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혁명은 비폭력 제2동학혁명으로 강도, 일본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죽은 뒤에 가는 천국이 아닌,

현세의 지상천국 추구하는 동학,

갑오동학혁명 실패에도 포기 않고

3.1혁명으로 부활, 세계만방에

한민족 비폭력 혁명의 위대함 전파

잔인무도하게 탄압한 일제의 야만성

세계에 알려져 일제 야만성 폭로돼

 

▲조선개국 4352.10.31. 서울 종로구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동학민족통일회 11월 시민강좌가 열렸다. 이날 연사로 나선 임형진 경희대 교수가 ‘3.1혁명 100 주년과 동학 농민혁명 정신’을 주제로 강연했다.

동학, 천도교가 여전히 낯설고 들어본 적이 없는 국민이 대다수 일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대한민국 인민들의 실상이다.

일제 침략에 비폭력으로 혁명을 일으킨 3.1독립만세투쟁에 유관순 열사는 금방 생각나도, 이를 주도한 의암 손병희가 먼저 떠오르지 않는다. 우리 역사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올해는 3.1혁명이 일어난 지 1백 주년이 되는 해다. 정부와 독립투쟁 관련 단체에서 올해 삼일절 행사를 대규모로 치렀다. 1백 주년을 기념한다고 하면서도 3.1혁명을 주도한 당시 인물과 세력은 크게 조명받지 못했다.

유관순 열사는 이미 발생한 3.1혁명 대열에 참여하여 일제와 싸운 위치에 있다. 이 혁명 마당을 천도교와 천도교 교주 의암 손병희가 열었다.

3.1혁명이 일어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것이 3.1혁명을 아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물 위로 떠오른 빙산이 3.1혁명이라면, 수면 아래 물에 잠긴 수십 배 크기의 빙산은 혁명준비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물에 잠긴 빙산이 없이는 물 위 빙산이 존재할 수 없듯이 준비과정이 없었으면 3.1혁명도 없다.

조선 개국 4352.10.31. 서울 종로구 수운회관에서 동학민족통일회(상임의장, 손 윤) 10월 시민강좌가 있었다.

임형진 경희대학교 교수가 연사로 나섰다.  ‘3.1혁명 100 주년과 동학 농민혁명 정신’을 주제로 강연을 이끌었다.

그는 동학 천도교는 종교이면서 개혁성을 강하게 갖고 있다는 말로 말문을 열었다. 개혁, 혁명을 하다 보니까, 천도교 역사 160여 년에 1백만 명 이상의 순도자가 나왔다고 밝혔다.

종교이면서 어느 개혁세력보다 더 시대를 앞서 나갔다고 역설했다. 동학은 천국이 아닌 지금 여기에서 인간의 노력으로 지상천국을 건설하고자 했다고 했다

이것을 개벽이라고도 하는데 개인 구원으로써의 개벽과 지상천국 건설을 통한 사회개벽을 추구한다고 강조했다.

개벽은 혁명의 다른 말이다. 구시대를 타파하고 새 시대를 열자는 뜻에서 후천개벽이라고 한다. 후천은 죽은 뒤의 세계가 아니라 인간 중심의 이상사회 건설을 말한다.

동학 경전에도 지상의 신선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이 지상천국을 지향하는 동학 성격을 말해준다. 임형진 교수는 “지상천국은 영원한 동경의 대상인 피안의 세계가 아니라, 지극히 실현 가능한 세계”라며 동학이 추구하는 세상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기치 아래 서기 1894년 혁명의 깃발을 올렸다. 지배세력의 폭정, 폭압, 가렴주구를 타파하고 새 세상을 열자고 일어났다. 동학이 꿈꾸는 이상사회를 지상에 건설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는 이런 사회를 '군자공동체'라고 소개했다. 이를 통해 나타나는 인간을 동학에서 신인간이라고 했다고 한다. 특히 그는 이런 인간들의 세상을 3.1혁명 선언서에서 찾았다. “위력의 시대가 거하고 도의의 시대가 도래하도다.”라는 구절이다.

의암 손병희는 갑오년의 혁명이 실패한 뒤에 목숨의 위협을 받으며 숨어다녔다. 갑오 혁명 때 혁명군의 통령을 맡았다. 정부와 일본군이 그를 찾아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3.1혁명을 일으키기 전까지 그는 단순히 피해 다니기에 급급하지 않았다. 갑오년의 혁명실패를 거울삼아 새로운 혁명을 꿈꾸고 있었다.

서기 1901년 일본으로 가 독립투쟁 준비 활동을 하기 전까지 북한 지방에 거점을 마련하고 포교에 힘쓰는 한편 상업 활동으로 혁명을 위한 재력을 확보했다.

일본에서 수년간 활동하면서 개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귀국하여 자주독립 국가건설에 전력했다. 국민을 교육해서 각성한 자주적인 인간으로 만들어야 자주독립 국가가 가능하다고 간파했다.

