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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법종 교수, ‘단군부정한 일제식민사관비판’일제는 우리고분을 일본고고학 연습용으로 활용하여 마구잡이로 파괴했다.
오종홍 기자 | 승인 2019.06.22 23:52

기사수정: 2019.06.24. 16:31

 

강은영 교수, 만세일계 천황주의가 일제식민사관본질

시라토리 쿠라키치, 쓰다소키치는 열렬 천황주의자

이부오 선생, 삼국사기 초기기사 불신론은

임나일본부와 천황존재를 위한 것

조법종 교수, 일제의 단군 및 고조선 왜곡과

이를 비판한 일제강점기 민족사학, 북한학계 소개

구난희 교수, 일제의 발해사 연구에 대한 공과를 냉철히 분석 제시

김대환 박사, 내면화 된 제국주의 식민지 고고학 해체돼야

▲조선개국4352.06.22. 서울교육대학교 사향문화관에서 홍익재단(이사장 문치웅)이 주최하는 제3차 '2019식민주의 역사학비판과 전망' 학술발표회가 있었다. 이번 발표주제는 '일본의 천황제 국가 확립과 고대사 왜곡의 식민사학' 이었다. 발표자와 토론자들이 종합토론시간에 토론을 벌이고 있다.

역사 내전은 여전히 치열하다. 강단주류사학계는 막강한 인력과 조직 및 막대한 금력으로 여전히 난공불락의 철옹성을 자랑한다.

반면에 비주류 민족사학계는 소수인원과 열악한 조직과 재정으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바른역사를 알고 있다는 것이 버티는 힘이다.

이 두 역사내전 당사자들은 늘 평행선을 달려 왔다. 지난 박근혜 정부 때 동북아역사재단에서 강단과 민족사학계 대표자들을 불러 십수차례 주제발표와 토론회를 개최했다. 접점을 찾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새로 부임한 김도형 이사장은 그나마 해 왔던 학술발표 모임도 없애 버렸다. 민족사학계를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 주요골자다.

 양 사학계는 마치 물과 기름처럼 결코 섞일 것 같지 않다. 둘 중 하나는 사라져야할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때에 해성같이 나타난 단체가 있다. 문치웅 이사장이 이끄는 홍익재단이다. 이 단체는 식민사학 극복, 동북공정대처, 바른역사 복원을 목표로 삼아 출범했다.

올해부터 본격 활동에 들어갔다. 문 이사장은 강단주류사학계와 민족사학이 서로 자기 주장이 옳다고 소리 높여서는 바른역사가 복원될리 없다고 못박는다.

난공불락처럼 보이는 강단주류사학계 실체를 인정하면서 나오는 주장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방법은 없는가. 문 이사장은 근원부터 찾아들어가 전문가들이 나서서 식민사학의 실상을 일단 들어내는 것부터 하자고 제안한다.

식민사학은 일제가 만들어 낸 것이니 일제가 어떻게 식민사학을 만들어냈고 내용이 무엇인지부터 하나하나 밝혀 나가겠다고 한다. 동북아역사재단같은 국가기관이 해야 할 일을 민간에서 사비들여 하는 셈이다.

▲문치웅 홍익재단 이사장이 향후 홍익재단 학술발표 활동계획을 안내하고 있다.

홍익재단이 주최하는 이번 학술발표는 올해 들어 세 번째로 일제식민주의 사학을 밝히는 것이다. 아침 10시부터 시작하여 저녁 7시가 다되어 끝날 만큼 열띤 발표와 토론을 이어갔다.

제1부 주제는 '식민사학의 동아시아 인식'으로 전남대 강은영 교수가 '천황제국가 성립과 동아시아 고대사'를 주제로 발표했다.

강 교수는 일본천황제를 여러가지 사료로 분석하여 천황의 역사부터 근대 천황제까지 아우르며 들여다 보았다.

일본제국의주의 천황제를 이론으로 뒷받침한 자는 시라토리 구라키치(白鳥庫吉)와 그의 제자 쓰다소키치(津田左右吉)이다.

그에 따르면 일본 '천황'은 국내는 물론 세계를 지배하는 신과 같은 존재다. 근거는 <일본서기>와 <고사기>다.

천황가는 만세일계이며 일본단일민족을 이끌어왔다. 여기서 일제식민주의 사관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천황의 번국통치를 합리화하는 이론인 셈이다.

강 교수의 <천황제국가 확립과 동아시아 고대사> 발표를 통해 잘 드러났듯이, 근대일본이 만든 식민사학의 근원이 근대천황제에 있고 그 원초적 뿌리가 고대의 천황제에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는 고대의 역사가 근대의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고, 더 나아가 현재 한일관계의 문제와도 직결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전남대학교 강은영 박사가 천황제 국가성립과 동아시아 고대사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1부주제 2번째 발표는 이부오 한가람 중학교 교사가 ‘일본 근대 사학의 삼국사기 초기기사 신화화 과정’으로 맡았다.

