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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세자 유리왕, 백제 건국을 촉발한 동인<광개토왕릉비> 비문의 ‘고명세자유리왕顧命世子儒留王’, 백제 건국의 비밀을 담다.
박찬우 시민기자 | 승인 2019.07.01 20:42

 

고명은 왕이 임종 직전에 신하에게 뒷일을 부탁하며 남기는 말

유명(遺命), 유훈(遺訓)이라고도 함

<광개토태왕비> <삼국사기> <고구려사략>, 유리왕 기록 달라

유리가 고구려 왕에 오르자 소서노는 두 아들, 비류와 온조를 대리고

남하하여 백제를 세움

 

【정재수 작가의 ‘삼국사기 유리창을 깨다’ 역사시평】
⑤ 고명세자가 된 고구려 유리왕

유리왕(2대)의 대표 상품은 ‘황조가(黃鳥歌)’이다. ‘훨훨 나는 저 꾀꼬리, 암수 서로 정답구나, 외로워라 이 내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꼬.(翩翩黃鳥 雌雄相依 念我之獨 誰其與歸)’. 우리나라 최초의 서정시인 황조가는 화희(禾姬-골천출신)와 치희(雉姬-한인출신), 두 후궁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 유리왕의 애달픈 심정이 잘 녹아있다.

 

▲ 황조가는 고구려초기 정치세력간의 권력다툼을 배경으로 한다. 화희(골천 출신)와 치희(한인 출신)의 다툼은 토착세력과 외래세력간의 권력싸움이다. 황조가는 왕권을 강화시키려다 좌절한 유리왕의 심정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서정시이다. *출처 : 네이버이미지

그런데 『삼국사기』를 보면 유리왕의 즉위전사(卽位前史) 기록이 유난히 많다.(#1) 유리왕이 시조 추모왕의 맏아들이며 전처 예(禮)씨 부인의 소생이라는 사실, 추모왕이 동부여에서 증표(證票-부러진 칼)를 남겨 유리왕이 이를 가지고 고구려로 추모왕을 찾아온 점 그리고 태자에 봉해져 정식으로 왕위를 승계한 내용 등이다.

통상적으로 『삼국사기』는 왕의 즉위전사 기록을 간략히 서술한다. 왕의 이름은 무엇이며 누구의 몇째 아들이고 성품은 어떠하다는 식이다. 그런데 유리왕의 경우는 시조 추모왕의 즉위전사인 건국신화 못지않게 상당한 지면을 할애한다. 매우 이례적이다.

무슨 이유일까?

유리왕의 왕위승계가 불안정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특히 <광개토왕릉비>는 유리왕(유류왕)을 ‘고명세자(顧命世子)’로 기록한다. 고명은 왕이 임종 직전에 신하에게 뒷일을 부탁하며 남기는 말이다. 유명(遺命), 유훈(遺訓)이라고도 한다. 고명세자는 유훈으로 지명된 후계자를 말한다. 다시 말해 유리왕은 추모왕이 죽기직전까지 공식적으로 태자에 책봉되지 못한다.

▲ 일반적으로 후계자 칭호는 ‘태자(太子)’를 쓴다. 고구려의 ‘세자(世子)’ 칭호는 [삼국사기]에 딱 한 번 나온다. 고국원왕 시기로 후연 모용황의 침공을 받은 고국원왕은 협상을 위해 세자를 파견한다.(十年(340년) 王遣世子 朝於燕王&#30365;) 후연이 황제국을 지칭하며 세자 칭호를 쓰자 고구려 또한 황제국을 표방하며 세자 칭호를 사용한다. 이후 세자 칭호는 계속해서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2) *출처 : <광개토왕릉비> 쌍구가묵본


이는 또 무슨 경우인가?

당시 태자는 유리가 아닌 비류이다.(#3) 추모왕은 홀본국 왕녀 소서노와 정략결혼을 통해 고구려를 건국한다. 소서노의 홀본국이 고구려의 모체이다. 비류(*소서노의 전 남편 우태의 아들)의 태자 책봉은 추모왕이 소서노와 고구려 건국을 놓고 벌인 일종의 딜(deal)이다. 그런데 추모왕의 직계혈통인 유리가 고구려를 찾아오면서 상황이 급변한다. 추모왕은 비류를 제쳐놓고 유리를 후계자로 삼기 원한다. 『삼국사기』는 추모왕이 사망하기 6개월 전에 유리를 태자에 책봉한 것으로 나온다.(#4) 그러나 『고구려사략』은 유리의 태자 책봉에 반발한 소서노가 크게 화를 내고 본거지인 우양(牛壤)으로 가버렸다고 기록한다.(#5) 결국 유리의 태자 책봉은 소서노의 승인을 받지 못하여 미완으로 끝난다. 그래서 유리왕은 <광개토왕릉비>의 고명세자가 된다.