의암의 적극적인 포교활동으로 서기 1910년경에는 3백만 동학 천도교로 성장했다. 동학교세에 힘입어 국민계몽과 교육을 위해서 학교를 세웠다. 또 기성 학교에는 자금을 지원했다. 사립 보성학교에 80원, 서서 합동소학교에 40원을 기증한 것을 비롯해 시내·외 각급사립학교 23개에 보조금을 지원했다

또 보성학교와 동덕여학교는 직접 운영했다. 국민계몽을 위해 언론출판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기에 수많은 출판사를 만들고 신문을 창간했다

박문사, 보문관, 창신소, 개벽사, 조선농민사 등의 출판사를 운영했다. 또 만세보와 대한민보를 발했다. 이외에 13종 이상의 잡지를 간행했다.

그가 지식전달과 민중 계몽운동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다. 백성을 깨우치는 문명개화 투쟁을 3.1혁명이라는 제2동학혁명으로 이어간 셈이다.

  

▲이찬구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 사무총장이 강연자의 발표를 보충하는 토론을 하고있다.

3.1혁명의 직접 동기가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황이었다. 처음에는 주축국이었던 독일이 승리하기만을 절실히 기대했다. 일본이 연합국 편에 서 있기 때문이었다.

일본이 패전국이 되면 더 쉽게 독립을 쟁취할 가능성이 컸다. 독일이 이길 것을 염두에 두고 독립국가건설을 준비해 나갔다.

하지만 역사는 일본이 속한 연합군의 승리로 흘러갔다. 의암 손병희는 포기하지 않았다. 2차 대전이 비록 연합국 승리로 끝나 일본이 승전국 대열에 있었지만, 민족자결주의 선언에 의지하여 3.1혁명을 준비해 나갔다.

갑오 혁명은 동학군에 한정되었고 무장투쟁으로 나갔다. 여기서 교훈을 얻어 비폭력 전 민족 투쟁으로 이끌었다. 동학 천도교는 물론 개신교, 불교계 등 모든 종단과 함께 추진했다.

일제는 헌병 경찰력을 이용해 무자비한 무단통치로 일관했다. 아무리 비폭력이라고 하지만 목숨을 걸지 않고는 성공을 장담 못 했다.

인쇄할 때 조선인 순사에게 발각되어 물거품이 되려는 순간까지 닥쳐왔다. 의암의 기지로 위기를 넘기고 3.1 독립 만세 독립투쟁의 불길이 타올랐다. 성공이었다. 국내를 시작으로 3개월 후에는 만주, 연해주, 미주 등 세계에 퍼져있는 온 겨레가 3.1혁명 대열에 가세했다.

일제는 가혹한 무력진압으로 대응했지만 그럴수록 일제의 야만성이 세계에 알려져 국제사회에서 위상이 추락 되었다. 세계언론이 연일 비난 화살을 날렸다.

악화되는 국제여론에 동양의 맹주로 자청하던 일제는 끝없이 추락했다. 비폭력 평화투쟁을 벌이던 7천 명 이상의 겨레를 학살했다. 진압에 성공한 듯했으나, 결과는 실패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3.1 비폭력혁명은 동아시아에 전파되어 이후 제국주의 세력에 대항하는 비폭력 평화투쟁의 모범이 되었다. 일제가 이후 식민통치방식을 바꾸는데 이는 스스로 야만성을 자백한 것이다.

이날 임현진 교수는 동학혁명은 3.1혁명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밝혔다. 근현대사에서 분수령을 이루는 대중봉기 밑바닥에는 동학혁명 정신이 스며있다고 분석했다. 3년 전 촛불 봉기도 동학혁명의 연장선에 있었다고 보았다.

향후 남북통일도 동학 천도교가 다리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남한에서는 이승만의 탄압으로 사라졌지만, 북한에는 천도교의 청우당이 국정의 한축으로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상기시켰다.

정치세력의 이해관계로 남북관계가 경색돼도 천도교는 북한의 청우당을 매개로 물고를 틀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이날 토론자로 이찬구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 사무총장이 나섰다. 임형진 교수가 다 못한 천도교의 역할을 보충했다.

특히 의암 손병희 선생의 <준비시대>는 이번 강연과 어울리는 ‘선각서’라고 소개하며, 천도교의 외경으로 손색이 없다며 자주독립, 부국강병을 원하는 국민이라면 이 책을 한번쯤은 읽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를 주최한 동학민족통일회 손윤 상임의장은 천도교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며 동학혁명 정신으로 통일에 대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강연이 끝나고 방청석에서 시민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한정된 시간이어서 다 받지 못할 지경이었다.

▲손윤 동학민족통일회 상임의장이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다. 그는 동학의 시대적 사명을 밝히면서 천도교 동학이 통일에 기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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