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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기업 미쯔비시, 조선인강제동원위패 불태워일본은 일제강제징용 현장을 패쇄하거나 갖은 변명으로 접근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박찬우 시민기자 | 승인 2019.05.30 21:21

 

서경덕 교수와 함께하는 해외 강제징용 문화유산 탐방(3일 차)

<무한도전> 방영 이후 유명해진 공양탑

진실이 알려지자 무서워 폐쇄

책임 공방도 서로 떠넘겨

 

▲서경덕 교수가 막혀버린 공양탑 가는 길 앞에서 설명하고 있다.

3일차 일정은 오전 8시 40분에 배를 타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답사팀을 태운 배가 다카시마 섬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그 목적지는 둘째 날과 같이 다카시마 석탄박물관이 아니라 좀 더 높은 곳이었다.

다카시마에서 가장 높은 곳, 그러나 아무도 다니지 않는 어느 삼거리로 답사팀은 향했다. 그곳에서 다시 깊숙이 숲을 가로질러 길을 만들며 나아가자, 다카시마 공양탑이 답사팀을 마주하였다. 아마 이곳은 <무한도전>에 방영된 이후로 일반인에게 잘 알려진 곳일 것이다.

이 곳은 하시마 섬(군함도)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위패와 유해를 하시마섬 폐광 당시 이 곳으로 옮겨 온 것이다. 하시마 섬과 다카시마 섬을 합쳐 약 4000여 명의 조선인이 강제징용을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미쯔비시 사에서 폐광 시에 위패를 다 불태워 버려 지금은 신원을 확인하기 어렵게 되었다.

서경덕 교수팀이 초기에 이를 발견했을 당시에는 나가사키 시에서 관람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였으나, <무한도전> 방송이 나가고 많은 한국인들이 찾아오자 진실이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한 왜국 정부가 가는 길을 나무로 폐쇄했다.

공양탑에는 <구 공양탑의 유골은 영구공양을 위해 곤쇼지 절의 봉안당에 이전 후, 안치되었으며 위령비가 타카시마 신사 옆에 건립되어 있다>고 안내문이 부착되어 있었으나, 서경덕 교수팀의 조사로는 이 안내문은 거짓이며, 유골은 이장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공양탑 입구엔 <여기서 부터는 위험하므로 들어가지 마십시오>라는 거짓 안내문도 붙어 있었다.

막혀 있는 길을 지나갈 수 있도록 지속적인 요청이 제기되어도 나가사키 시와 왜국중앙정부와 미쯔비시 사에서 이를 무마하기 위해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상태이다.

이 사항 또한 서경덕교수가 유네스코에 모두 공유하였으며, 왜국 정부가 진실을 감추고 있다는 근거자료로 제출되었다고 한다.

아래쪽으로 걸어 내려가자 다카시마 탄광을 볼 수 있었다. 군함도 뿐만 아니라 다카시마 탄광에서도 조선인이 강제징용 되었는데, 이곳에서는 조선인뿐만 아니라 중국인들과 연합군 포로들도 많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역시 이곳의 어떤 안내판에도 그러한 내용은 찾아 볼 수 없었다.

2박 3일에 걸친 왜국 내 강제징용 유산에 대한 투어는 이와 같이 마무리되었다. 서경덕 교수에 따르면, 다음번 투어는 오사카 지역과 우토로 마을에 대한 내용으로 준비중이라고 한다.

또한 해외 투어와 별도로 국내 투어 역시, 지난 3월의 목포/군산 지역을 시작으로 인천/경기 지역(5/18~19)과 후속 일정이 계획되어 있다.

본 투어 일정과 관련하여 왜정시대의 근대 수탈사에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바라며, 자세한 내용은 서경덕 교수의 페이스북(얼굴책)과 여행사 투리스타(http://www.turista.co.kr/ ) 에서 참고할 수 있다.

▲ 서경덕 교수가 지금은 폐쇄된 다카시마 탄광 앞에서 설명하고 있다.

박찬우 시민기자  horizon10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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