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 한일합방’, 박정희가 55년뒤 <한일수교>명목으로 다시 '성사'시켰다.

 

장계황 한국역사영토재단 이사장,

“독도 수비대장 홍순칠 잘 알 것이다.

이 분 어떻게 죽은지 아는가.

독도지킨다고 맞아 죽었다.

뭐라구요? 독도지킨다고 맞아 죽었다고요.

왜 죽었다구요? 독도지켰다고 맞아 죽었다구요.

국정원(중앙정보부)인가 거기가서 맞아 죽었다.

정부에서 맞아 죽었다.

지금 홍순칠씨 사모는 인천에 살아계시다.

독도를 지켰다고 자국민을 고문해서 죽이는 국가가 어디 있나!”

▲조선개국 2019.03.13.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한국역사영토재단(이사장 장계황 박사)이 주최하는 독도바로알기 및 대일본 전략 연설및 음악회가 열렸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지난 3월 26일 일본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독도는 일본영토’이고 ‘한국이 불법 점령’하고 있으며, ‘일본정부는 항의를 해오고 있다’고 가르치겠다고 발표했다. 내년 초등학생 교과서에 이렇게 서술해서 가르친다는 것이다.

또 우리가 무인관측장비로 독도일대 해양조사를 하려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지난 26일 일본 관방장관이 직접 나서 ‘우리영해에서 드론을 이용한 조사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즉각 중지하라’며 반발했다.

또 일본 집권당, 아베 자민당의원들도 “일본기업 영향 각오하고 한국에 큰 타격 주는 경제 제재해야 한다.” 라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대로 가면 곧 전쟁이라도 벌일 기세다. 일본항공기가 독도와 제주도 남단 해역에서 우리군함이 북조선 선박구조 등 활동을 하는데 근접비행도발을 한 이후 또 다시 도발을 하고 있다.

이처럼 당연한 우리 땅, 독도가 어쩌다가 일본이 천연덕스럽게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국 땅이라고 하는 망발과 도발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그동안 언론보도를 보면 표피적이고 단편적인 보도만 난무했다. 어디서부터 이 문제가 생겼는지 근본을 짚는 경우는 찾기 드물다.

그런데 이를 근본부터 다루는 인물이 있어 큰 눈길을 끈다. 장계황, 한국역사영토재단 이사장이다.

그는 조선개국 4352.03.13.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통일시대 대한국토 대일본전략> 대회를 통해서 독도문제를 시원하게 풀어주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패전국들이 식민지국가들에게 빼앗은 영토를 토해내는 작업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이것을 강화조약이라고 하는데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강화조약에서 영토반환문제가 다루어졌다. 일본이 우리나라에 돌려줄 땅 중에서 독도도 당연히 있었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독도는 한국 땅임이 밝혀졌고 일본도 여러 지도와 일본의회를 통과한 문서에서 이를 인정하고 있다. 또 국제법상으로도 리승만의 ‘평화선’에서 보듯이 우리 영토임이 확정되었다.

문제는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였다.

박정희는 정권정통성과 경제발전이라는 당면과제에 매몰되어 졸속으로 일본과 수교를 서둘렀다. 서기1945.08.15. 패망한 일본은 대한민국과 국교가 단절되어 있었다.

우리에게는 철전지 원수나라여서 언젠가는 앙갚음을 해야할 나라니 당연히 적국이다. 수교는 상상할 수 없었다. 

박정희는 국내문제해결과 미국의 압박으로 일본과 적극 수교에 나섰다. 일제식민지배 피해배상이 당연히 수교협상 첫 주제로 떠올라야 했다.

하지만 박정희는 이를 모두 짓밟아 버렸다. 소위 대일청구권 자금이라는 명목으로 3억 달러, 차관으로 약3억달러 수준에서 그쳤다.

이 금액도 한거번에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6년, 12년 등 분할하여 지급한다고 되어 있다. 소위 ‘김종필-오히라’ 메모로 전말이 밝혀졌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개인배상청구권은 여기에 다 포함시키는 것으로 해버렸다. 개인배상청구권을 팔아먹은 것이다.

이날 장 이사장은 최근 사법파탄을 일으킨 양승태 대법원이 저지른 범죄도 근원이 여기에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양승태가 징용배상재판을 하면서 일본편을 들었다. 박근혜 아버지, 박정희가 일본과 맺은 한일국교정상화 협정 때문이라는 것이다.

박근혜는 아버지가 일본과 맺은 조약을 무효화 시키는 징용배상판결이 나면 한일간에 문제가 되고 아버지에게도 누가 된다고 여겼다. 때문에 징용자들에게 불리하게 재판할 것을 바랐다는 것이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수교협상과정에서 일본이 독도문제를 내걸고 다급한 박정희를 압박했다. 독도문제가 해결돼야 수교를 하겠다는 것이다. 박정희는 일본과 ‘독도밀약’을 맺는다. ‘정일권-고노이치로’ 밀약이다.

