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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에도 총독부 식민사관 절어 있어일본이 만들어준 역사관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해방독립이다.
오종홍 기자 | 승인 2019.12.10 17:13

 

중국이 춘추전국시대를 구가할 때 우리는 원시시대라는 식민사학계

단군조선시대 상징하는 고인돌 기껏해야 서기전 5세기 것으로 폄하

고인돌, 문화유산 발견하고도 식민사관으로 덧칠하는 국사편찬위원

 

▲서기2019.12.02. 연천군 민통선 지역에서 발견된 고인돌. 국사편찬위원회, 이병주 조사위원이 고인돌을 설명하고 있다. 서기전 5백년 경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자료: 중앙일보 영상 갈무리.

중앙일보는 서기2019.12.10. “연천 민통선은 숨은 ‘고인돌 보고’…‘별자리 고인돌’ 주목” 이라는 제목 하에 경기도 연천군 민통선 안에서 다수의 고인돌과 선돌 등을 발견했다고 단독 보도했다.

기사는 “경기도 연천군 중면 민통선 지역에서 원형이 고스란히 보존된 2500∼2700년 전 이상 된 청동기 시대 무덤인 고인돌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라고 하면서 “남방식 고인돌인 ‘무지석 지석묘(無支石 支石墓: 돌기둥이 없고 바닥에 작은 돌을 깐 고인돌)’가 국내 처음으로 잇따라 확인됐다. 이와 함께 고인돌보다 드물게 발견되는 거대한 자연석으로 만든 ‘선돌’과 곡식을 가는 데 사용한 현무암 ‘연석’, 돌을 부숴 만든 ‘석검’ 등 청동기 시대 유물도 함께 나와 고고학계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라고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아주 귀중한 유물을 발견했다고 하면서 내용은 온통 조선총독부가 심어놓은 식민주의 사관으로 덧칠해 놓고 있다.

“서기2500~2700년 이상 된 청동기시대 무덤인 고인돌”, “남방식 고인돌인 ‘무지석 남방식 고인돌인 ‘무지석 지석묘(無支石 支石墓: 돌기둥이 없고 바닥에 작은 돌을 깐 고인돌)’” 이라고 자랑스럽게 퍼뜨리고 있다.

고인돌하면 생각나는 것이 원시인들이다. 문명화된 역사라기보다는 마을 단위로 살아가는 아득한 시대로 각인되어 있다.

국내서 각종 고인돌 행사를 할 때도 옷도 지어 입지 못하여 동물 가죽을 옷 대용으로 착용한 원시인들이 합력하여 고인돌을  조성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다.

▲이번에 발견된 연천군 민통선 고인돌에는 동그란 구멍이 새겨져 있다. 별자리를 새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료: 중아일보 영상 갈무리.

연천 민통선 고인돌 연대가 2500∼2700년 전 이라고 못을 치고 있다. 이 시대까지 우리는 변변한 문명도 없는 원시시대 수준의 역사였다는 것을 은연중에 심어주고 있다.

당연히 우리역사의 머리인, 단군조선은 존재할 수 없다. 고인돌시대는 나라가 될 만큼 문명이 발달하지 않은 것으로 만들어 놨기 때문이다.

서기전 2500년~2700년이라면 중국에서는 이미 한참 역사시대로 접어든 춘추전국시대다. 제자백가들의 고도로 발달된 철학 사상들이 자웅을 겨루는 시기다.

중국은 이미 제국으로 까지 성장하고 있는 데 우리는 나라조차도 변변히 꾸리지 못하고 있는 미개 원시시대라는 것을 독자들에게 심어주고 있다.

그러니 선진문물인 중화문명을 받아들여 우리가 미개에서 문명으로 개화되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현행 국사교과서가 이런 논리로 구성되어 있다.

기사는 이어 연천지역서 발견된 고인돌이 남방식이라고 쓰고 있다. 소위 남방식이라고 하는 고인돌은 통상 고인돌 뚜껑돌에 다리가 없고 뚜껑이 땅위에 덮여 있는 형태를 말한다.

흔히 바둑판식 고인돌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 널려 있는 고인돌을 남방식, 북방식 고인돌로 부르는데 이는 식민고고학에서 말하는 역사관이다.

세계 고인돌 절반이상이 우리나라에 모여 있다. 특히 전라남도 지방과 황해도, 평남, 평양일대에 집중되어 있다.

규모도 세계최고의 고인돌을 자랑하며, 종류도 세계 어느 곳에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다. 반드시 남방식이라고 하는 바둑판식과 북방식이라고 하는 탁자식 고인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북조선에서는 새로운 형식의 고인돌도 나왔다는 보고도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식민사학과 식민고고학에서는 앞서 보도기사에서처럼 많이 올라가야 2천 7백여 년이다. 서기전 7세기 정도라고 한다.

반면에 같은 형식의 고인돌인데도 북유럽이나 영국, 아일랜드 같은 곳에서는 기본이 4천년을 오르내린다. 이를 가지고 고인돌이 유럽에서 왔다거나 인도나 인도네시아 고인돌을 염두에 두고 남방에서 왔다고 한다.

크기나, 종류, 고인돌 축조의 정밀성 등을 살펴보면 어느 면에서도 우리나라 고인돌이 가장 발달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화는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고 한다. 이런 기본을 무시하고 단순히 연대측정을 해서 오래 되었다고 밖에서 들어왔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다른 나라 학자들은 우리나라가 고인돌의 발상지, 원조라고 한다. 서기2016. 11. 10. 서울한성백제박물관에서 '중국산동의 역사와 문화'를 주제로 고고학 관련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충남대 박순발 교수는 '중국 산동 역사문물과 한국고대사' 주제로 발표했다. 이날 박순발 교수는 고인돌 외래기원설을 주장했다.

이 때 산동성 박물관에서 온 한 학자에게 고인돌이 처음 어디에서 발생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바로 전라도 지역이라고 대답했다.

▲ 연천군 민통선 지역에서 고인돌 외에 선돌까지 발견됐다. 이병주 국사편찬위원회, 조사위원이 선돌옆에 서서 선돌의 의미를 추정하고 있다. 자료: 중앙일보 영상 갈무리.

고인돌을 남방식, 북방식으로 나눈 의도가 있다. 우리는 역사를 자주적, 주체적, 독립적으로 이끌지 못하고 외부의 선진문물이 와서 비로소 가능하다는 식민지 노예사관이 깔려있다.

일제는 일제침략기 끊임없는 역사조작과 유물조작을 통해서 이런 식민지 노예역사관을 주입 시켰다. 지금도 총독부 역사관을 그대로 싣고 있는 국사책을 통해서 주입되고 있다.

기사는 말미에 우리나라 고고학을 대표하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의 말을 소개했다. 전 서울대학교 박물관장을 지낸 임효재 동아시아고고학연구회장의 말이다.

그는 “연천 민통선 지역에서 이번에 발견된 무지석 지석묘와 북방식 지석묘 등은 북한 평양 인근 지역을 방문해 답사해 본 고인돌과 매우 유사하다. 남방식, 북방식 고인돌을 동시에 연구하고 고인돌의 변천사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고고학적 자원으로 보인다.” 라고 주장한다.

우리나라 고고학의 현주소를 대변하는 발언이다. 우리는 이런 기사와 주장을 통해서 광복된 지 74년이 지나고 있지만, 여전히 조선총독부, 일제군국주의 세력의 후신, 일본극우파의 지배를 받고 있다.

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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