삼국사기 초기기사 신화화 과정은 삼국사기 초기기사가 조작됐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믿을 수 없는 가짜라는 것이다.

주로 지금 기준으로 볼 때 이해할 수 없는 기사들을 골라 삼국사기 초기기사가 조작된 것이라고 한다.

이를 주장하는 일제식민사학자들은 서기19세기에 벌써 등장한다. 일제가 패망하는 때 까지 일본제국주의 학자들이라면 거의 다 이 주장을 펼친다.

일본이 고대에 우리땅,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를 들여와야 하기 때문이다. 삼국을 강력한 고대국가로 기록하고 있는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그대로 수용하면 우리나라 남부에 당시 야마토왜가 들어와 식민통치기관, 임나일본부를 설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부오 한가람 중학교 교사가 ‘일본 근대 사학의 삼국사기 초기기사 신화화 과정’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오후에 제2부가 진행되었는데 식민사학이 어떻게 우리고대사를 왜곡했는지 짚었다. 우석대 역사교육과 조법종 교수가 ‘식민주의적 고조선사 인식의 비판과 과제’를 주제로 3번째 발제자로 나섰다.

그는 일제가 어떻게 단군을 비롯한 우리 역사를 왜곡했는지 고발했다. 일제는 단군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는 단군조선을 부정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인정하면 일제의 지방인 조선이 더 역사가 긴 민족이 되기 때문에 식민통치와는 맞지 않는다. 조 교수는 이에 정인보 등 일제강점기 민족사학자들의 비판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이어 일제는 고조선을 이민족 위만이 세운 위만조선만 인정하고 이를 멸망시킨 한나라가 설치한 한군현 특히 낙랑군을 강조했다고 했다. 이것도 정인보 등 민족사학자들이 비판을 했다고 소개했다. 북한학계도 이에 가세했다.

그런데 정작 조범종 교수 자신은 한나라 식민기관 낙랑군 위치를 두고는 일제식민사학자들과 같은 견해를 보였다.

종합토론시간에 방청석에서 “낙랑군 위치가 어디에 있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것은 부동의 사실이다.”라고 못박았다.

또한 조선총독부가 우리역사 왜곡, 말살을 위해서 설치한 조선사편수회에 부역한 조선인들을 들춰냈다. 조 교수는 최남선을 지적하며 그의 행적을 전했다.

그런데 똑 같이 조선사편수회에 부역한 이병도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오늘날 우리 역사학계 기초를 다진 인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우리 국사학을 주도하는 서울대학 국사학과는 이병도가 없었으면 존재가치가 없을 정도라는 평가를 받는다.

▲ 우석대 조법종 교수가 ‘식민주의적 고조선사 인식의 비판과 과제’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한나라 식민기관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음을 나타내는 낙랑봉니, 와당 등이 화면 아래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조선총독부가 세키노타다시에게 거액을 주고 북경 유리창 일대에서 한나라 낙랑군 유물을 집중 수집해 와서 총독부박물관에 건낸 이후에 나타난 것이다.

조법종 교수에 이어 4번째 발제자로 구난희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나섰다. 일제가 대륙침략시기에 발해를 연구한 것을 분석했다.

그는 일제의 발해사는 양날의 칼이라고 압축했다. 발해역사를 왜곡했다는 점에서 발해사 연구에 어려움을 준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무시했던 발해사를 캐냈다는 점에서 연구자료를 제공한다. 일제는 이미 서기19세기 후반부터 발해역사를 다루고 있었다고 한다.

구 교수는 이를 ‘메이지시대의 착목’이라고 정리했다. 서기1875년에 나온 <역사지략> 이라는 책에 발해가 표시된 우리나라와 만주일대 지도가 실려있다.

발해사는 일제가 만주를 침략하여 손에 넣고 만주일대 유적을 발굴조사하면서 왜곡정립되어 나간다.

일본의 번국으로 발해를 규정하면서 발해사는 뒤틀린다. 만주일대 발해와 관련한 유물유적을 거의 다 손댄 것으로 나타난다.

나중에 중국이 동북공정하면서 일제발해조사자료를 기초로 할 정도였다고 한다. 또 우리는 지금도 발해연구를 할 때 일제조사자료에 의지한다고 한다.

지금 만주는 중국이 동북공정으로 아예 발해 유적에 접근조차 못하게 한다고 한다. 중국이 왜곡해서 내놓은 자료를 볼뿐이다.

