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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초기 3루왕, 부여왕족 직계 혈통 강조3루왕의 ‘루(婁)’자는 ‘개구리(蛙)’를 의미한다.
박찬우 시민기자 | 승인 2019.08.14 18:09

 

【정재수 작가의 ‘삼국사기 유리창을 깨다’ 역사시평】

⑩ 백제초기 3루왕의 비밀

 

백제왕가의 계보에 나타나는 다양한 수수께끼

<백제서기>의 다루, 마루와 고구려 오회분 4호묘

금와왕은 백제 건국시조 비류와 온조의 직계 선조

3루왕은 고구려에 대한 반감이 표출된 백제왕명

 

▲ 집안시 소재 고구려 고분벽화 오회분 4호묘. 남신의 해 속에는 삼족오, 여신의 달 속에는 개구리가 그려져 있다. 삼족오는 천신을, 개구리는 지신을 상징한다. 출처 : 고구려고분벽화

백제초기, 시조 온조왕의 뒤를 이은 왕은 다루(多婁)왕(2대), 기루(己婁)왕(3대), 개루(盖婁)왕(4대) 등이다. 왕명에 ‘婁(별이름 루)’자가 공통으로 들어간다.

‘루婁’는 무슨 의미일까?

[백제서기]에 따르면, 백제 건국 3년째인 서기전16년 온조의 처 감아(甘兒-추모왕 딸)가 아들 다루(多婁)를 낳는다. 온조의 첫째아들이다. 이 시기는 온조가 형 비류로부터 독립하기 이전으로 당시 백제왕은 미추홀의 비류왕이다. 그런데 비류왕은 왕후 벽라(碧蘿-행인국 왕녀)를 통해 딸만 셋을 둔 상태여서, 어머니 소서노가 온조의 아들 다루를 비류왕의 아들로 입적시킨다. (#1 [백제서기]기록) 이어 온조는 2년 후인 서기전14년 다시 아들을 얻는다. 온조의 둘째아들 마루(馬婁)이다. 온조의 첫째아들 다루가 비류왕의 양자가 되니, 온조의 공식적인 첫째아들은 마루인 셈이다.

그런데 [백제왕기]는 마루를 다루로 소개한다. ‘다루(多婁)는 마루(馬婁)로 읽고, 산원(山原)의 뜻에서 취한다.(多婁當 讀馬婁 取山原之義也)’ 다시 말해 비류왕에게 입적인 온조의 첫째아들 다루가 곧 둘째아들 마루와 독음(讀音)이 같다는 설명이다. 산원은 우리말 ‘산마루’이다.

또한 다루왕의 뒤를 이은 기루왕과 개루왕의 이름 소개도 [백제왕기]에 나온다. ‘기루(己婁)는 마땅히 가을(加乙-개구리 울음소리 ’갈~’)이라고 해야 한다. 개구리의 뜻에서 취한다.(己婁當作加乙 取蛙之義也)‘이고, ’개루(盖婁)는 붉은 개구리의 뜻이다.(盖婁赤蛙義也)‘이다. 기루와 개루 둘 다 개구리와 직접 연관된다. ’婁’는 바로 개구리를 가리킨다.

참고로 고구려 고분벽화를 보면 해와 달의 그림이 나온다. 해 속에는 삼족오가, 달 속에는 개구리가 그려져 있다. 삼족오는 천신(天神)과 관계된 양(陽)의 매개체라면 개구리는 지신(地神)와 관계된 음(陰)의 매개체이다. 또한 개구리는 서식지의 특성상 물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어 수신(水神)의 보호자이기도 하다.

3루왕은 무슨 까닭으로 ‘婁’자를 공통으로 썼을까?

우리는 ‘개구리왕’하면 동부여 금와(金蛙)왕을 먼저 떠올린다. 금개구리왕이다. [삼국사기] 고구려 건국신화에 금와왕의 탄생설화가 나온다. 동부여의 건국시조 해부루(解夫婁)가 늙어서 아들을 얻지 못하던 차에 곤연(鯤淵)에 이르러 큰 돌 속에서 금빛 개구리 모양의 아들을 얻어 이름을 금와(金蛙)라 짓고, 장성하자 태자로 삼는다. (#2 [삼국사기]기록)

▲ 금와왕은 돌을 깨고 나온 일종의 난생신화 비슷한 독특한 신화를 가진다. 이는 천신족인 (북)부여출신의 해부루왕과 지신족인 금와왕이 결합하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금와왕은 혈통상으로 해부루왕과 무관하다. 출처 : 우정사업본부

금와왕은 백제 건국시조 비류와 온조의 직계 선조이다. [백제서기]에 따르면, 해부루왕의 서손(庶孫)이자 금와왕의 아들인 우태(優台)는 홀본국 왕녀 소서노와 눈이 맞아 비류와 온조를 낳고, 이후 금와왕에 의해 홀본왕에 봉해진다.(#3 [백제서기]기록) 따라서 두 시조의 생부인 우태가 금와왕의 아들이니, 금와왕은 두 시조의 조부(할아버지)이다.

