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 2019.10.12 토 13:28
상단여백
HOME 쟁점기사
우리 국사책도 일본산 버리고 국산으로 하자일제가 왜곡, 날조한 역사를 바르게 복원하는 것이 극일의 지름길이다.
박찬우 시민기자 | 승인 2019.08.09 23:44

 

임시정부와 독립투사들, 우리역사 桓國에서 시작 강조

조선총독부및 사설단체와 개인도 우리사서 강탈

일제의 우리역사교육탄압 당시 외국언론에도 등장

식민사학의 원조, ‘이병도 회개’사건은 사실로 드러나

 
▲조선개국4352.07.28. 경남 창원시에서 (사)대한사랑(이사장, 박석재 천문학박사)이 개최한 역사강연이 있었다. 첫번째 강사로 나선 이완영 대한사랑 수석본부장이 강연을 하고 있다. 일제는 조선강토를 집어삼킨 뒤 우리역사말살에 광분했다. 당시 국사책만 가지고 있어도 처벌한다는 외국인 기자의 보도까지 나올 정도였다.

최근 들어 왜국과의 경제 전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경제왜란”이라 부르며 이전에 있었던 왜국의 침략에 대응하고자 한다. 이러한 가운데 역사학계에서도 왜국의 조선총독부산(産) 역사가 아니라 독립운동가 산(産) 역사를 찾자는 운동이 거세다.

조선개국 4352년 7월 28일의 창원에서 (사)대한사랑 전국 순회 역사강연, ‘창원편’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대한국인에게 고함’을 대 주제로 삼았다. 1부강연은 ‘조선총독부가 지워버린 한국사의 실체’라는 주제로 이완영 수석본부장이 맡았다. 2부는 K-history, K-spirit, K-cosmos 구호를 내걸고 박석재 이사장이 맡았다.

제1강을 맡은 이 수석본부장은 “한국인으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는 “한국이름, 한국어, 한국역사”를 가져야 한다는 말로 문을 열었다.

이 중 이름과 언어는 되찾는데 성공하였지만 참된 한국사를 찾는 것은 아직 성공하지 못하였다며 방청객 시선을 집중시켰다. 이어 아직 까지 조선총독부 사관을 중심으로 한국사가 서술되고 있음을 증거물들을 제시하여 확인시켰다.

그에 따르면 조선총독부에서 우리역사를 가르치지 못하게 하고 <자료수집>의 명목하에 뺏어갔다. 1916년 1월~1918년 1차, 1923년 5월 관련 법령 선포, 그로부터 1937년까지 중요 사책(史冊) 4950권, 문기(文記)류 453점, 대마도주의 도서관에서는 고문서 61,469장, 고기록류 3576장, 고지도류 34장을 압수한 사실을 확인했다.

1922년 8월 2일의 조선사편찬위원회 4차 위원회에서 최남선의 반발로 압수한 사료를 불태우는 대신 가장 귀중한 사료는 등사하여 보존하기로 결정되었다. 그 수량이 1623권이나 이는 광복되면서 없어졌다고 한다.

3.1 만세운동을 직접 목격한 1920년 상해영지신문의 내다이러 페퍼(Nathaniel peffer)기자는 한국 국사는 가지고만 있어도 범죄가 된다는 사실을 신문에 증언하였다.

식민사학 추종자들은 “한국사서 20만권을 빼앗은 적이 없다”고 하는데 근거 없는 선동임이 이날 밝혀졌다.

일본의 조선서지학 박사인 도야마 국립대 교수 후지모도 유키오가 일본으로 유출된 한국 고서 5만여권을 48년간 집대성한 <일본현존조선본 연구>를 세상에 내놨다.

그 중 첫 권인 “집부”(개인문집)을 2009년에 발간한데 이어 2018년 “사부”(역사서)를 발간하였다.

이 수석본무장은 개인이 발견한 조선문건이 5만 건에 해당한다고 볼 때 수거한 도서가 20만권에 해당한다는 것은 충분히 개연성 있는 이야기라고 역설하였다.

일제는 조선인이 조선반도 이외의 어떠한 지역에도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면 그것을 다 위사(가짜역사)로 몰고자 이 같은 짓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제침략에 응전을 벌인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그 소속 주요 독립투사들은 우리역사가 단군도 아니고 그 위 신시 배달국도 아닌, 환인의 환국에서 시작되었다고 보았다.

이어 그는 조선사 편수회의 출판물을 보여주며, 단군조선은 신화이고, 위만조선과 한사군만을 인정한 서술을 언급하였다.

이러한 서술은 현대에도 그대로 이어지는데, 현재도 출판되는 <한국미술사 강의 1>에는 “낙랑이라는 한군현의 설치로 한반도에는 철기문화가 급경기 퍼져가면서 여러부족들이 고대국가로 가는 길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라고 기술되었다며 미술사에도 고대판 식민지 근대화론이 침투해 있다고 폭로했다.

“이병도의 회심” 사건에 대하여 기사도 다루었다. 이병도가 회심했다는 보도기사나 있었는데 증언이 없었다. 이번에 시카고 강연 시에 그것에 대한 증언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증언은 이병도가 병상에서 모인 사람들에게 “이전에는 단군조선이 허구인 줄 알았는데, 내가 다시 공부해보니 단군조선은 실재한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 정말 잘 연구해 달라”고 부탁했던 사건이다. 이에 대해 사학계에서는 허구다, 혹은 이병도가 망령이 든 것이다 등 말이 많았다.

이는 식민사학을 위해서는 그들의 대부인 이병도마저 버리는 식민사학계의 대일본 충성심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이 증언이 공개되면 상당한 파장이 일 것으로 생각된다.

이어 독립운동가들의 사관을 소개했다. 임시정부는 대한민국 23년(1942년) 3.1절 선언문에서부터 “우리민족은 처음 환국이 창립된 이래 단군, 부여, 삼한, 삼국, 고려, 조선 및 대한민국을 거쳐” 라고 명시하여 대한민국이 환국의 적장자임을 표현하였다.

또한 임시정부 내 “한국독립당”의 선언문에서는 “환국에서 삼한이 끝나기 까지 3천여년”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5천년 국맥이 한차례도 단절된 적이 없음을 선언한 것이다.

“삼균주의”를 만들어 오늘날 헌법의 기초를 만든 임시정부 조소앙 선생은 삼국유사의 첫 꼭대기에 “석유환국(昔有桓國)이라하였읍니다.”라고 했으며 환국(桓國)과 한국(韓國)은 한울, 크다는 뜻으로 같은 뜻(역자의 부동)임을 알렸다.

증거는 너무나 명백하다. 독립운동가들이 만든 한국사와 조선총독부가 만든 한국사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어느 쪽이 유사사학인가. 현재 Made in Japan은 불매운동을 하면서 Made in Japan 역사를 가르쳐서야 되겠는가(2부에서 이어짐).

▲일제침략기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역사관을 보여주는 자료다. 우리역사 시작이 환국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박찬우 시민기자  horizon1011@hanmail.net

<저작권자 ©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찬우 시민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
조선사(주) | 주소 : 서울 강남구 역삼로7길 17, 네스빌 609호  |  대표전자우편: mukto@naver.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오종홍
발행인 : 나한엽  |  편집인 : 오종홍  |   등록번호 : 서울 아03803  |  등록일자 : 서기2015.06.22.
Copyright © 2019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