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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란’이 ‘동학농민혁명’이 되기까지 125년125년 만에 동학농민혁명이 국가기념일로 지정 되었다.
오종홍 기자 | 승인 2019.05.13 21:24

 

‘다시 피는 녹두꽃, 희망의 새 역사’,

서울 광화문 광장 일대를 비롯하여 전국에서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국가 지정 기념식 및 축하공연 거행

이낙연 국무총리 대한민국 대표하여 국가지정일 의의 피력

동학농민혁명은 부패체제 갈아엎고 차별 없는 민중세상 외침

강고한 조선 신분제 해체 및 토지균등분작 실천 시도

일제를 필두로 한 외세 반제국주의 축출 및 자주국위한 전쟁

 

▲조선개국4352.05.11. 동학혁명이 처음 '동학농민혁명'으로 국가차원에서 공식 이름지어졌다. 또 동학농민혁명일을 5월 11일로 지정하여 이제 해마다 국가가 나서서 기리게 되었다. 제1회 동학농민혁명 기념을 맞이하여 정부에서 이낙연 총리가 대표로 나와 기념사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낭독했다.

조선개국4352.05.11. 서울 광화문 일대 광장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동학농민혁명을 기념하는 기념식 및 축하공연이 성대하게 열렸다.

지방에서는 동학혁명을 이끈 천도교가 주도하였고 전북 정읍일대에서는 농민군에 초점을 맞추어 거행되었다.

서울에서는 광화문 북측 광장 행사장에 마련된 객석이 거의 찬 가운데 이낙연 국무총리가 정부를 대표하여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지정 의의를 밝혔다.

그는 먼저 기념일로 지정되기 까지 노력을 다한 인사들과 단체들을 치하했다. 

“동학농민혁명의 진실규명과 명예 회복과 유적 복원에 애써 오신 동학농민혁명유족회 최효섭 이사장님, 천도교 송범두 교령님,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형규 이사장님, 역사학자 이이화 님 및 유관단체의 지도자와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며 그동안의 노고를 정부가 기억하고 있을 밝혔다.

그는 명예회복이라는 말을 강조하여 그동안 동학농민혁명이 지배세력에 의해 반란, 폭도, 난동 등으로 왜곡, 폄하되어 왔음을 상기시켰다. 첫 말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그는 기념사 첫머리에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고자 목숨을 걸고 일어났던 전봉준 장군을 비롯한 선열들의 명복을 빈다.”고 했다. 동학농민혁명이 반역, 란동이 아니라,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고자 일어난 의로운 항쟁이라는 것이다.

또 동학농민혁명을 사람을 하늘처럼 받들고자 일어난 것이라고 하여 의로운 봉기로 정의했다. 이어 그동안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러왔는데 ‘동학농민혁명’으로 바르게 이름을 되찾게 되었다며 의미를 새겼다.

또 황토현 전투에서 관군에게 승리한 5월 11일을 혁명 기념일로 지정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올해 2월 유족과 관련 단체와 유관 지역들의 합의를 얻어 황토현 승전일인 오늘 5월 11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 했다며 지정하게 된 사연을 설명했다.

이어 동학농민혁명은 우리 5천년 민족사에서 가장 많이 피를 흘린 민중항쟁이라고 뜻을 부여했다. 내용과 규모면에서 서유럽의 근대혁명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동학농민혁명의 선진성을 부각시켰다.

▲이날 기념식에는 충북 보은에서 동학민회 소속 회원들도 올라와 함께 했다. '동학혁명북접사업회' 만장이 이채롭다. 다른 곳 보다 소외된 동학본산, 충북보은의 동학혁명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는 동학농민혁명이 갖는 의미를 크게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동학농민혁명은 우리나라 최초의 반봉건 민주주의 운동이었습니다. 동학농민들은 부패한 지배 세력과 탐관오리들의 가렴주구를 없애고 양반과 상민, 상전과 노비, 남자와 여자의 차별이 없는 사회를 만들려 했습니다.

둘째, 동학농민혁명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개혁 운동이었습니다. 동학농민군은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청상과부의 재혼을 인정하며, 토지를 균등하게 분작하도록 했습니다.

셋째, 동학농민혁명은 우리나라 최초의 반외세 민족주의 운동이었습니다. 동학농민군은 경복궁을 무단 점거한 채 국정을 농단하고 이권을 차지하는 일본을 몰아내려 했습니다.“

그는 동학농민혁명이 비록 일제에게 꺾였지만 아주 사라진 것이 아니라며 역사성을 강조했다. 동학농민혁명은 비록 실패했지만 3.1만세혁명으로 부활했다고 분명히 했다. 민중들의 분노가 동학농민혁명이후 25년 동안 응축되었다가 3.1독립만세운동으로 폭발했다고 밝혔다. 왜 3.1만세혁명이 동학이 다시 폭발한 것으로 볼 수 있는가.

그는 3.1만세혁명 기미독립선언서에 이름을 올린 인물에 주목했다. 민족지도자, 33인 중 15명이 동학을 이은 천도교인이고 이 중에서 9명이 동학농민군 출신이라고 분명히 못 박았다. 또 33인 중 맨 앞에 의암 손병희 선생이 들어가 있는 것도 지적했다. 3.1만세혁명도 동학이 주도했다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그러니 동학이 다시 폭발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동학농민혁명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후 우리 역사 고비마다 여러 시민항쟁으로 부활해 왔다고 역설했다.

“그렇게 동학농민혁명은 3‧1운동으로 이어졌고, 3‧1운동은 10년 후 광주학생독립운동으로 계승됐습니다. 해방 이후의 4‧19혁명도, 5‧18민주화운동도, 6월 항쟁도 동학정신에 뿌리를 두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2016년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계속된 촛불혁명도 잘못된 권력을 백성이 바로잡는다는 동학정신의 표출이었습니다.”