결론적으로 3루왕은 금와왕의 직계혈통임을 공식적으로 천명한 왕명이다. 그래서 개구리를 가리키는 ‘婁’자를 공통으로 사용한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금와왕의 혈통을 강조한 걸까?

이는 소서노집단이 고구려와의 단절을 선언하고 백제를 건국하게 된 배경을 설명한다. 처음 소서노는 추모왕과 정략결혼을 성사시키며 비류가 태자가 되는 조건으로 추모왕의 고구려 건국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후 추모왕이 약속을 어기고 전처 예씨부인의 소생 유리를 후계자로 삼자, 소서노는 고구려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비류와 온조를 데리고 한반도로 남하한다. 다시 말해 3루왕은 백제 건국주체세력의 고구려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표출된 왕명이다.

참고로 3루왕의 전체 재위기간은 28년~166년까지 총 138년간이다. 평균 재위기간은 대략 46년이다. [삼국사기]는 3루왕을 직계혈통으로 기록한다.(#4 3루왕재위기간) 그러나 한 세대가 30년 정도임을 감안하면 절대 무리이다. 따라서 한 두 명 정도 왕력에서 빠진 왕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역시 ‘婁’자를 사용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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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제서기] 시조 비류왕. 三年乙巳 五月 甘兒生子多婁 時王后碧蘿 生三女而無子 太后命取多婁爲王子 - 3년(서기전16년) 을사 5월, 감아가 아들 다루를 낳았다. 당시 왕후 벽라는 딸 셋을 낳았으나 아들이 없었다. 태후가 다루를 택하여 왕자로 삼았다. (감아 : 추모왕의 딸, 벽라 : 행인국 왕녀)

#2. [삼국사기] 시조 동명성왕. 先是 扶餘王解夫婁老無子 祭山川求嗣 其所御馬至鯤淵 見大石 相對流 王怪之 使人轉其石 有小兒 金色蛙形[蛙 一作蝸] 王喜曰 此乃天賚我令胤乎 乃收而養之 名曰金蛙 及其長 立爲太子 - 앞서 부여왕 해부루(解夫婁)가 늙도록 아들이 없어 산천에 제사를 지내 대를 이을 아들 낳기를 기원하였다. 어느 날 그가 몰던 말이 곤연(鯤淵)에 이르렀는데, 말이 그곳의 큰 돌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왕은 이상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그 돌을 굴려보게 하니, 금빛 개구리 모양의 어린 아이가 있었다. 왕이 기뻐하며 말하였다. “이 아이가 바로 하늘이 나에게 주신 아들이다!”라고 하며 거두어 길러 이름을 금와(金蛙)라고 하고, 아이가 장성하자 태자로 삼았다.

#3. [백제서기] 시조 우태왕. 優臺王 北夫餘解夫婁王之庶孫也 解夫婁王以日神降靈之後布德 北方天下泰平 分遣王子于列國以監民疾苦 時卒本太守延陀勃有女曰召西奴甚美 優台聞之請往卒本 王以優台母徵不許 優台乃私行至卒本與山西奴相通 延陀勃以王不許欲禁之乃相逃避太伯山谷沸流川上 祀河神而生子曰沸流 延陀勃聞之使人迎皈遂以卒本之地皈之 時漢元年初元二年甲戌歲也 時解夫婁王太子金蛙立 卽優台之父也 命優台王于卒本 時解夫婁王太子金蛙立 卽優台之父也 命優台王于卒本 三年乙巳 五月 甘兒生子多婁 時王后碧蘿 生三女而無子 太后命取多婁爲王子 - 우대왕優臺王(우태왕)은 북부여 해부루왕의 서손(庶孫)이다. 해부루왕이 일신(日神)이 강령하여 덕을 베푸니 북방 천하가 태평하였다. 왕자들을 나누어 열국(列國)으로 보내어 백성들이 병들고 고통에 빠져있는지 살피게 하였다. 이때 졸본태수 연타발(延陀勃)에게 소서노(召西奴)라는 딸이 있는데 매우 아름다웠다. 우태(優台)가 그 소리를 듣고 혼인을 청하려 졸본으로 가려하자, 해부루왕이 우태의 어머니를 불러 두 사람의 혼인을 허락하지 않았다. 우태는 사사로이 졸본으로 가서 소서노와 정을 통하였다. 연타발은 해부루왕이 허락하지 않았다하여 혼인시키지 않자, 두 사람은 태백산(太伯山) 골짜기 비류천(沸流川)으로 도피하였다. 하신(河神)에게 제를 올려 아들을 낳으니 이름을 비류(沸流)라 하였다. 연타발이 그 소식을 듣고 사람을 보내어 졸본땅으로 맞이하였다. 때는 한(漢) 효원제 초원2년(서기전47년) 갑술이다. 이 해에 해부루왕의 태자 금와(金蛙)가 왕위에 올랐다. 바로 우태의 아버지다. 우태에게 명하여 졸본의 왕 노릇을 하게하였다.

▲ 초기 3루왕의 재위기간 비교

박찬우 시민기자  horizon10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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