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명학자 수산 이종휘 같은 학자가 나와야 좁은 땅에서 벗어날 수 있다.

글: 공관(객원기자)

 

 

흉노 묵특선우의 철학, ‘토지는 나라의 근본’

수산 이종휘, 유학 양명학자인면서 조선만리 주장

장자는 상나라 백성으로서 동이 풍류도 알았을 것

칭기스칸의 어머니, 화살다섯개 비유로 단결교육

이조선, 지나인들의 애국정치철학에 도취 망국으로

오랑캐라고 무시하던 청나라 세계제국으로 성장

 

▲ 몽골진출의 정신적 원동력을 불어 넣어주신 스승, 관응사부. 서기2002년 사부를 만나 역사와 철학을 듣다.

 

DOEM. 수산 이종휘의 ‘만리국가론’. NECAS 이야기(10)

“토지는 나라의 근본이다. 어찌 동호(東胡)에게 주랴!”- 흉노 묵특 선우 (*1)

“하늘 아래 업신여겨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무엇인가? 고토(故土)이다. … 그런즉 조선(발해고토)과 삼한(한반도)이 합하여 하나가 된다면 광역이 만리이다. 그렇게 되면 천하를 웅시雄視할 수 있다.” - 수산 이종휘(*2)

서기 2003.10.7. 몽골에서 자연환경부와 한국 NECAS간에 동몽골 개발에 관한 협정서 체결 및 기자회견을 가졌다. 몽골의 신문과 방송이 크게 보도하였다. DOEM 플랜은 2000년의 NECAS(The Northeast & Central Asian Solidarity북동중아연대) 전도 협정을 실행하는 수단이지만, 그 의미는 자못 크다. 나의 고민이 깊어졌다. 이것을 어떻게 노무현 정부의 국가전략(한민족 활로의 1단계 전략)으로 만들까라는 데.

귀국하면 세수 아흔을 넘긴 관응 사부를 뵙고 싶었다.

1. 나의 은사 관응觀應

내가 젊은 시절 산에서 관응 사부에게 『장자』 「내편」을 읽을 때였다. 사부는 기초도 부실한 나에게 동서고금의 철학. 역사, 정치, 전략과 인물들을 쉽고 재미있게 강평해 주었다. 그것이 나의 살림살이가 되었다. 길잡이가 되었다. ‘북동중앙아시안연합’ 발안의 자양분이 되었다. 관응 사부가 한 말씀이 여전히 생생하다.

2. 장자의 구만리 공간 인식은 동이 풍류도에서 유래

“장주莊周는 전국시대 송나라 몽 지방 옻농장 책임자 출신으로 알려져 오지. 그곳은 동이족 은(殷)나라 유민들의 살던 땅이었어. 그 유민들이 은 사직을 모시고 있던 곳이었지. 그래서 그 유속이 많이 남아있던 곳이야. 그 유속이 장자의 사상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보여. 어쩜 장자도 은나라 백성이었는지도 몰라.

그가 한 소식 했어. 글이 시원하지 않은가? 똑같이 망국 은민의 후손들로 보이는 노담의 『노자』나 굴원 『이소』의 소극적/비감과는 달라. 방달자재하거든.

구만리 장천을 날아가는 대붕을 그리는 공간 인식이며, 만세(30만년) 후에 대성인大聖을 만나드라도 그 성인의 요해了解한 바를 아는 놈은 단지 아침저녁으로 만난 것과 같다 했어. 그 시간 인식은 보통 경지를 넘지. 이는 하루와 만세를 동일하게 본 것이지. 공간과 시간을 초월한 경지야. 실지로 깨달으면 그러 한 거야. 시공을 탈각해 버린 절대 자재한 세계를 본 것이지.(*3)

이놈아. 그런 경지가 돼야 나고 죽는 것도 없고, 마음먹은 데로 되는 기라.”

“이러한 사유체계는 지나족(중국인)에게는 없어. 고운 최치원이 ‘풍류도’라 칭한 동이 풍족(風族)에게나 있을 법한 것이지. 탄허당이 좋아하는 역易도 동이족 풍역에서 시작되었다고들 해.”

