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추석은 남한과 같으나 내용이 더 풍성하고 의미가 깊다.

글: 홍강철(북한이탈주민)

 

[북한 추석이야기]

남한과 달리 세번 절하고 여자도 절해

장손이 소원 빌어주는데 세번 기회줘

산소에서 장손이 주변 큰 나무, 큰 바위

 앞에서 산신령에게 식구 소원을 빌어

조상묘 풍수지리 따져 쓰고 공동묘지형

탈북 주민들 추석에 북에 두고온 조상

산소 못가 중개인 통해 돌봐달라 송금도

대북경제제재 풀리고 주민자유왕래 기대

 

홍강철 북한이탈주민. 그는 서기 2013. 6.에 탈북했다. 북에서는 강건종합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인민군 군관으로 있었다. 경성고등물리전문학교, 함북도당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남북이질화 극복을 위해 유튜브에 '왈가왈북' 방송을 열어 뜻맞는 동지들과 함께 북한실상을 알리고 있다(편집인 말). 

내일은 우리 민족명절인 “추석”이죠. 당연히 북한에서도 “추석”은 민족명절입니다.

그 어려운 “고난의 행군”시기에도 “청명”과 “추석”에 음식을 만들어가지고 조상님들 산에 찾아갔습니다.

남한에 와보니 “청명”에는 산에 가지 않던데 북한 사람들은 “청명”에도 산에 갑니다.

눈비가 올 때에는 산에 가지 않고 집에서 제사를 지냅니다. 그런 날에는 “우리 조상님들이 자손들 고생하지 말라고 눈비를 내리게 해준다”며 추석음식을 먹으면서 집에서 놉니다.

집집마다 좀 다르기는 한데 우리 집 같은 경우에는 추석전날이면 형제들이 모두 모여서 추석음식을 준비합니다.

떡도 치고, 만두도 빚고, 아이들은 장난치며 놀고. “청명”이나 “추석”은 집안의 “세”를 뽐내는 날이기도 합니다.

멀리 평양이나 다른 지방에서 살고 있는 형제나 자식들이 자녀들을 데리고 오고, 형제들이 빠짐없이 모두 모이면 그 집안 어른이나 장손들은 어깨가 으쓱해집니다.

그건 집안이 화목하고 집안 어르신과 장손들의 말이 날이 선다는 걸 말해주거든요.

그리고 추석날 아침밥 먹기 전에 상을 차리고 제사를 지내고 산에 갑니다. 남한은 여성들은 절을 하지 않던데 북한에서는 여성들도 모두 절을 합니다.

산에 가면 “청명”에는 삽을 가지고 가서 봉분을 손질하고 “추석”에는 낫을 가지고 가서 잔디와 풀을 벱니다.

남한은 풀이 많아서 제초기를 써야 하지만 북한 산소에는 풀이 많지 않습니다. 낫으로 간단히 치면 됩니다.

풀 자라는 것만 봐도 남한은 기후와 토질이 농사에 적합한 것 같습니다. 산소에도 풀이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는 건 땅이 척박하다는 것이겠죠.

산소에 도착하면 장손이 혼자서 주변에 있는 큰 나무나 큰 바위돌 같은 곳에 술과 술잔, 안주거리를 접시에 담아가지고 가서 산신령님께 제를 지냅니다.

“우리 조상님들 잘 돌봐주십시오.” 부탁의 말도 빼놓지 않습니다. 조선노동당원도 산신령님께 제를 지냅니다. 그건 神을 믿고 안 믿고를 떠나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풍습이니까요.

산신령님께 제사를 지내면 형제들은 낫으로 산소 주변에 있는 풀들을 깎습니다. 아, 참 생전에 담배를 좋아하시던 분이면 담배에 불을 붙여서 상돌위에 놓아둡니다.

풀이라야 산소와 주변에는 잔디를 심으니까 얼마 자라지도 않습니다. 거의 깎을 풀이 없습니다.

봉분을 다 손질하면 집안 여성들이 상돌위에 제사상을 차립니다. 제사상을 보면 집안 여성들이 음식솜씨와 조상님을 받드는 정성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북한은 거의 모두가 공동묘지입니다. 남한은 북한과 같은 풍습을 따르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북한에서는 산은 어떤 곳에 써야 한다는 풍습이 있습니다.

우선 앞을 바라보고 섰을 때 시야가 훤히 트여야 하고 저 멀리에 가장 높은 산봉우리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강이나 시내물이 흘러야 하는데 흘러간 물은 보이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뒤로는 산이나 절벽이 병풍처럼 막아서있어야 하고 토질이 좋아야 합니다.