▲장계황 이사장이 열띤 강연을 하고 있다. 그는 이날 우리나라 영토분단역사를 강연 초반부에 다루었다. 또 일본 등 외세침략으로 분할역사가 4번에 걸쳐 있었다고 밝혔다. 또 일본이 초등학교까지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가르치며 이대로 가면 1백년 뒤에 독도 일본땅이 될 것이라고 불길한 예상을 했다. 그들이 커서 총리가 되고, 의원이 되면 '한국이 독도강제점령하고 있으니 회복해야 한다며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는 것이다. 역사사례로 아르헨티나와 영국간의 포클랜드 전쟁을 들었다.

이날 장 이사장은 이들이 두 개 문장을 기본으로 4개의 부속조항을 달아 독도문제를 다뤘다고 한다. 4개 조항을 보면 박정희가 독도를 일본에 팔아먹은 것을 알 수 있다.

첫째 조항이 핵심이다. “독도는 앞으로 대한민국과 일본 모두가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한다. 이에 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독도를 일본이 자국영토라고 주장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에 넘긴 것이다.

나머지 조항을 보면 이렇다.

“(2)장래에 어업구역을 설정하는 경우 양국이 독도를 자국 영토로 하는 선을 획정하고, 두 선이 중복되는 부분은 공동수역으로 한다.” “(3)현재 한국이 점거한 현상을 유지한다. 그러나 경비원을 증강하거나 새로운 시설의 건축이나 증축은 하지 않는다.” “(4)양국은 이 합의를 계속 지켜나간다.”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김종필-오히라’ 메모처럼 문서가 남아 있지 않다. 서기2007년 <월간중앙> 3월 보도를 보면 사실임을 알 수 있다. 정일권-고노이치로‘ 독도밀약에 핵심역할을 했던 인물이 <월간중앙>에 직접 증언하고 있다.

시마모토겐로다. 증언당시 80세였다. 시마모토겐로는 박정희가 피살되고 전두환이 정권을 잡자, 향후 문제가 생길 것 같아 모두 소각했다고 한다.

비행기 안에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작성한 것인데 사본하나 없이 없애버렸다며 크게 아쉬워했다.

이 독도밀약은 박정희가 서기1965.01.12. 재가를 했다고 한다. 시마모토겐로는 당시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용산미군기지를 이용했다고 한다.

▲김종필-오히라가 일본에서 회담을 하고 있다. 한일수교협약이 대한민국에 절대 불리하게 체결된 불평등 조약임이 밝혀지고 있다. 일제침략의 서막, 서기19세기 개항을 앞둔 이른바 '강화도 조약' 재판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여기서 또 하나의 사실이 드러난다. ‘용산미군기지이용’이다. 미국이 깊이 개입해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당시 미국은 소련과 경쟁을 벌이며 냉전과 열전을 반복하고 있었다. 체제경쟁을 하고 있었다. 베트남전쟁도 이런 맥락에서 미국이 일으켰다.

한국과 일본이 언제까지 원수로 지내며 단교상태에 있어서는 곤란했다. 둘을 화해시켜 수교하는 것이 급했다. 미국이 배후에서 한일수교를 조종했다고 했다는 것이 관련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여기서 또 한 인물이 등장한다. 김종락이다. 유신정권의 2인자 김종필의 친형이다. 한국 측 독도밀약 실무를 담당한 것으로 드러난다. 당시 한일은행 전무로 있으면서 독도밀약을 성사시켰다.

또 수교과정에서 일본 기업으로부터 6600만 달러를 박정희 공화당이 받은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준다. 공화당 창당자금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알려졌다.

한일 수교 전체 윤곽을 보면 식민지 조선민족을 피로 물들인 배상금은 온데 간데없고, 독립축하금 명목으로 푼돈 수준 돈을 받았다.

그러면서 뒤로는 박정희가 자기 정당, 공화당 이름으로 6천6백만 달러라는 거금을 받았다.

▲'김종필-오히라 메모'. 이 쪽지를 통해 일제식민지배 피해배상이 아닌, 한국독립축하금 명목으로 푼돈 수준의 돈을 받고, 개인 피해배상 청구권, 문화재 반환청구권 등을 모두 없애버렸음이 드러났다.

독도밀약을 더하여 보면 사실상 나라를 팔아먹은 것이다. 고려대 명예교수로 있는 김현구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서기2005년 교육방송에 출연하여 일본이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지하철,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에 일본이 자금을 투입해 깔아 주었다고 칭송했다. 이는 일본경제이식을 말한다.