동학농민혁명 곧 동학정신은 우리 역사발전 노정에서 끊임없이 되살아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 총리는 이어 “우리의 민주민족 의식과 역량을 일깨우고 길러준 동학농민혁명은 정당하게 평가되고 영구히 기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기 때문에 민간과 지자체와 정부가 동학혁명의 진상규명과 명예 회복과 유적 복원에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당위성을 역설했다.

마지막으로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동학 정신이 ‘사람이 먼저’라는 현 정부의 국정기조와 통한다며 이 정신으로 계속해서 국정을 이끌어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오늘날 민주주의가 끊임없이 도전을 받고 있다면서 동학정신으로 이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완성하는데 다 같이 힘쓰자고 호소했다.

▲이날 기념식 식후 행사가 열리는 가운데 가수 안치환이 동학농민혁명을 담은 노래 '부활하는 산하'를 불러 참석한 시민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날 앞서 고창농악 길놀이 등 식전행사가 성대하게 펼쳐졌다. 또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측에서 경과보고를 했다. 기념사가 끝난 뒤에는 다채로운 공연이 이어졌다. 그 중에 안치환이 동학농민혁명가, ‘부활하는 산하’를 불러 진한 감동과 함께 참석자들 가슴을 뭉클하게 사로잡았다. 노래 가사만 보아도 동학농민군들의 심정을 읽고 있는 듯하다.

<부활하는 산하>

“얼마나 긴 세월을 사슬에 묶여
목 놓아 통곡하는 어둠으로 갈거나
만석보 터지는 물에 새 길 열릴 때
총성과 말발굽에 아우성치는 산하여
우금치 산마루에 통곡 소리 묻히고
무등 기슭에선 노여움이 춤춘다
오욕으로 얼룩진 압제의 아침에도
동포의 꿈이 숨 쉬는 목 메임의 산하여
녹두 벌의 진군의 외침 되살아오고
오월대지 위에 함성 일어서서
떨리는 외침으로 울려 퍼질 때
아 해방으로 부활하는 산하여”

이어 전북 전주에서 올라온 깃발놀이가 이어졌는데 ‘함대마을’에서 전해오는 마을놀이였다. 마지막에는 전북고창농악단이 고창지역 판굿을 벌였다. 천지가 진동하는 풍물장단에 시민과 동학농민유족 등 모든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졌다.

한편 이날 동학농민혁명을 이끈 동학 천도교에서는 별도로 행사를 가졌다. 전국 천도교 교구에서 각지 동학혁명지에서 기념식 행사를 가졌고 천도교 중앙총본부에서는 중앙대교당과 앞 마당에서 동학혁명을 기리는 공연을 펼쳤다.

동학민족통일회 손윤 상임의장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동학혁명정신은 남북평화, 민족번영, 통일로 이어지는데 향후 서울과 평양이 함께 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도록 천도교 차원에서 추진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구체 실천사항으로 매주 월요일 '광화문아침'에서 '2032 서울평양올림픽개최' 추진대회 겸 기도회를 갖는다고 한다.

이날 동학혁명 내용을 담은 공연도 펼쳐졌다. ‘뮤지컬(음악극)’으로 진행되었는데 동학혁명 전반을 상세하고도 실감나게 담아 대교당에 모인 참석자들을 감동물결로 몰아넣었다. 중간에 환호성과 감동어린 함성이 자주 터져 나왔다.

오전에 기념행사에 참석하느라 나중에 대교당에 도착한 송범두 천도교 교령은 짧은 인사말을 통해 천도교가 이제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 실천으로 보여주자며 천도교 도약을 호소했다.

▲동학혁명을 주제로 하는 음악극(뮤직컬)이 천도교 대교당에서 펼쳐졌다. 30분 이상 진행된 공연이었다. 마치 당시 동학혁명 현장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 올 만큼 생생하게 당시 상황을 담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악극단 이름은 '들풀'이고 이날 공연은 '들풀 갈라' 였다.

동학농민혁명은 민족사에서 보면 가장 크고 가장 많은 인원이 참여한 민중봉기로 평가된다. 동학이라는 말에서도 보듯이 철학과 사상이 뒷 받침하고 있어 왕조역사이래 줄기차게 일어난 일반 민중봉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근본에서 새로운 이상세계를 건설하자고 일어났다. 실제로 혁명이 본격 불타오르기 전까지 동학 본산인 충북 보은에서는 최소한 1년이 넘게 동학이념에 뿌리박은 새 세상이 펼쳐졌다.

충북 보은 장안면 장안리가 현장이다. 지금도 그곳에는 대도소 터가 남아있다. 또 집강소 건물이 현재도 남아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북 일대로 치우쳐 조명되고 기념하고 있어 아쉬움을 더한다. 충북 보은일대의 동학농민혁명을 본격 발굴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그래야 동학농민혁명의 실체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오늘날 통상 125년전 동학농민혁명을 기리는 것에 치중하고 있다. 125년전 타오른 동학 본래 정신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동학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물어야 한다.

국내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 차원에서도 누가 동학인지 찾아야 하고 함께 해야하고 없으면 만들어야 할 과제를 동학은 요구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동학은 죽은 동학일 수 밖에 없다.

▲이날 광화문 동학농민혁명 기념식에는 전국의 동학농민혁명군 유족들이 지방에서 올라왔다. 사진은 김동식 선생이다. 증조 할아버지가 김영원인데 혁명당시 전북 임실 문암면 선거리에서 '학감'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양반이었는데 도백인 감사가 찾아와 배우고 싶어할 정도로 학식이 깊었다고 한다. 이런 그가 동학군으로 참가했다. 나중에 잡혀 일본군의 고문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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