그런 조건들을 충족하는 곳을 산소로 쓰다나니 자연히 공동묘지구역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물론 평양이나 큰 주요도시들에는 지정해놓은 공동묘지구역들이 있기는 하지만 지방은 그렇지는 않습니다.

산 쓰기에 마땅하다고 생각되면 산을 쓰는 겁니다. 전 국토가 전 인민적 소유기 때문에 누가 뭐라 말하지 못합니다.

물론 농지가운데에는 산소를 쓰지 못하게 합니다. 이렇게 공동묘지다나니 제사상을 차린 것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보게 됩니다. 그러니까 경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먼 곳에서 혼자서 오시는 분들은 간단하게 명태하고 소주만 들고 와서 간단하게 제사를 지내고 가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제사상을 다 차리면 장손이 술을 붓고 다 같이 절을 합니다. 어떤 집은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술을 붓고 절을 하는 집안도 있습니다.

남한은 두 번은 엎드려 절하고 세번째는 허리만 굽혀서 절을 하던데 북한에서는 세 번 다 절을 합니다. 그리고 여성들도 모두 함께 절을 합니다.

절을 할 때마다 소원을 말합니다. 물론 장손이 집안 아이들에게 뭘 빌어달라는가고 물어봐서 세 번의 기회 밖에 없으니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대신 빌어줍니다.

제사가 끝난 다음에 아이들을 보고 개별적으로 빌라고 하기도 합니다.

돌아가신 조상님이 소원을 이루어 줄 것이라는 것을 믿어서가 아니라 조상님을 신성시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산소에 가기 싫어하던 애가 공부를 잘 해서 최우등을 하면 “산소에 가서 할아버님께 절을 잘 드려서 최우등을 한 거다.”라고 속이기도 합니다.

속담도 꼭 알려줍니다. “조상괄시하면 앉은 개 좆이 부러진다.”고요.

매번 절할 때마다 모아둔 술과 절하고 나서 음식들마다에서 한 점씩 뜯어놓은 음식은 묘지 머리맡을 파고 묻어줍니다.

세 번 절하고 나면 상을 물리고 그 자리에서 음식을 나눕니다. 가까운 곳에 있는 친구들도 오고 아는 사람들도 청해서 술을 마시고 놉니다.

어떤 집들은 산에서 놀려고 녹음기를 들고 가는 집들도 있습니다. 조상님이 후손들이 얼마나 쾌활하게 사는지를 보여준다면서요. 저는 그렇게 해보지는 못했습니다.

내일은 북한에 조상을 묻은 북한이탈주민 모두가 고향을 생각하는 날입니다.

저는 그래도 북한에 조상님 산소를 돌볼 동생이 남아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추석에 산에 가라고 브로커들을 통해서 돈도 보냈습니다. 지인 분들이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이것만 봐도 저는 많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저를 대신해서 조상님 산소를 돌볼 사람이 있으니까요.

그러나 북한에 있는 부모형제들이 모두 돌아가시고 단신으로 남한에 와서 살고 계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분들의 조상님들은 제사술 한잔도 받지 못하시겠죠.

제사술 한잔 받지 못하는 조상님들의 자손들은 조상님을 괄시하고 싶어서 산에 가지 않는 건 아닙니다. 분단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미국과 유엔의 경제제재가 우리 탈북자들이 고향을 떠나오게 만들었고, 조상님 산소에도 가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저의 아내도 그런 분들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중국에 있을 땐 청명과 추석이면 밥 한그릇, 물 한그릇을 떠놓고 북쪽을 향해서 혼자 제를 지냈답니다.

이젠 제가 집에서 제사를 지냅니다. 배고파 돌아가신 그 분들의 영령이 편히 쉬시라고 빌어드립니다. 우리 아내는 내 대법원 판결이 빨리 나오게 해달라고 빌고요.

아내를 만나서 몇 년 동안 청명과 추석, 설날에 빌었는데 3년 6개월이 지난 오늘에도 대법원 판결은 나오지 않고 있네요. 아마 조상님을 모시는 우리의 정성이 모자랐나 봅니다. 그럴 수밖에요.

직접 산에 찾아가서 풀도 깎아드리면서 빌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까 소원을 들어주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제발 남-북-미 관계가 정상화되어서 우리 북한이탈주민들도 조상님 모시러 산소에도 다녀오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따뜻한 가을 추석날에 우리 주변에는 피눈물을 삼키는 북한이탈주민들도 있습니다.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 응원의 말 한마디를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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