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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 강제징용 조선인 참상 삭제한 일본일본은 군함도 세계문화유산 신청하며 강제징용 조선인은 삭제하고 있다.
박찬우 시민기자 | 승인 2019.05.26 19:07

서경덕 교수와 함께하는 해외 강제징용 문화유산 탐방(2일 차)

 

군함도에는 일제 ‘자랑스런’ 역사만 가득

1939년~1946년 사이의 역사는 사라져

군함도에서 헤엄쳐 탈출하던 조선인 강제징용

4명 익사체

해안가에 비석하나로 기념하고 있는 중

 

▲영상 자료로 쓰인 군함도를 비판하는 서경덕 교수.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은 이전에도 조선인 비하로 말썽이 있었지만 군함도를 미화하는 내용도 있었다.

2일차 일정은 군함도 자료관 관람, “난고지묘 해난자 무연불지비”, 다카시마 석탄박물관, 군함도로 이어지는 여정이었다.

사실상 본 탐방의 핵심 일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답사팀은 둘째 날 첫 일정으로 후쿠오카에서 나가사키로 이동 후 군함도 자료관을 찾았다.

이 역사관은 2015년 세계문화유산 등재 이후 세워졌는데,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이곳 역시 왜국의 왜곡된 사료와 전시물로 가득했다.

군함도를 왜국이 자랑하고 있는데 자료관 입구에서부터 가득 묻어났다. 영화 포스터처럼 제작된 표지와 실제 영화 <진격의 거인>을 군함도에서 찍은 포스터가 전시되어 있었다.

또한 소니(Sony) 사가 자사 측 드론 제품을 군함도에서 광고한 포스터도 볼 수 있었다.

이처럼 군함도에 대한 왜국의 자랑스러운 마음가짐과는 반대로 군함도의 강제징용 사실에 대하여는 어떠한 내용도 찾아볼 수 없었다.

군함도의 위치를 표시한 왜열도 전도(全圖) 또한 볼 수 있었다. 특이한 점은 이 지도에서는 독도를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또한 지도에서는 쿠릴열도(왜국명 :북방 4도) 중 시코탄 섬과 하보마이 군도(남쪽 2개 섬)가 표시된다는 점도 특이했다. 관람 중에도 비디오 한편에서는 군함도의 역사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씁쓸한 마음을 뒤로 하고 해안가를 따라 15분 정도 달렸을까. 갑자기 길 한가운데에서 버스가 멈춰섰다. 내릴 곳도 없는 길 한가운데 내려 걸어오니 왠 비석 하나가 보였다.

그것은 “난고지묘 해난지 무연불지비”였다. 쉽게 풀어쓰자면 “해상사고를 당한 무연고자의 비”였다.

그곳에서 저 멀리 지옥섬, 군함도가 보였다. 해상 10km 거리, 강제징용을 당하던 지친 몸으로는 절대 헤엄쳐 건널 수 없는 거리다.

지옥섬에서 헤엄으로 탈출을 시도한 4명의 노동자는 헤엄 도중 체력이 없어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해안가에 떠내려온 있는 시신을 양심 있는 왜인들이 수습하여 해안가에 무덤을 만들어 준 것이다.

서기1985년에 들어서 해안가에 도로가 놓이게 되자 왜국시민단체 ‘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이 발굴하여 유골을 확인하고 시신을 옮겨서 약간 떨어진 이 곳에 두었다고 한다.

서기2015년 서경덕 교수님에 의해 발견되어 매년 이 곳에 와 제를 지내고 술을 부어주고 간다고 설명하였다. 작년에 놓았던 한국 소주가 1년째 여전히 놓여 있었다.

▲쓸쓸히 있는 무연고자비. 저 멀리 군함도가 보인다.

점심식사 이후 설레는 마음을 품고 군함도행 배에 타게 되었다. 첫 번째로 도착한 곳은 군함도 근처에 있는 다카시마 섬이었다. 이 곳에는 군함도에 대한 사료들과 설명들을 볼 수 있었는데 연표에서 아주 이상한 것을 볼 수 있었다.

바로 서기1939년~1946년 사이의 내용이 없는 것. 칸이 빼곡하게 차 있어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이상한 것을 알 수 없었다.

강제징용을 이런 식으로 감추고 있는 것일까. 나머지 부분에는 왜어로 굴의 구체적인 깊이와 채굴방법 등을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

이후 답사팀은 군함도로 향했다. 군함도 상륙 이후 왜국 안내인이 이런저런 난방시설들에 대하여 자랑스러운 듯이 설명해 주었다.

이어 그 당시 왜국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7층 아파트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주거지역에는 그 당시의 영화관, 수영장, 빠찡코장 등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지역이 있었다고 설명하였다.

그 당시 현지 근로자의 가족은 들어와 살 수 있었으며, 총 인구수는 3200명 정도 된다고 설명하였다. 안전을 위해 앞쪽 부분만 개방하고 실제 아파트 등이 있었던 뒤쪽은 설명하지 않아 실망스러웠다.

이어 서경덕 교수가 중요한 내용을 질문했다. “강제징용에 대한 안내가 빠져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라고 현지 안내인을 통해 질문하자 교육받은 듯한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이곳에 들어온 외국인 모두가 일본인과 같은 조건하에서 같은 아파트에서 같은 생활을 하였고, 만약 사고가 났을 때도, 모두가 같은 입장에서 사고를 당했다. 즉, 외국인이라고 해서 차별을 두거나, 그런 적은 없었다고 전해진다. 나는 그렇게 들었다.” 라고 하였다.

또한 이 정보 출처는 “일본인 생존자들로부터 전해 들었다”가 다였다. 또한 서경덕 교수는 설명하기를 “이전에는 여기에서 안전모 쓰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고 했다.

그는 조선인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안전모를, 마치 모든 근로자가 다 쓴 듯이 묘사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유네스코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또한 현지 안내인도 “여기에서는 강제징용도 있었습니다.”라고 한 마디라도 언급하는 것이 유네스코와의 협약 사항인데 그것이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는 점도 지적하였다.

▲석탄박물관의 연도. 1939년~1945년이 비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서경덕 교수는 이 모든 사항들이 유네스코에 전달되었고 유네스코 측에서 왜국 정부에 확인 서신을 보냈다고 했다.

내년까지 이를 이행치 않을 시에는 유네스코 문화유산 취소 절차에 들어갈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

이 내용은 3월 20일자 서경덕 교수의 페이스북(얼굴책)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난고지묘 해난지 무연불지비”에 대한 내용도 3월 19일자 서경덕 교수의 페이스북(얼굴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3일차에 계속)

▲군함도. 왜어로는 하시마 섬이라고 하며, 우리 민족에게는 “지옥섬”이다.

박찬우 시민기자  horizon10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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