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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에 남아있는 왜정시대의 발자취여러 건물들에 남아있는 왜정의 흔적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박찬우 시민기자 | 승인 2019.05.03 12:21

 

승전 뒤 우리민족에게 돌아온 동국사

많은 영화가 촬영된 히로쓰 가옥등

왜정의 자취를 잘 이용할 필요 있어

 

▲ 구 군산세관과 현 군산세관. 옛건물과 현 건물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다.

둘째 날 일정은 군산행으로 시작되었다. 답사팀의 둘째 날 첫 여정은 군산근대역사박물관으로, 본대 측에서 섭외한 군산 지역 해설사와 함께하였다.

해설의 시작은 근대역사박물관 앞에 있는 커다란 사진 앞에서였는데, 이 사진은 1945년 승전 직후 미군이 공군기를 띄워서 찍은 군산 시가지 사진이라고 한다.

사진에서는 목포와 마찬가지로 조선인 거주지와 왜인 거주지가 뚜렷하게 구별되어 있었는데, 왜인들의 거주지는 네모반듯한 사거리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반면, 조선인 거주지는 길거리도 정비되지 않고 제멋대로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현재 군산근대박물관 위치가 왜인 거주지의 시작점이었다.

군산 지역 고대사 부분은 간단한 설명으로 갈음하고 다음 구간으로 이동하였다. 이날 박물관에서 설명되어 있는 부분 중 고대사 부분에서는 몇 가지 문제점을 찾을 수 있었다.

첫째로 고조선의 역사가 BC 2333년 건국, BC 108년 멸망으로 간단하게 설명되어 있는 부분이었고, 두 번째로 시대 구분을 서양식 구분법에 맞추어 고조선 시대가 아닌 청동기 시대로 서술하고 있으며, 또한 청동기 시대의 시작을 1천년 경으로 설명하며 이보다 더 이른 청동기 유물의 발견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삼한시대(원삼국시대)라는 근거 없는 시대 구분과, 이 시기를 선사 - 역사시대로의 전환기라는 용어를 통해 단군조선 역사에 대한 기록을 경시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다음은 간단하게 군산의 중세사에 대하여 언급하였는데, 고려시대에 군산에는 교통의 편리함으로 인하여 조창이라는 세금 저장고가 있었으며, 이를 노린 왜구의 습격이 잦았다고 설명하였다.

왜구의 배가 500척이 이르렀으나, 고려 조정은 이를 100척의 배로 격파하였으며, 이에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이 이무선의 화약이라고 설명하였다.

근대박물관으로 이동하기 전, 군산세관에 대한 설명이 박물관 바깥에서 진행되었다, 군산세관은 1908년(융희 2년)에 건립되었으며, 1993년까지 85년간 군산세관 본관으로 사용되다가 2006년 9월부터 호남관세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이곳은 독일사람이 설계하고, 벨기에에서 벽돌을 수입하였다고 전해지며, 유럽양식으로 지어진 현존하는 3대 건축물 중 하나이다.

▲군산근대박물관의 고대사 부분. 청동기와 고조선과의 관계를 언급하지 않았으며, 우라나가 청동기 시대를 1천년 전으로 제한하였다.

그후에는 군산 근대미술관으로 이동하였는데, 이는 일본18은행 군산지점 건물을 미술관으로 개축한 것인데, 18은 왜정 당시의 은행허가 번호이다.

일본18은행은 군산과 인천 등에 지점을 차리고 조선인 고리대금을 통해 식민지 착취에 앞장섰다. 그 다음에는 군산 근대건축관으로 이동하였다. 군산 군대건축관은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으로 사용되었다.

조선은행도 일본18은행과 비슷한 방법으로 재일은행권 확산과 고리대금업에 참여하였다. 이 건물은 기구한 운명을 많이 겪었는데, 1922년 확장 준공 된 이후 승전 후 1953년에 한일은행에서 인수하여 사용하였다.

1981년에는 개인이 소유하여 예식장으로 사용하다가, 1982년에는 유흥주점과 롤러장으로 사용되었다. 1990년에는 화재가 발생하여 방치되다가, 2008년에 군산시에서 매입하여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2011년 건물을 보수하고, 2013년 주변정비를 완료하여 근대건축관으로 개관하게 된다.

답사팀의 탐방은 옛 일본인거리를 지나 동국사로 이어진다. 동국사는 원래 우리나라의 절이 아니라 왜국 조동종 소속의 절이며, 창건 당시의 이름은 금강사이다.