“인도인의 인식 체계에서 나온 불교의 억겁과 삼천대천세계의 시공간 인식에는 못 미치만.

그래도 ‘장주’의 시공의 인식이 호쾌하고 자못 크잖아. 풍류도가 넘실돼. 지금 우리에게는 그 동이 풍족의 큰 품은 다 없어져 버렸지. 영족(瀛族)인 진시황제도 동이족이야. 그래서 자기 조상이 살았던 산동의 태산에서 봉선제를 올렸지. 태산 쪽에 3번 순시했다던가. 우리는 반도에 밀려 내려오면서 조상을 잊어버렸어.”

▲서기2003년 몽골과 동북중아연대가 협력을 위하여 동몽골개발에 관한 모임 창립대회를 가졌다. 맨 앞줄 왼쪽에서 부터 6번째 필자.

3. 태무진과 그 어머니 호엘룬

“세계를 제패한 몽골족 태무진鐵木眞이가 있었지. 나중 칭기스 칸이라 했던 이여. 그가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 큰 가르침을 받았지. 테무진 형제들끼리 싸움이 있은 뒤야. 그 어머니가 자식들을 모아 놓고 야단을 쳤지. 싸리나무 회초리가 부르질 때까지 한껏 종아리 때렸어. 그 어미가 분을 가라앉히고, 싸리나무 한 가지를 각 형제에게 주면서 꺾어 보라고 했다지. 다들 쉽게 꺾었어. 다음은 세 가지를 주었어. 세 가지까지는 겨우 꺾을 수 있었지. 나중엔 한 움큼의 싸리나무 묶음을 주면서 꺾어 보라고 했지. 형제 중 아무도 꺾지 못했어. 그 어미는 아들들에게 일렀다. 봐라. 이와 같이 뭉쳐야 아무도 너희들을 해치지 못한다고. 훌륭한 어미였어. 그 어미에서 자란 태무진은 후일 그 가르침을 충실히 따랐어. 그래 천하의 영웅이 되었지.”

4. 사대중화의 정치철학 성리학의 맹독. 소중화주의

“이씨 조선의 선비들이 왜란을 당하고도 정신을 못 차렸어. 천하 주변정세에 어두웠던 것이야. 명나라와 조선이 왜란으로 인해 쇠락기에 접어들었어. 그 기회를 타고 한참 흥기하는 민족이 있었어. 여진 만주족이야.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조를 이루었지. 모택동이 차지한 중공도 청나라 땅에는 못 미쳐. 몽골을 다 차지 못했어.

이놈아. 네가 어른들에게 북방족을 야만 오랑캐로 배운 것은 잘못된 것이야. 우린 거기에 핏줄이 닿아있어. 바른 견해(正知見)를 가져야 해. 강희.옹정.건륭 3대는 중국 역사상 가장 긴 태평성세를 구가했지. 3대 순치제는 중이 되기도 했다는 설이 있기도 해.

그런데 조선의 고루한 선비들이 그들을 야만 오랑캐로 여겼지. 그러다 호란을 된통 당했잖아. 그러고서도 소중화주의에 재조지은再朝之恩을 더해 숭명사대는 대세가 되었어.

주자 성리학의 경독經毒이 조선반도에 깊고 널리 퍼져있었던 것이야. 남송의 주자학은 북방민족과 이웃 나라 민족을 야만으로, 부정하는 그들의 애국정치철학이야.

조선반도에 차라리 양명학이 자리 잡았으면 우리 역사가 달리 전개되었을지도 몰라. 일본은 실천적인 양명학이 대세를 이루었어”

5. 여진 만주족의 흥기

“후금, 청나라 창업 시조 애신각라愛新覺羅 누루하치의 집안이 하늘의 큰 복(大運)을 받았어. 그래서 문수보살 이름을 따서 만주라고 한때 불렸지. 누루하치가 13갑 100명으로 일어났어. 그 누루하치가 지도를 놓고 이만큼 그리면 그들의 영토가 되었어. 또 이렇게 크게 그리면 그렇게 되었단다. 우리 북방 고토가 한번 일어나면 지나(중국)는 힘을 못 썼어. 여진족도 몽골을 차지함으로써(만·몽 공동체) 중원을 차지할 수 있었어. 그들이 몽골과 연합하고, 산해관을 넘는 데 3대 60년이 걸렸어. 이놈아. 정신 차려.”