추모왕 사후, 태자 비류는 고구려왕이 되지 못한다. 대신 추모왕의 의지대로 유리가 후계자 고명을 받아 서기전19년 왕위를 잇는다. 다만 [고구려사략]은 유리왕이 소서노를 위로하기 위해 즉위3년(서기전17년)에 비류, 온조와 함께 고구려를 3분할 통치한 사실을 전한다. 유리왕은 소서노와 함께 수도 홀승골성을 중심으로 소노부, 황룡국, 행인국, 구다국, 비리국 등을 담당하고, 비류는 미추홀(彌鄒忽)을 도읍으로 순노부, 절노부를 담당하며, 온조는 우양(牛壤)을 도읍으로 관노부, 계루부를 담당한다.(#6)    

▲ [유기추모경]에 따르면, 비류와 온조는 추모왕으로부터 각각 엄표왕(淹&#28146;王)과 한남왕(汗南王)의 봉함을 받는다. 엄표왕 비류의 도읍은 고구려영토 내에 소재한 미추홀이다. 정확한 소재지는 알 수 없으나, 이후 비류는 한반도로 남하하면서 미추홀 지명을 함께 가져온다. 한반도 미추홀은 그렇게 해서 생겨난다. *출처 : [고구려역사의 부활](논형,2018)

그러나 유리왕의 3분할 통치체제는 오래가지 못하고 갑자기 중단된다. 소서노는 고구려를 떠나기로 결정한다. 이유는 당시의 정치상황 때문이다. 소서노의 홀본계는 유리왕의 동부여계에게 밀려 정치적 입지가 상당히 위축된다.  

결국 소서노는 고구려에서의 꿈과 삶을 모두 포기한다. 그리고 아들 비류와 온조를 데리고 한반도로 남하하여 백제를 건국한다.

<광개토왕릉비>의 ‘고명세자유류왕(顧命世子儒留王)’ 일곱 글자에는 백제 건국의 비밀이 오롯이 담겨 있다.


#1. [三國史記] 琉璃王. 瑠璃明王立 類利 或云孺留 朱蒙元子 母禮氏 初 朱蒙在扶餘 娶禮氏女有娠 蒙歸後乃生 是爲類利 幼年 出遊陌上 彈雀誤破汲水婦人瓦器 婦人罵曰 此兒無父 故頑如此 類利慙 歸問母氏 我父何人 今在何處 母曰 汝父非常人也 不見容於國 逃歸南地 開國稱王 歸時謂予曰 汝若生男子 則言我有遺物 藏在七稜石上松下 若能得此者 乃吾子也 類利聞之 乃往山谷 索之不得 倦而還 一旦在堂上 聞柱礎間若有聲 就而見之 礎石有七稜 乃搜於柱下 得斷劒一段 遂持之與屋智 句鄒 都祖等三人 行至卒本 見父王 以斷劒奉之 王出己所有斷劒 合之 連爲一劒 王悅之 立爲太子 至是繼位

#2. [고구려사략]에 따르면, <광개토왕릉비>의 비문을 쓰고 비석을 세운 사람은 춘(春)태자이다.(元年(414년) 甲寅 九月 葬大行于黃山 春太子作碑立之) 춘태자는 광개토왕의 이복형으로 장수왕에게는 큰아버지뻘이다.  당시 장수왕은 아버지 광개토왕과 항렬이 같은 왕족에게 태자의 칭호를 부여한다. 따라서 당시 왕의 후계자 칭호는 태자가 아닌 세자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까닭으로 <광개토왕릉비>를 작업한 춘태자의 경우와 같이 선조 유리왕의 경우도 세자로 소급적용한 듯하다.

#3. 『百濟書記』 優臺王. 十一年(前37年) 甲申 正月 召西奴立朱蒙爲王 而沸流爲太子 溫祚爲王子 命憂臺旧臣卒本諸臣與朱蒙之臣 相婚 爲親戚 改國號曰 高句麗 - 11년(서기전37년) 갑신 1월, 소서노가 주몽을 왕으로 세우고, 비류를 태자로, 온조를 왕자로 하였다. 우대(*우태)의 구신과 졸본의 제신이 주몽의 신하와 혼인하여 친척이 되게 하였다. 나라이름을 고구려로 고쳤다. 참고로 남당필사본 백제관련 사서는 [百濟王紀]와 [百濟書記]가 있다. [백제왕기]는 시조 비류왕, 온조왕 순이며, [백제서기]는 시조 우대(우태)왕, 비류왕 순이다. 우대는 동부여 금와왕(2대)의 서자로 소서노와 혼인하여 비류와 온조를 낳는다.      

#4. [三國史記] 始祖 東明聖王. 十九年(前19年) 夏四月 王子類利自扶餘與其母逃歸 王喜之 立爲太子 秋九月 王升遐 時年四十歲 葬龍山 號東明聖王

#5. [高句麗史略] 芻牟大帝紀(異本). 十七年(前21年) 庚子 八月 解素護送禮氏及類利太子 沸流松義之家 時上獵于倭山 類利來獻釰片 服皆上古服也. 十八年(前20年) 辛丑 十月 上與禮氏類利謁神隧 會群臣議正胤 皇后大努與仇都仇賁等退居牛壤 上憂恨添病秘之. 十九年(前19年) 壬寅 正月 以類利爲正胤 四月 上崩於西都新宮 傳釰璽于正胤類利太子 九月 葬大行于龍山 春秋四十 以遺命禁殉葬 仙記曰 上不樂居位 命太子治國 來黃龍而上天 遺棄玉鞭處 爲龍山陵 云

#6. [高句麗史略] 光明大帝紀. 三年(前17年) 甲辰 正月 以順奴艴奴爲沸流治 都彌鄒忽 以灌奴桂婁爲溫祚治 都牛壤 涓奴黃龍荇茶卑離上與召皇后治之 以慰召后之心.

박찬우 시민기자  horizon10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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