 정부는 협상에 적극 응했지만 야당과 대학생들의 저항과 반발이 몹시 컸다. 이런 과정을 거쳐 1965년 타결된 한일협정은 야당과 대학생들의 주장대로 몹시 “민족 반역적이고 굴욕적이며 졸속적”인 것이었다.

첫째, 일본이 35년간의 식민통치에 대한 사과나 배상을 전혀 하지 않았다. 한국에 유상과 무상채권을 포함해 모두 8억 달러를 건넸는데, 식민통치에 대한 배상이나 보상이 아니라 ‘독립 축하’ 및 ‘경제 협력’ 명목이었다.

아직도 일본의 식민통치가 한국의 발전에 도움을 주었다고 주장하는 한국의 정치인, 언론인, 학자들이 적지 않은데, 당시 일본 정치인들이야 오죽했겠는가.

둘째, 독도 영유권, 징용자, 위안부, 원폭 피해자, 약탈 문화재 등에 관한 문제를 모두 덮어버렸다. 독도 문제가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고, 징용자와 위안부 문제 등이 최근 다시 불거지게 된 배경이다.

한일협정이 맺어진 1965년 이후 50년이 흐른 2015년 박근혜 정부가 아베 정부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위안부 협정을 맺었다. 1965년 한일협정에서처럼 일본의 사과는 전혀 없었고, 일본이 10억엔 (약 100억원)을 건네기로 했는데, 배상이나 보상 명목이 아니라 ‘인도적 지원’ 명목이었다.

나중에 문제가 될까봐 위안부 문제를 마지막으로 그리고 되돌릴 수 없이 해결한다고 선언하고, 앞으로 유엔이나 국제사회에서 이를 빌미로 비난이나 비판을 자제하자고 합의한 것이다.

반세기가 흐른 뒤에 이렇게 또다시 “민족 반역적이고 굴욕적이며 졸속적”인 한일협정이 되풀이된 것은 여전히 미국의 압력 때문이었다.

급속도로 떠오르는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해서다. 미국이 2015년 일본과 방위협력지침을 다시 개정하고 2016년 일본 안보법제를 개정하도록 이끌며 미일동맹을 강화하자, 중국은 러시아와 손잡고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을 벌이는 등 군사협력을 강화했다.

이런 배경과 과정에서 미국은 다시 한국+미국+일본의 삼각공조를 강화하기 위해 한국에 압력을 행사했다.

독도 문제나 위안부 문제 등 껄끄러운 문제를 털어버리고 일본과 협력을 강화해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는 데 적극 동참하라는 것이었다. 크게 세 가지가 추진되었다.

첫째, 앞에서 얘기한대로 2015년 한국과 일본 사이에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위안부 협정이 맺어졌다.

둘째, 2016년 미국과 한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망 (THAAD) 배치를 발표했다. 겉으로는 북한을 겨냥한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중국을 봉쇄하기 위해서다. 셋째, 2016년 한국과 일본 사이에 군사정보보호협정이 체결되었다. 이 모두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한 미국의 전략에 따른 것이었다.

참고로,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후보 시절, “위안부 피해자들이 인정하고 국민이 동의할 수 있는 수준의 합의”를 이끌어내겠다고 공약했다. 군사정보보호협정의 효용성을 검토하고 연장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도 대선 공약에 포함했다.

그런데 아베가 경제보복을 시작한 데는 위안부와 징용 문제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그의 불만과 분노 섞인 도발엔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반감과 증오뿐만 아니라 중국에게 추월당한 충격과 좌절, 한국에게도 추격당할지 모를 불안과 경계, 그리고 북한 및 한반도 평화 문제에서 소외당하는 두려움과 초조함이 곁들여져 있지 않을까.

일본은 1970년대부터 독일을 제치고 세계 제2의 경제대국 지위를 지켜오다 2010년 중국에 추월당했다.

1945년까지 일본에 짓밟혔던 중국이 1964년 핵무기 보유국이 되고 1971년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까지 된 터에, 경제적으로도 국내총생산과 무역 규모에서 일본을 앞질러버린 것이다.

핵무기도 갖지 못하고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꿈도 이루지 못해 군사력으로나 외교력으로 중국에 밀리던 일본이 경제력에서도 뒤지게 되면서 얼마나 크게 충격 받고 좌절했겠는가.

한국에도 쫓기는 상황이다. 1965년 한일수교 당시 한국경제는 일본의 1/30 또는 3% 수준이었지만, 50여년이 흐른 2018년엔 1/3 또는 30% 수준이 되었다. 일본 인구가 한국보다 2.5배 정도 많기에, 1인당 GDP는 거의 맞먹는다.

한국의 1인당 GDP는 1990년까지 일본의 40% 이하였지만, 2015년엔 90%였고, 2020년엔 95%, 2025년엔 100%로 따라 잡으리라 전망된다.

과거엔 한국에서나 세계에서나 일본의 소니와 파나소닉이 전자제품의 상징이었지만, 이젠 한국의 삼성과 LG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쫓기는 미국이 추월하려는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듯, ‘흔들리는 일본’이 의존국에서 경쟁국으로 성장한 한국을 경계하기 위해 보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덧붙여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으로 시작된 한반도 대전환 시대에 남북한 및 주변 4강대국 중에서 일본만 소외되었다. 북

한을 중심으로 다양하고 활발하게 정상회담이 열리면서 김정은은 문재인과 3회, 트럼프와 3회, 시진핑과 4회, 푸틴과 1회 만났다. 아베와는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아베의 요구에도 매몰차게 거절한 것이다. 나아가 남북관계가 진전되면 한반도가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가까운 중국 대륙과 연결될 텐데, 그러면 섬나라 일본은 더욱 고립될 수밖에 없다. 아베가 한미합동 군사훈련 중단을 비난하며 남북관계 진전을 방해하는 배경이리라.