일제가 우리 땅에 이어 만주까지 손에 넣고 얼마나 식민통치에 공을 들였는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영토침략에는 반드시 역사침략이 함께하며 역사침략이 영토침략의 탄탄한 지지대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날 구 교수의 <대륙침략기 일제의 발해 인식>발표는 고구려, 발해사와 직접 관련된 일제식민사학의 만선사연구가 현재 중국이 추진한 동북공정의 중요한 근거이자 토대로 작용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  식민사학문제는 한일관계상 문제일 뿐만 아니라 한중관계상의 문제라는 점, 시기적으로는 고대사의 문제가 현대사와도 직접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결국 식민사학·식민사관 문제는 현대를 사는 우리가 여전히 철저히 규명해야 하고 극복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임을 일깨워준다. 

▲구난희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일제의 발해사 연구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이날 마지막 발제는 국립중앙박물관 김대환 학예가 맡았다. 일본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유학파로 보였다.

그는 일제강점기 일제가 우리 고분 발굴명목으로 어떻게 무자비하게 파괴하고 유린했는지 드러냈다. 그는 경주일대 고분발굴참상에 초점을 맞췄다.

일제는 우리나라를 강탈해가면서 전국에 걸쳐 고적조사를 벌였다. 대표인물이 세키노다다시(關野貞)다.

당시 우리는 경주일대 거대한 무덤에 무관심했다고 한다. 그냥 언덕, 작은 산 정도로 보았는데 일제는 이미 서양고고학을 익힌지라 단번에 거대한 무덤임을 간파하고 총독부 비호아래 제멋대로 파괴했다.

처음 발굴하던 무덤은 적석목곽분이었다. 고고학 발굴경험이 없어 마구잡이로 파들어가다가 한참 깊은 곳에 이르러 수많은 돌들만 끝없이 나오자 포기했다고 한다. 이런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금관이 나온 금관총에 이르러 적석목관분임을 확인했다.

소위 서봉총은 현재 쌍분으로 납작하게 남아있다. 지금은 사라진 일제가 만든 경주역 평탄작업하는데 가져다 썼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대환 학예사는 일제는 이렇게 우리나라 고분을 가지고 고고학 발굴 연습을 해서 경험을 쌓은 후 일본 고고유적 발굴에 들어갔다고 한다. 우리 고분을 교보재로 삼은 것이다.

그는 해방 후 우리나라 고고학은 일제의 식민지고고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를 ‘내면화’라고 표현했다. 식민고고학의 내면화로 읽힌다.

이를 극복해야 한다면서 적석목곽분이 시베리아가 원산지라는 것이 지배학설인데 의문을 가져야 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국립중앙박물관 김대환 학예사가 일제의 우리 고분파괴발굴사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이날 발표회는 발제자가 발표하면 지정된 토론자가 반박성 질문을 하는 것으로 진행됐다. 이것이 끝나면 방청석에 질문기회를 주었다. 마지막에는 종합토론시간을 마련하여 발제자, 토론자 상호간에 공방이 오갔다.

방청석에도 질문기회를 다시 주었다. 방청석에서 수 많은 질문이 쏟아져 나와 모임을 뜨겁게 달궜다. 다 받지 못해 사회자가 양해를 구하는 일이 여러번 있었다.

이날 개회식과 제1부 사회는 송완범 고려대 교수가 맡았다. 제2부 사회는 고려대 박대재 교수가 이끌었다. 종합토론은 동국대 박남수 연구원이 이끌었다. 토론자로 건국대 나행주, 고려대 채미하, 대구대 윤재운, 강원대 김규운 박사가 나섰다.

한편 이날 옥의 티도 보였다. 일본의 시각이 담긴 용어가 등장했다. ‘일제패망 전후’라고 해야 할 것을 ‘전전, 전후’라고 했다. 또 ‘한일합방’이라고 표현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내지內地’라는 표현이 나왔다. 일제는 자신 땅, 열도를 내지라고 했다. 반면에 우리를 반도라고 했다.

이는 일본은 중심, 우리는 주변이라는 차별의식이 깔려있는 말이다. 이날 내지라는 표현을 쓰는 발표자가 있었다.

또 무의식 중에 일제황국사관, 식민사학자를 ‘~선생님’, ‘~분’이라고 표현했다가 이름만 부르는 것으로 고쳤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일제침략을 전혀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재침략을 노리는 일본을 둔 환경에서 오해를 부를 수 있다.

한편 홍익재단은 오는 8월 23~24일 이틀간에 걸쳐 국회의원회관으로 장소를 옮겨 학술대회를 크게 개최한다. 강창일, 이종걸 의원이 주최하고 홍익재단이 주관하며 아시아발전재단이 후원한다. 홍익재단 누리집은 www.hongikf.org 이다.

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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