그래서 지금 우리경제구조를 가마우치경제라고 한다. 중국 한 소수민족을 보면 가마우치라는 새를 이용해서 물고기를 잡는다.

목을 실로 묶어 호수에 풀어놓는다. 새가 물고기를 물어 와도 물고기를 삼키지 못한다. 주인이 뺏어서 배 수고에 넣는다. 우리가 이 가마우치 새 신세라는 것이다.

대일무역적자가 심각하다는 보도가 종종 나온다. 삼성휴대폰이 대표사례다. 내부 부속 7할이 일본산이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대일종속 경제구조로 박정희가 만들어 놓는 바람에 우리가 밖에서 아무리 벌어와 봤자 결국 일본에게 바치는 꼴이다.

독도일대 해양조사를 하겠다고 하자 일본이 대놓고 ‘한국에 큰 타격을 주는 경제재를 해야 한다’고 오만을 부렸다. 다 이유가 있었다.

좀 심하게 말하면 일본경제식민지다. 가히 제2 <한일합방>이라고 할 것이다. 가담한 인물들을 보면 박정희, 정일권 등이다. 모두 만주일본군 출신들이다. 매국을 할 만한 자격을 이미 갖추고 있었다.

▲독도수비대원들이 독도에서 감시하고 있다. 6.25전쟁 당시부터 홍순칠 선생을 중심으로 수십명의 한국의용대가 독도를 침범하는 일본 선박과 항공기를 격퇴시켰다.

이날 장계황 이사장은 독도밀약을 통곡에 가까운 심정으로 전했다.

“풍랑이 불면 파도가 높다. 2미터 이상 치면 배가 접안하기 어렵다. 접안시설 3미터 4미터 높이는 것, 우리가 돈이 없어 못 올리나, 기술이 없어 못 올리나. 왜 못 올리는 것인가? 아직도 이 독도밀약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정부, 현재정부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미래정부까지 가지고 가야 하나. 감추고 있다. 여러분 독도문제가 아주 친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죄송하지만 2005년 까지 독도입항을 못했다.

여러분 독도를 자유롭게 다닌 것이 2006년도부터다. 그 전에는 허가제였다. 지금은 신고제로 전환하여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여기서 또 한 번 강연장을 꽉 채운 시민들을 놀라게 한 사실이 드러났다. 우리는 당연히 처음부터 독도를 언제든지 들어가 볼 수 있었던 것으로 여기고 있다.

장 이사장에 따르면 불과 십 몇 년 전에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전두환이 원흉이다. 전두환도 불법으로 정권을 잡아서인지 경제를 살려야할 무거운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일본에 40억달러 차관을 요청했다. 이에 일본이 다시 독도문제를 꺼내들었다. 전두환은 독도를 천연기념물로 만들겠다는 약속을 하고 차관을 들여왔다.

장 이사장은 독도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경위를 이렇게 설명했다. 천연기념물로 만들면 보호해야한다는 명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독도에 마음대로 들어가지 못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전두환은 독도에 우리 국민이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다. 전두환 정권 때 ‘독도는 우리 땅’노래가 금지곡이 되었다는 소문이 많았다. 천연기념물로 된 사연을 알면 금지곡이 된 사정을 알만하다.

이날 독도수비대장 홍순칠 선생 죽음에 얽힌 내막이 밝혀져 충격을 넘어 경악케 했다. 전두환 정권이 홍순칠대장이 독도를 지키는데 힘썼다고 죽여 버렸다는 것이다.

그간의 보도를 찾아보면 사실로 드러난다. 서기1982.11.16. 독도를 천연기념물로 만들어 독도 출입을 금지시켰다. 이후 홍순칠 대장을 중앙정보부로 끌고 가 더 이상 독도에 대해 입을 놀리면 좋지않다며 독도를 우리 땅이라고 떠들고 다니지 말하고 협박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는 글을 쓰지 못하게 하겠다며 오른 손을 부러뜨렸다. 서기1980년 초에 홍순칠 대장을 북조선 방송에서 독도를 지키는 영웅으로 치켜세우자 끌고가 고문했고 서기1986년 고문후유증으로 죽었다.

장 이사장은 이 같은 사실을 전하며,

“이게 20세기말에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에 분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불의를 보고 분개하지 않으면 그건 국민이 아니다.”

라며 울분을 토했다.

▲독도수비대장, 홍순칠 선생. 그는 군사정권하에서 독도밀약이 있는 줄도 모르고 독도지키기, 개발 등을 건의했다가 거부당했다. 또 독도지켰다는 이유로 전두환 정권하에서 고문당하여 죽었다.