일본은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한중관계 진전에도 훼방 놓을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 반한 또는 혐한 감정을 이용해 경제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한국을 경계하고 견제할 텐데, 한국은 정부 차원에서나 민간 차원에서나 다양한 대책을 슬기롭게 마련하는 게 바람직하다.

 

5. 한미갈등 촉발

한국과 미국 사이엔 2019년 11-12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로 갈등이 불거졌다. 1조원 남짓의 2019년 분담비를 2020년엔 6조원 정도로 5배 올려달라는 미국의 요구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1년 평균 10% 안팎 올렸는데 갑자기 500% 올리라는 것이다. 2019년 9월부터 12월까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5번 협상이 열렸지만 합의를 2020년으로 미루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미국을 규탄하며 거세게 반발했다. 여기서 세 가지를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트럼프의 2016년 대선공약에 관해

한국과 일본이 방위비 분담금을 전적으로 부담하지 않으면 미군을 철수하겠다는 게 트럼프의 대외정책 10대 공약 가운데 하나다.

미국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을 뜬금없이 압박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한국이 3년 전 트럼프 당선 직후부터 대비했어야 할 문제이지 지금 호들갑 떨 일이 아니다.

둘째, 트럼프의 ‘미치광이 협상술’에 관해

그는 교활한 사업가요 유능한 협상가 출신 대통령이다. 대개 10% 늘리던 금액을 100% 올려달라고 요구하면 서로 양보하자며 50% 정도 인상으로 합의하기 쉽다. 한꺼번에 500% 증액하라고 압박하면 줄다리기하다, 200-300% 인상으로 합의할 가능성이 있다. 그게 트럼프의 노림수 아닐까.

이에 “주한미군은 북한의 남침을 막기보다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는 역할과 임무를 맡고 있으니 미국이 기지 사용료까지 내며 머물든지 아니면 철수하라”고 맞서는 한국의 협상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셋째,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에 관해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은 냉전시대에 한반도 평화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극우 세력은 탈냉전시대에도 여전히 한맹동맹 강화와 주한미군 유지를 국가 ‘목표’처럼 간주한다. 한미동맹이 약화하거나 흔들릴까봐 북한과 전쟁을 끝내면 안 된다는 한 국회의원의 반민족적이고 반평화적인 망언까지 들린다.

이제 한미동맹의 필요성과 주한미군의 존재 이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게 바람직하다. 발상의 전환도 좋다.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이 북한을 겨냥하는 것이라면 언제까지 필요할까? 2018년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공동선언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남과 북은 비무장지대를 비롯한 대치 지역에서의 군사적 적대관계 종식을 한반도 전 지역에서의 실질적인 전쟁위험 제거와 근본적인 적대관계 해소로 이어나가기로 하였다.” 이와 같이 “한반도를 항구적인 평화지대로” 만들어 남북 사이에 더 이상 전쟁을 없을 것이라고 한 터에 북한을 겨냥한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이 왜 언제까지 필요할지 의문이다.

중국을 겨냥하는 것이라면 필요하고 바람직할까?

한국과 중국의 경제적 관계는 1992년 국교정상화 이후 눈부시게 발전해왔다. 한중 교역량은 2003년부터 한일 교역량을 넘어섰고, 2004년부터는 한미 교역량을 초과했다. 2009년부터는 한미 및 한일 교역량을 합친 것보다 많아졌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역의 내용이다. 일본에겐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단 한 해도 흑자를 기록해본 적이 없는 가운데 2018년 250억 달러의 적자를 보았다.

미국에겐 1982년부터 흑자를 기록하면서 2018년 140억 달러의 흑자를 냈다. 중국에겐 수교 다음해인 1993년부터 흑자를 기록해온 가운데 2018년 540억 달러의 흑자를 보았다.

세계에서 무역의존도가 가장 높은 나라 가운데 하나인 한국의 전체 교역량 가운데 1/4 이상을 중국이 차지하고, 전체 무역흑자 가운데 60% 이상을 중국에서 거두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을 겨냥해 한국이 미국과 군사동맹을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겠는가.

게다가 미국과 중국은 패권경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미국은 중국을 봉쇄하는 군사정책을 전개하고 중국은 미국의 접근을 거부하는 군사정책으로 맞서며 무력충돌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만에 하나 미국과 중국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중국의 제1폭격 지역과 대상은 중국에서 가장 가까운 미군기지가 있는 평택이 되지 않겠는가. 주한미군 때문에 한국이 전쟁터로 변할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한미동맹 약화나 해체 또는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로 한국의 안보가 불안해질 것을 우려한다면 미국과 중국이 포함되는 동북아시아나 동아시아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

이는 2000년대 초부터 추진되었지만, 미국의 견제와 반대에 부딪혀 진전되지 못했다.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주변 강대국들이 보장하는 한반도 중립화를 구상해볼 수도 있다. 이는 미국이 과거 주한미군 철수를 고려하면서 구상한 정책이기도 하다(끝).

 

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평화학 교수)

약력:

하와이대학교 정치학박사
원광대학교 정치학교수
남이랑북이랑 대표
통일경제포럼 공동대표
함석헌학회 회장

이재봉 객원기자  pbp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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