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자정능력을 상실한 대한민국 사회는 타력을 통한 강제 변화를 원하고 있다.

 

글: Edward Lee (자유기고가, 미국 LA거주)

자한당 지도부와 일부 목사들 임계점 넘어

방치하면 걷잡을 수 없는 대혼란 초래할 것

악이 창궐하는 한국사회 절망의 그림자 짙어

 

▲전광훈 목사가 한국기독교총연합회장직을 갖고 있으면서 정치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그는 문재인대통령 하야하라고 하고 전라도를 빨갱이라고 하는 등 목사신분으로는 있을 수 없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사회분열 중심에 서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자료: 제이티비씨 보도영상 갈무리

한국을 다녀오면서 여러 생각이 겹치고 마음이 편치 않다. 많은 친구들과 더불어 참으로 행복하고 유익한 시간을 보냈지만 체류하는 내내 슬픔이 짙게 배어 부정적인 우려를 떨쳐내기가 쉽지 않았다.

인천 공항을 가는 새벽길에서도, 비행기가 땅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순간에도 그런 감정은 나를 짓누르고 놓아주지 않았다.

민족 정체성을 잃고 아류로 표류하는 사회, 국민이 아닌 특정 집단을 위해 기능하는 한국 정치제도, 우민화를 획책하는 기득권의 강고한 패거리 담합, 정의를 비웃는 관료조직과 사회 지도층, 인간을 기계(노예)로 양산하는 썩어가는 상아탑 등 어디 한 곳도 온전한 곳이 없는 사회에서 우리의 영혼은 죽어가고 있는 듯하다.

사회의 근본이 매우 부실한 데다 넘쳐나는 막말은 혐오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이런 사회에서 아이들의 훈육은 무슨 의미일까?

교육은 무엇인가? 가르치는 것인가? 모범을 보이는 것인가? 고위직들 거의 모두가 기득권과 강고한 패거리 끈을 형성하고 있는 마당에 이 땅에서 ‘모범’이 가당키나 한 것이며, ‘정의’란 또 무엇인가?

모범이 선행되지 않는 사회에서의 가르침은 공허할 뿐이다. 공동체의 가장 기본 단위인 가정에서도 모범이 없는 훈육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우리 사회를 보면 모든 곳에서 곡 소리가 난다. 그럼에도 그냥 지나치는 이들뿐이다. 이런 곳에서 어떤 정치가 순기능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정치체들이 특정 집단을 위한 정치를 할 뿐이 아닌가? 사실 그들에게 국민이 있다면 수수방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조용하지 않은가?

정치가 죽은 것이다. 정치인들의 사고가 이미 다 죽어버린 것이다. 국민의 안위가 보이지 않는 정치인에게 어떤 기대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우리 사회가 엉망진창이 되어가고 법질서는 개가 물어 가버린 것이 아닌가? 원칙이 없는 사회다.

거기에 장자연이 지금도 곡을 하고, 악마 김학의가 조롱하듯 비웃고 있는 게 아닌가? 국민들이 지쳐 나가떨어지고 자포자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사회에서 조삼모사 같은 거짓 희망들만 둥둥 떠다닌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심히 걱정되는 나라, 그들에게 ‘국가’는 무엇일까? 이미 성인들에게마저도 국가의 존재가 있을지 의문이다.

나는 수 없는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종국의 인생은 긍정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모든 어려움은 개인을 성장시키고 문명의 발전을 촉진하는 까닭이다.

그런데 작금의 우리 사회를 보면 도무지 긍정하기가 꺼려진다. 지난 100여 년간 우리 사회는 이리저리 찢기고 망가져 우리 고유의 정체성마저 잃었다.

우리 민족 정신과 사상이 무엇인지도 모를 지경이다. 우리는 아류와 더불어 바다 한가운데를 표류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 것은 없고, 이미 미국화되어버렸고 그 근저에 기득권이 강고하게 똬리를 틀고 있다. 과연 누가 이 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이미 미국 사회처럼 자본의 노예로 전락해 버렸음에도 우민이 되어 좁은 틀 안에서 무한한 자유를 누리는 듯 살아가고 있다.

보지 못하니 알 턱이 없는 게다. 그것이 자본과 기득권이 벌이는 우민화다. 그럼에도 아는 자들, 즉 정치인들은 국민의 편에서 기능하지 않고 기득권에 서있다. 조용하지만 무서운 자들이 이들이다.

이들이 보이지 않게 범기득권에 포위되어 함께 함으로써 온갖 저주와 막말이 횡행하는 데도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체제에 옳고 그름이 없는 대 혼란기다. 자한당과 일부 목사라는 자들의 행태는 역사상 가장 위험수위에 다다른 듯하다.

자신들의 ‘계략’을 위해서 아주 쉽게 하나님을 파는 자들, 이런 자들은 이미 신앙인은 물론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이다.

꼭 흉기를 들고 사람을 위협해야만 흉악범인가. 자신들의 이해타산을 위해서 쉽게 하나님을 빙자하는 태도는 이미 폭력의 나락에 빠져있는 것이다.

이들이 바로 ‘악’이다. 이런 자들을 방치하는 사회, 공동체의 질서를 파괴하도록 묵인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시민 지성이 일어나야만 하는 때인 듯하다. 그래서 참 슬프다. 행복해야 할 일상을 담보한 채 또 악과 대치해야만 하니 말이다. 우리는 언제나 사람다운 삶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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