이어 그는 독도 지키기, 식민사관타파, 동북아역사재단해체 투쟁에 함께하는 것이 독도를 바로알고 지키는 것이라며 절절하게 호소했다.

“여러분 동참해야 한다. 민초, 민중이 깨어있을 때 그 사회 집단지성이 높아지고 그 높은 집단지성만이 그 사회를 유지하고 선진국으로 갈 수 있는 것이다. 가만히 있겠는가 여러분!”

그의 피맺힌 듯 한 간절한 호소에 청중이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물론 중간 중간에도 그의 호소력 있는 열변에 박수와 환호로 호응했다.

이날 장 이사장은 독도문제를 포함하여 일제침략에 따른 국가배상, 개인배상 및 문화재 반환과 관련하여 남한이 일본에게 주장할 수 있는 패가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토로했다.

박정희의 한일수교 졸속추진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지금 심정으로는 한일국교정상화 협상에 대해 무효선언을 정부가 지금이라도 해야 할 것이라고 외치고 싶다고 했다.

이어 북조선에 주목했다. 북조선은 아직 일본과 수교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북조선에게 남한이 당한 절차를 반복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남한 경험을 북조선에게 알려 충분한 배상과 문화재 등 반환을 완전하게 받을 수 있도록 조언과 정보를 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화재는 1천년 먹을거리라고 상기시켰다. 그리스, 이탈랴, 프랑스, 스페인 등을 보면 문화재로 관광객을 끌어들여 먹고 살고 있다고 피력했다.

우리도 일본에 가 있는 문화재를 반환받으면 광광수입만으로도 먹을거리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몽유도원도 등 실물은 일본에 있고 우리는 사진으로만 쳐다보고 있다며 어처구니없는 실태를 고발했다.

▲이날 강연 중에 여러 공연이 있었다. 강연 중간 중간에 넣은 노래와 춤 동작을 통해서 강연의 의미가 더 깊숙히 전달되었다는 평이다.

이날 그는 강의 초반에 이념과 진영논리로 남남갈등 등 각종 갈등으로 국론이 분열되는 것을 비판했다. 분열케 하는 원흉을 정치권으로 보았다.

국민은 1등 국민인데 3류 정치권이 국민을 패거리로 만들어 이용해 잇속을 챙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왜 우리가 이런 저질 3류 인생들에게 놀아나야 되냐며 이용당하지 말 것을 호소했다.

청중 중에 이념과 진영논리에 깊이 물든 사람들이 있음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었다.

박정희를 매국노 수준으로 사실상 강연을 해야 하는데 반발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 이해를 구한 것으로 보인다. 강연 내내 청중에서 반발은 보이지 않고 모두 강연을 깊이 수용하는 분위기 였다.

한편 이날 김일성종합대학 박사과정에 있는 재중동포, 리성림씨가 출연해 달아오른 강연장을 떠 뜨겁게 달궜다. 그는 고구려역사를 전공했는데 남과 북의 다리가 되기 위함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한 공연자가 리성림 김일성대학 박사과정 선생에게 다가가 함께 노래와 춤을 출것을 청하고 있다.

남과 북은 마치 이혼한 부부같다며 자신은 이혼한 부모 자녀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자기라도 나서서 화해시키고 재결합하게 하고 싶다고 외쳤다. 그는 이 같은 심정을 담은 '빛나는 통일' 노래도 창작하여 불러 청중의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이날 행사 중간 중간에 각종 공연을 집어넣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보냈다는 평이 많았다. 전문 가수가 나와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춤동작을 통해 독도사정을 알리기도 했다.

또 류근수 지휘자가 지휘하는 가운데 앞쪽 무대와 뒤편에 각각 합창단을 배치해 행사장 앞뒤에서 화음이 진동했다. 뒤편 합창에는 전남 광주에서 올라온 한라백두평화연대 회원들이 수고했다.

한국역사영토재단에서는 이날 독도를 알리는 책자를 무료로 배포했다. 행사를 이끈 수십 명의 회원들이 십시일반 돈을 내서 만든 것이다.

한편 이날 황주홍 평화민주당 국회의원이 축사를 통해서 남북한 관계는 전쟁보다 나쁜 평화라도 평화가 낫다며 독도 지킴이에 앞장서는 재단을 높이 평가 했다. 또 서호원 재단 회장이 인사말을 통해 9천년 역사민족 자부심을 갖고 다물영토관으로 독도를 지키고 대일잔재를 청산하자고 호소했다.

향후 재단에서는 독도강좌를 개설해 독도를 바로 알리는데 전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또 오는 5월에는 남북한 독도방문단을 만들어 독도에 들어가겠다고 의지를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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