승전 이후에 조계종이 인수하여 현재까지 절의 기능을 하고 있는 유일한 사례이다. 이곳에는 2015년에 세워진 소녀상이 있는데, 서 있는 소녀상이며, 이 뒤 쪽에는 왜국 조동종 은상사의 이치노혜 스님이 비문을 보내오신 참사문비가 세워져 있다.

이 옆에는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왜국식 종이 남아 있는데 담당공무원에게 전달하는 서류가 누락되어 문화재로 채택되지 못했다는 비화를 전해주셨다.

▲ 동국사 안의 소녀상, 서 있는 소녀상이며, 앞의 연못은 현해탄을 상징한다. 뒤쪽으로 이찌노혜 스님이 보낸 참사문비가 보인다.

동국사의 모습은 전형적인 에도시대 왜국 양식으로, 한옥 지붕보다는 경사가 가파르고 창이 크다. 이는 눈과 비가 많이 내리고 습한 왜국의 환경을 반영한 결과라고 설명하였다.

또한 대웅전은 우리나라의 절과 달리 승려들의 생활 공간인 요사채가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대웅전은 한국식 절과 달리 신발을 벗고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여러 가지면에서 한국식 절과는 많은 차이를 보여준다.

동국사에서 내려와 답사팀은 군산 신흥동 왜국식가옥, 속칭 히로쓰 가옥으로 이동하였다. 군산시 신흥동 일대는 왜정 시 왜국 유지들이 거주하던 지역으로 지주이던 히로쓰 게이샤브로가 지은 주택이다.

승전 이후 호남제분의 이용구 사장에게 넘어가 현재까지 한국제분의 소유이며, 영화 ‘장군의 아들’, ‘바람의 파이터’, ‘타짜’ 등의 영화가 촬영되었다.

외벽이 붉은 색으로 칠해져 있는 것은 왜정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으나 등록문화재 지정 전 영화사에서 칠해 놓은 것이라고 한다. 안쪽에 철문과 금고를 볼 수 있다.

이는 왜정시대 때 지주들의 유행 중 하나로, 왜국식 가옥이 목조 건물이므로 화재에 취약하자, 따로 귀중품들을 넣어 놓을 수 있도록 금고를 만들고 더불어 안에 숨어도 불이 다 꺼질 때까지 버틸 수 있도록 생필품 등을 넣어 놓은 것이 그 당시의 유행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제의 패망 이후, 미군정이 1인당 가져갈 수 있는 짐의 양을 제한하자, 가능한 많이 가져갈 수 있도록 연습하는 왜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의 삶에 어리석음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답사팀이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임피역이다. 임피역은 임피, 서수 지역에서 생산된 마곡을 군산항으로 반출하기 위한 군산선의 간이역으로, 1924년 6월 1일 영업을 시작하여 2008년 5월까지 여객을 취급하였다.

왜정 당시 요금은 쌀 두 되 정도 가격으로, 일반적인 조선인은 이용하기 힘들어 걸어 다녔다고 한다. 임피역 옆에 있었던 미곡창고와 구 임피역사에는 그런 수탈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임피역은 승전 이후 지역주민의 품으로 돌아와, 이후 주민들이 임피역에서 통근 열차를 타고 출퇴근을 했으며, 생선장수들은 새벽열차를 타고 군산항에 나가 생선과 젓갈을 구입해 이고 팔았다고 한다.

또한 학생들은 통학열차를 타고 군산, 익산, 전주 등에 있는 학교에 다녔다. 이제 다른 교통수단들이 발달하여 임피역에는 더 이상 열차가 서지 않지만, 임피역사는 남아 우리에게 수탈의 시간과 함께 우리의 근대사를 보여주는 역사다. 

2011년 역사 관광자원화 사업대상지로 선정되어 2013년 철도관광지 조성 사업을 마치고 관광객을 맞고 있다.

둘째날 군산에서의 여정은 위와 같이 마무리되었다. 목포와 군산 모두 왜정의 수탈과 이로 인한 우리 민족의 수난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도시들이었다. 이러한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많은 생각을 남기며 역사탐방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임피역사. 임피역은 수탈을 위해 지어졌지만 우리민족의 철도역으로서 더 오랜 시간을 함께하였다.

박찬우 시민기자  horizon10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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