6. 수산 이종휘 발해고토회복. ‘만리국가론’을 주장

“조그만 조선 반도에서 구만리는 아니고, 만리를 내다 본 사람이 있었지. 수산 이종휘라는 선비였지. 양명학자였어. 그가 남긴 『수산집修山集』이라고 문집이 있을 거야. 나중 꼭 읽어봐. 여진족 청나라 오랑캐를 물리치고 그 땅, 발해고토를 회복하면 ‘만리의 강토’가 된다고 주장했지. 소중화주의의 극치를 보여주는 사례지.

그래도 발해를 우리의 역사로 보았어. 어찌 됐건 그 정도도 대단한 거야. 조선 땅은 좁아서 섬나라 왜놈만큼의 국량도 안 나와. 이놈아. 이왕 산에 들어왔으면 한 10년 공부해서 한 소식 하고 내려가야지. 땡초들이 큰일을 하는 거야. 임진왜란 때 사명당도 땡초들과 함께 승병을 만들어 공을 세웠어.”

“이놈아. 장자도 길이란 감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라 했잖아(*3). 길이 본래 있었던 것은 아니야. 금강경에서 정해진 법이 없다고 했듯이(無有定法). 약자가 강자가 되자면(以弱爲强)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야 해. 기책奇策이어야 해.

그래야 부처님 탁자 밥먹은 값을 하는 놈이야. 사물(泥世)에 얽매어 뭉쳐지지 않으면서 세상을 도와 변화시킬 줄 알아야 하는거야.”(*4)

7. 서기2002년도에 황악산 토암의 사부를 뵈다

“공관이 왔냐”

“요즘은 어떠신지요?”

“이놈아. 네놈 걱정이나 해. 나는 적막강산에 홀로 즐겁지”

“그래, 진흙탕에서 뭐하고 소일하느냐?”

“현실 정치는 접고, 북동중앙아시안연합운동 합니다”

“허허 이놈이. 결국 일을 낼 모양이네. 그런데, 그걸 이해할 놈이 조선 팔도에 몇 놈이나 있겠냐?

테무진이 태어난 불함산 자락이나 우선 접근해 봐. 내가 일본 유학할 때, 몽골에 일본 왕궁을 옮긴다는 풍설이 있었어. 방편, 권도가 있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거야.

온 세상 사람들이 칭찬해도 우쭐대지 않고, 온 세상 사람들이 비난해도 소침하지 않는 경지 정도가 되어야 이 세상에서 쓸만하지. 그것은 자기 살림살이가 쪼매라도 있어야 하는 거야.

소인배들이 뭐라 카던 신경쓰지 말고.

큰일은 장애와 함께 가는 거야. 멀리 보고 가봐.”

지금도 나는 가끔 꿈속에 관응 사부를 본다. 어떤 땐 뭐하고 있느냐는 호통을 치는 모습으로.

어떤 땐 잔잔히 미소 지으시는 얼굴로. 노장이 꿈에 나타나면 희소식이 날아든다(계속).

 

참고

(*1:사마천 『사기』 「흉노열전」 冒頓大怒曰:”地者,國之本也,柰何予之!“

((*2:修山 李種徽(1731~1797년 ≪修山集≫4. 先春嶺記.

天下不以爲黷。何者。以其故土也…。

然則三韓朝鮮合而爲一。而地方萬里。可以雄視天下矣。

(*3:『莊子』 「齊物論」 萬世之後而一遇大聖,知其解者,是旦暮遇之也.

(*4: 상동. 道行之以成, 物謂之而然。

(*5:굴원「漁父辭」 聖人不凝滯於物而能與世推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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